“한국만큼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한 나라가 또 있을까요?”한국까르푸 마크 욱생(40) 사장은 이전 부임지 태국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여러 유통업체들이 동시에 할인점 시장 점령을 위해 출점 속도를 높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움직임이 너무 빨라 부작용이 우려될 정도”라는 것.그래서였을까. 마크 욱생 사장은 지난 1월 한국지사장으로 부임한 후 출점 경쟁에서 한 발 비껴나는 쪽을 택했다. 경쟁업체들이 올해 10개 이상의 새 매장을 여느라 전력 질주하는 동안 까르푸는 물류시스템을 정비하고 상품 기획 체계를 개선하는 구조개혁에 시간을 할애했다. 신규 점포는 서울 목동과 시흥 등 2개점 오픈에 그쳤다. 이 바람에 업계 2위 자리를 롯데 마그넷에 넘겨줬지만 오히려 표정은 여유로워 보인다.“우리는 한국시장을 더 배워야 하는 입장입니다. 한국시장에 맞는 거래 방식을 개발하고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수시로 파악해야 하지요. 점포 수를 늘이는 것보다 내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게 미래를 위해 훨씬 더 중요한 투자입니다.” 의도적인 한발 후퇴이므로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그도 그럴것이 세계 최대 유통기업이라는 월마트가 한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반면 까르푸는 줄곧 1위 업체 이마트를 견제하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문화와 소비패턴, 기호 품목 등이 유럽과 다른 한국에서 까르푸의 성공적 진입은 주목할 일이라는 평이다.까르푸는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세계 28개국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유통그룹. 세계 최초의 하이퍼마켓을 개점한 이래 38년 동안 이 분야에서만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국내에는 96년 경기도 부천 중동점을 시작으로 지난 9월 서울 시흥점까지 22개 점포를 구축했다.까르푸의 점포는 넓은 주차장과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어느 지역에서나 명물로 통한다. 넓은 매장에서 원하는 상품을 신속하게 찾도록 도와주는 롤러스케이트 서비스와 각종 무료 강좌는 이미 유명해졌다.특히 가격에 관한 한 까르푸의 원칙은 확고하다. ‘가격이 까르푸의 얼굴’이라고 공언할 정도. 하지만 이 때문에 납품업체들은 종종 불만을 터뜨린다. 한국 진출 후 빚어진 적지 않은 구설수들도 ‘최저 가격’을 추구하는 까르푸의 원칙과 한국의 상거래 관습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게 대부분이다.“까르푸의 올해 모토는 ‘고객 속으로(Back to Customer)’입니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할인점을 찾는 고객은 ‘최고 품질, 최저 가격’을 원합니다.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려다 보니 상품 공급업체와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래란 항상 어려운 법이지요.”‘최고 품질, 최저 가격’에 총력마크 욱생 사장은 요즘 들어 부쩍 한국 납품업체와의 관계 개선에 관심을 쏟고 있다. 취임 후 신규 출점을 자제하고 내부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납품업체와 보다 더 원활한 관계를 위해 지난 6월부터는 대외협력팀을 신설하고 ‘협력업체의 소리’라는 핫라인도 만들었다. 또 바이어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해 상품 수급 구조를 개선했다. 마크 욱생 사장은 이런 일련의 개혁이 바로 ‘현지화’라고 강조했다.각 분야의 시장 개방 이후 국내에 진출한 수많은 외국기업 가운데 까르푸는 독보적 존재다. 93년 유통업 개방 이후 지금까지 1조3천억원을 투자해 한국시장 투자 금액이 가장 많은 외국기업으로 꼽히기 때문. 모두 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독립점포를 세우는 방식으로 점포를 늘려왔다. 앞으로 출점할 부지도 10군데 이상 매입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공’을 인정받아 12월18일 열리는 제1회 외국기업의 날 행사에서 마크 욱생 사장은 ‘투자유치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까르푸는 경제위기 극복을 도와 준 큰 고객이기 때문이다.마크 욱생 사장은 까르푸의 구체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객 요구를 정확히 알아내고 운영 체제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한다면 높은 점유율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내년에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할인점 시장의 각축전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반면 한국생활에 관한 질문에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부인, 2남 1녀와 함께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 살고 있는 그는 주변이 프랑스인 밀집지여서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고 밝혔다.95년 까르푸에 입사해 상품 기획·마케팅 디렉터, 태국지사장을 거쳐 한국에 부임한 마크 욱생 사장은 세밀하면서도 개방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평이다. “지금까지 쌓아 온 한국까르푸의 발판을 다지기 위해 끊임없이 구조 개혁(Restructuring)을 하겠다”는 게 취임 후 밝혔던 그의 포부다.납품업체가 본 한국까르푸“원칙에 충실한 까다로운 파트너”한국 납품업체들에 까르푸는 ‘까다로운 파트너‘로 통한다. 40년 가까이 세계 28개국에 7백30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다진 표준화된 경영원칙 때문이다. ‘프랑스 독불장군’ 등 유쾌하지 못한 소리를 들어온 것도 한국식 상거래 관행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마크 욱생 사장이 취임한 후로 까르푸가 달라지고 있다는 소리가 종종 나오고 있다. 제일제당 할인점2팀 장석원 팀장은 “하반기 들어 구매시스템이 바뀌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바이어의 권한이 강화되고 거래 절차가 단순화돼 거래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평했다.특히 까르푸의 물류 시스템은 경쟁 유통기업에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저가 상품 공급을 위한 대량 공동구매 방법이나 표준화된 업무 체계는 국내기업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 한 경쟁 할인점의 바이어 P씨는 “프랑스 1위 할인점으로 군림하면서 쌓아 놓은 물류시스템은 국내 기업이 쉽게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홍콩의 중앙 구매센터를 통한 글로벌 물류 시스템은 앞으로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하지만 아쉬움의 소리도 적지 않다. 까르푸의 ‘가격 우선주의’와 ‘배짱’이 납품업체를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하는 가격에 공급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인기상품이라도 진열에서 제외시키기 일쑤다.“까르푸는 대리점이나 중소형 유통업체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객에게 경영의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란 걸 이해하지만 한국식 상거래 관행에도 귀를 귀울여 줬으면 합니다.” 한 납품업체 담당자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