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 시장을 잡아야 한다’. 요즘 야노스 휘게디(54) 에릭슨코리아 사장의 머리속엔 온통 이 생각 뿐이다. 휘게디 사장이 고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3조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 IMT 2000 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릭슨코리아가 눈독을 들이는 장비 시장만 1조원에 이른다.최근 장비 납품업체 선정에 들어간 KT아이컴의 경우 3천억원어치의 통신 장비를 구입할 예정이다. 에릭슨코리아는 1차 BMT(벤치마크테스트)에 통과해 한층 고무돼 있다.에릭슨코리아가 이처럼 3G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2G와 다른 거대 시장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게다가 에릭슨코리아는 올해 사업실적이 좋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1만명에 달하는 직원을 감원하기도 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3G는 필히 확보해야 할 시장인 것이다.올해 실적에 대해 휘게디 사장은 “매출은 밝힐 수가 없다”며 “98년에 취임해 매년 배성장을 해 왔으며 지난해는 에릭슨코리아 역사상 가장 실적이 좋았다”고 말했다.휘게디 사장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12년간 스웨덴 국가대표 농구선수와 5년간의 국제 농구심판 활약이 그것이다.“국제심판 자격으로 유럽 챔피언십과 중국에서 활동했습니다. 81년 대만에서 열린 존스컵 대회에서 한국여자 농구팀이 미국팀을 꺾고 우승했을 때 심판을 봤습니다. 그때 만난 신동파 감독하곤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휘게디 사장은 85년엔 한국의 잠실체육관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기도 진행했다.농구선수와 국제심판 생활은 휘게디 사장의 경영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줬다. 휘게디 사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선수생활은 팀워크를, 심판생활은 빠른 판단력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비즈니스 진행은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만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83년 프로젝트 매니저로 한국과 인연 맺어특이한 이력만큼 휘게디 사장은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71년 에릭슨에 입사한 후 83년에 한국담당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면서 비즈니스맨으로 한국을 알게 됐다. 이 인연으로 휘게디 사장은 86년 에릭슨코리아의 전신인 에리폰의 기술이사로 한국에 공식 입성한다. 그 뒤 극동 헝가리 콜롬비아 터키를 돌다가 98년에 에릭슨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했다.88년 한국을 떠날 때 무척 슬펐고 다시 10년 후 에릭슨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가장 기뻤다는 휘게디 사장의 부임 첫 소감은 ‘격세지감’이었다. 휘게디 사장은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며 “가장 큰 변화는 규제의 완화와 사업자와 장비업체들이 대거 늘어났다는 점”이라고 회상했다.사실 휘게디 사장이 부임했을 당시는 한국에 IMF가 맹위(?)를 떨치던 때인 98년. 바짝 얼어붙은 한국경기 상황에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하지만 휘게디 사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 99년부터 두 배씩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많은 외국기업 사장들의 애로라면 애로인 것이 현지의 휴먼 네트워크 구축이다. 비즈니스가 결국엔 사람과의 관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휘게디 사장은 “무엇보다 자주 만나야 한다”며 “지속적인 관계 속에 보다 많은 신뢰와 친분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술을 통한 접대는 가능한 한 피한다”며 “대신 골프 전시회 등 많은 시간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한국생활이 다른 외국인 사장에 비해 많은 휘게디 사장은 한국 통신시장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국 통신시장의 문제점으로 그가 지적한 것은 다른 나라와 달리 장기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점과 사업자가 너무 많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단기계약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공급업체의 잦은 교체로 사업자에 유리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휘게디 사장은 한국 정부의 규제가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보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정부의 입김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장은 시장 지배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외국자본 유치와 민영화를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특히 정부의 통신시장 비대칭규제에 대해 휘게디 시장은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세계 무선 통신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시장 지배력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휘게디 시장은 “이런 점에서 SKT, KTF가 비동기식 표준을 선택한 점은 시장의 힘이 작용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이면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릭슨코리아가 입주해 있는 건물) 지하의 분식점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휘게디 사장은 한국과의 오랜 인연으로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푹 빠져 있다. 그는 “한국사람은 처음엔 가까워지기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평생동안 간다는 것이 좋다”며 “그런 한국친구가 몇 명 있다”고 말했다.성별에 상관없이 실력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직원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준다는 휘게디 사장의 경영철학은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모든 사항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이다.고객 입장에서 본 에릭슨“국내 통신 시스템 개발에 일조”에릭슨을 처음 만난 것은 정보통신 기술 분야에 발을 들여 놓은 직후 우리나라의 전기 통신 역사를 배울 때였다. 19세기 말 우리나라 궁궐에 수동 교환대를 최초로 설치한 기업이 바로 에릭슨이란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80년대 초부터 전자교환기 관련 기술분야에 종사하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에릭슨을 알게 됐다.에릭슨의 장점은 뛰어난 기술력이다. 이 기술력은 국내 통신발달에 많은 영향을 줬다. 대표적인 것이 전전자 교환기 기술 이전이다. 에릭슨은 국내에 AXE-10이라는 디지털(전전자) 교환기를 80년대 중반부터 공급해 현재 한국통신 전화망 가운데 8%에 해당하는 약 2백만 회선 정도가 운용되고 있다.에릭슨이 국내 정보통신 사업에 기여한 부분은 AXE-10 공급이라기 보다는 AXE-10의 도입과 관련된 전자교환기 원천기술 이전과 적극적인 협력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TDX라는 국산 디지털(전전자)교환기의 개발 사업에서 에릭슨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TDX 개발사업은 에릭슨의 AXE-10이 들어오면서 이전받은 기술을 활용해 초기 시스템 개발 과정의 난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TDX 개발 사업 성공으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국내 교환기 1천만 회선 이상을 국산 TDX로 설치할 수 있었다. 결국 에릭슨은 국내 교환기 개발 사업에 AXE-10 기술이전 형식으로 관련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국내 대규모 통신 시스템 개발 및 운용 기술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하지만 기업이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릭슨도 단점이 있다. 현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마케팅을 펼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장점일 수 있는 에릭슨의 비즈니스 전략은 전세계적으로 일관돼 있다. 따라서 국내 시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으로 융통성이 부족하고 국내 시장에 맞는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이상일·한국통신 통신망기술연구팀장 silee001@k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