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고가화장품 브랜드 ‘헤라(HERA)’가 매출액 2천억원을 돌파한 12월10일 저녁. 브랜드매니저인 유길환(43) 마케팅팀장과 팀원 5명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타에서 그림감상을 마친 뒤 인근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자축연을 가졌다.국내 화장품업계 사상 단일 브랜드가 한 해에 2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은 ‘헤라’가 처음이다. ‘헤라’를 별도의 화장품 회사로 치면 업계 4위에 해당하는 실적으로 브랜드매니저인 유팀장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만하다.단일 브랜드 최초로 매출액 2천억원 돌파무엇보다 세계 명품 화장품의 격전장이 될 만큼 수입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일궈낸 성적이라 더욱 값지다. 실제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는 수입 명품이 점령한 지 오래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28개 화장품 매장 중 국내 브랜드는 ‘헤라’와 LG생활건강의 ‘오휘’만이 입점해 있을 정도다.지난 95년 ‘헤라’는 거대한 수입화장품 업체들에 맞서 도전장을 던졌고, 결국 멋지게 성공했다. 사실 “이 정도의 실적을 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유팀장은 소감을 밝혔다. 아무래도 소비자들 사이에 ‘국산은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백화점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은 물론 지금은 태평양 전체 수입의 20%를 차지하는 효자 브랜드로 우뚝 섰다. 유팀장은 “수입화장품이 절대적인 강세를 보이는 상위 10개 백화점에서 랑콤 샤넬 등에 이어 매출 3위에 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성공비결은 뭘까. 우선 국내 화장품업계 1위 업체인 태평양의 기술력과 탄탄한 영업조직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태평양은 화장품협회가 순위통계를 내기 시작한 83년부터 줄곧 업계 1위를 유지해왔다.여기에 유팀장을 중심으로 한 팀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보태져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영업사원으로 10년을 현장에서 뛰어다닌 그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수입산 보다는 저렴하지만 질 좋은 국산 화장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에 주목했다. 동시에 “사람들 앞에서 화장품을 사용해도 당당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브랜드를 원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소비자 타깃을 좁히는 것. ‘헤라’라는 브랜드도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아내인 헤라처럼 당당하고 도도한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또 스킨케어, 메이크업 제품부터 기능성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1백56개의 다양한 상품으로 경제력을 갖춘 20∼35세 여성층을 집중 공략했다.유통망을 제한적으로 활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고가 화장품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화장품 전문점이나 할인점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백화점과 방문판매를 고집했다”고 말했다. 신종 마케팅기법도 동원했다. 예비신부 등이 결혼 1백일 전부터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사용하면 효과가 큰 ‘D-100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었다. 고객감동 서비스는 기본이었다. 그는 “소비자가 제품을 써보고 문제점을 제기하면 즉각 해결해준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미 사용한 제품이라도 교환해준다.매일 아침 6시40분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할 정도로 일벌레인 유팀장은 “‘헤라’를 70∼80년 이상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장수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