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전문가들은 소비자금융업계의 대약진 원인을 두 갈래에서 찾고 있다.업체들의 끈질긴 시장 개척 능력과 이와 맞아 떨어진 사회적 분위기, 소비 관행 등이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모범 우등생에서 국제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일본 경제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금융이다. 하지만 벼랑에 몰린 일본 금융회사들 중에서도 외부의 이같은 지적을 비웃으며 파죽지세로 고성장가도를 질주하는 업계가 하나 있다. 서민들을 상대로 비싼 이자를 받으며 돈을 빌려주는 소비자금융업계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식 표현으로 잘라 말하면 고리대금업이다. 소액의 돈을 빌려 주고 연이율 25%는 기본으로 받아내는 비즈니스다.두자리의 대출 이자가 갖는 의미는 한국과 일본에서 영 다르다. 일본의 금리는 1년짜리 정기예금이라고 해봤자 0.03%다. 제로(0)에 가까울 뿐 아니라 예금 평균 잔액이 30만엔을 밑돌면 수수료를 물리는 은행이 하나 둘이 아니다. 대출 이율도 4%를 넘는 것이 별로 없다. 불황과 싸우면서 경기를 살려 보려고 금리를 한없이 내린 탓이다.이같은 현실에서 ‘25%’라는 수치는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샐러리맨 봉급도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고, 이제는 감원태풍까지 겹쳐 꼼짝없이 삭감을 감수해야 할 서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공포에 가깝다.소비자금융업계의 뿌리는 깊지 않다. 60년대부터 서민들을 대상으로 급한 돈을 빌려 주면서 출발한 ‘사라 낑’(샐러리맨과 돈을 각각 일본어로 부른 것을 합성한 말)이 원조다. 1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은행들에 비하면 새까맣게 뒤처진 후발업종이다.그렇지만 소비자금융업체들이 일본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십수년간 급팽창을 거듭해 왔다. 묘하게도 일본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든 시기와 비슷해 불황을 먹고 자란 업종의 인상마저 줄 정도다.대형 8개사 대출금액 6조엔 육박소비자금융업계의 위세를 보여 주는 증거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대형 8개사가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고객들에게 깔아 놓고 있는 돈은 올 상반기말 현재 모두 6조엔에 육박한다. 원화로 치면 무려 60조원을 넘는 규모다. 이들 회사의 여신은 최근 5년간 70% 이상 팽창했다. 돈 빌려 쓰는 사람들이 줄을 이으면서 순풍에 돛단 듯 성장가도를 달린 덕이다. 신용조사 회사들의 평가도 더없이 우수하다.일본신용평가연구소는 8개사의 등급을 최소한 ‘BBB’ 이상으로 매기고 있다. 아주 우량이라는 뜻으로 ‘AA’를 받고 있는 업체도 있다. 불량채권에 허덕이는 대형은행들이 ‘B’ 등급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는 것과는 딴 판이다. 고리대금업이라 숨어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장사하는 것 같지만 정반대다. 광고 선전활동에 적극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스포츠계에서도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대 유통업체 이토요카도가 갖고 있던 여자배구팀이 소비자금융업계의 간판업체인 다케후지에 넘어간 것이 대표적 사례다.일본 금융전문가들은 소비자금융업계의 대약진 원인을 두 갈래에서 찾고 있다. 업체들의 끈질긴 시장 개척 능력과 이와 맞아 떨어진 사회적 분위기, 소비 관행 등이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소비자금융업체들은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타깃 고객을 도시 샐러리맨과 자영사업자 등 자기 소득을 가진 중년층 이상으로 잡고 있었다. 따라서 기존 고객 중 20~30대의 젊은 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20~3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 20~30대의 고객비율이 업체별로 50~60%에 달하면서 중년층을 누르고 최대 계층으로 자리잡았다.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소비자금융의 황금 고객으로 부상한 것은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기본적으로 광고활동을 통해 확보한 신규고객은 돈을 빌어 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떼먹을 우려가 그만큼 적다고 확신하고 있다.젊은 계층을 파고 들기 위한 소비자금융업체들의 광고활동은 공격적이고도 집요하다. 수년 전만 해도 전철역 근처에서 행인들에게 1회용 화장지를 뿌리는 정도에 그쳤던 것과 달리 이제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이름 알리기에 거침없이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야구 축구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운동 경기장에는 빠짐없이 이들 업체가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하철 광고는 물론이고 도심 빌딩 옥상의 옥외 광고탑에서도 돈을 빌려 쓰라는 유혹은 널려 있다. 특히 광고 효과가 뛰어난 TV는 이들 업체의 최우선 선호대상이다. 6개의 민영방송 중 소비자금융업체들의 광고 전파를 띄우지 않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사회적 부작용을 우려해 끝까지 외면했던 TBS도 결국은 광고 수입에 넘어가 지난 4월부터 자존심을 꺾어 버렸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TV만 켰다 하면 시도 때도 없이 흘러 나오는 이들 업체의 CM송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있다. 대형업체중 하나인 프로미스의 ‘노란 간판… 프로미스’는 어린이들도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박자와 멜로디가 쉬워 초등학생들의 인기곡이 돼 버렸다. 어린 아이들이 고리대금업체의 광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에 부모들은 기겁을 하지만 막을 방도가 없으니 속수무책이다.다케후지, 아코무, 프로미스, 아이플등의 대형4사가 집행한 광고비는 올 한햇 동안에만 8백억엔에 달할 것이라는 게 광고업계의 추산이다. 대형업체들 중에서도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소문난 아이플의 경우 지난 90년 63억엔을 광고에 쏟아 부었으나 올해는 약 2백억엔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3배나 광고비를 늘린 셈이다.소비자금융업체들의 고성장에는 일본 정부와 금융계도 한 몫을 거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증권계는 공개 수수료 수입을 챙기기 위해 이들 업체에 ‘벤처금융회사’의 이름을 붙여 준 뒤 앞다퉈 증시 상장 길을 터 줬다. 상장이 자금조달 확대와 기업 이미지 제고로 직결된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가 비은행 금융회사들을 대상으로 한 회사채법의 개정이다. 비은행 금융회사들은 수년전 까지만 해도 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하고 조달한 자금을 수요자들에게 곧바로 빌려 주지 못했었다.하지만 이 법이 99년 5월 바뀌면서 비은행 금융회사인 고리대금업체들은 금융청에 등록만 하면 언제든 조달 자금을 대출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법 개정이 뛰는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 준 격이나 마찬가지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프로미스의 경우 법 개정 전 사채와 기업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이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98년 7%에 머물렀으나 올 3월 결산에서는 이 비율이 27%까지 치솟았다. 소비자금융업체들이 사채 등을 발행하고 끌어들이는 자금의 연이율은 0.5% 안팎에 불과하다. 따라서 공짜나 다름없이 빌린 돈을 20%가 훨씬 넘는 이자에 빌려줄 수 있도록 문을 더 넓혀준 일본 정부의 조치는 소비자금융업체라는 스포츠카를 탄탄한 대로에 올려 놓은 것과 다름 없었다. 40%에 육박하는 대형 8개사의 영업이익율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일단 빌려 쓰고 보자” 금전관념도 한몫소비자금융업체들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 배경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달라진 일본인들의 금전 관념이다. 소비자금융백서에 따르면 ‘생활비나 용돈이 모자랄 때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에 부모나 집안 형제에게 빌린다는 응답은 지난 91년만 해도 23%에 달했다. 그러나 이 비율은 98년 13%로 낮아졌다. 반면 신용카드나 소비자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으로 해결한다는 비율은 20%에서 32%로 높아졌다.소비자금융의 고성장에는 ‘없으면 없는대로 참고 견딘다’는 미덕이 사라진 대신 ‘빌려 쓰고 보자’는 무절제한 사고 방식이 또 하나의 거름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불황 속에서 헤맨 탓에 살림살이가 어려워졌어도 이자를 겁내지 않는 젊은이들의 이용 비율이 높아진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 매며 검약을 몸에 익힌 일본인들 특유의 미덕이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근심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소비자금융업체들의 고성장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하버드대학 비즈니스 스쿨은 이들의 성장 비결을 케이스 스터디 대상으로 꼽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초고금리의 돈 장사가 불황 틈새를 비집고 초우량 비즈니스로 각광받는 현실이 뜻있는 일본인들에게 달갑지만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