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류시장의 가격파괴 싸움은 단순한 경쟁차원이 아니다. 업체마다 목을 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리는 전쟁이다.중국에서 만든 값싼 제품을 들여다 대히트를 친 ‘유니쿠로’가 스타기업의 자리를 굳힌 후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의류는 일단 값이 싸야 팔린다. 재킷, 티셔츠 등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은 벌당 2,000~3,000엔짜리가 얼마든지 널려 있다. 고가 유명브랜드 제품을 제외하면 십중팔구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저임 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든 것이지만, 소비자들은 상품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그 때문에 전문 의류업체든 백화점이든 옷을 취급하는 판매점들은 거의 모두 원가와의 전쟁에 필사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유니쿠로가 지난 한 해 동안 2,000만 벌을 판매했다고 해서 ‘국민복’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후리즈 재킷은 유니쿠로의 가격이 1,980엔이었지만 이제는 1,000엔 이하의 경쟁제품도 나와 있다.일본 의류전문가들은 하지만 가격파괴 태풍에 꿈쩍도 하지 않는 아이템이 하나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인기 캐릭터를 이용한 의류들이다.캐릭터를 앞세운 의류는 전세계 어디서나 일반화된 상품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치고 고양이 ‘키티’나 생쥐 ‘미키 마우스’ 곰돌이 ‘푸우’ 등의 캐릭터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이들 캐릭터의 유명세를 등에 업은 의류는 캐릭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갖고 싶고, 입고 싶은 옷으로 대접 받아왔다.그러나 일본 시장에 나타난 최근의 캐릭터 의류 선호현상은 종전과 색깔이 다르다. 글로벌 스타로 각광받는 유명 캐릭터보다 새롭게 태어난 무명 캐릭터를 좋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선호하는 연령층도 10대 전후의 초등학교 학생들 중심에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으로 확대됐다.광고대행사 하쿠호도의 마쓰모토 유스케씨는 “10대 후반의 캐릭터 팬들은 유명 캐릭터들에서 어린이 냄새가 너무 난다며 자신들만의 것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특히 강하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골라주는 것을 좋아했던 유·소년 시절과 달리 이제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고집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신입사원의 스케치작이 대히트따라서 글로벌 인기를 누리는 유명 캐릭터 의류보다는 자신의 기호나 입맛에 맞는 캐릭터를 앞세운 의류를 더 찾기 마련이다. 따라서 업체들도 이같은 방향으로 캐릭터와 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 마케팅 전문가들의 지적이다.팬더를 귀여운 모습으로 형상화시켜 ‘켄과 메리’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내놓은 슈퍼 러버즈는 10대 초반을 겨냥했던 타깃 고객이 뜻밖에 20대까지로 크게 넓어진 대표적 케이스다. 이 회사의 하라다 신조 매니저는 “최근에는 직장여성과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이 매장을 찾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며 “고가전략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캐릭터 덕”이라고 털어놓고 있다. 이 회사는 어린이 윗옷 한 벌을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비싼 6,900엔에 파는 등 고가 정책에 치중하고 있음에도 불구,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약 20%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나카무라’라는 이름의 독창적 곰 캐릭터를 앞세우고 있는 엔젤 블루 또한 캐릭터 덕을 톡톡이 보고 있는 의류 회사 중 하나다. 이 회사는 4,900엔짜리의 소형 인형을 의류와 별도로 판매 중이지만 개당 4,900엔의 고가에도 불구, 매장마다 인형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전체 의류의 40%쯤에 나카무라 캐릭터를 활용하고 있는 이 회사는 도쿄 등 대도시 도심 점포가 나카무라 등장 이후 몰려드는 고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루 200~250명의 고객이 들르던 점포에 이제는 600~700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특이한 것 중 하나는 캐릭터의 탄생 배경이다. 히트작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개발하기보다 이벤트 등 특정 행사에 쓰기 위해 만든 것이 우연찮게 대성공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신입 디자이너가 스케치 삼아 그려본 것이 빅 히트로 연결되기도 했다.전문가들은 “디플레로 소비가 위축됐다고는 해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손에 넣으려는독창적 소비패턴은 살아 있다”며 “캐릭터 의류야말로 틈새 마케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라고 진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