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이후 많은 국가들이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도입한 ‘예금보험제도’는 회계제도의 투명성이나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 등이 확보되지 못하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금융 산업의 인프라가 취약한 나라의 경우, 단기적으로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금융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오히려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증대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예금보험제도에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원초적으로 ‘내재’돼 있으며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예금보험의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지 못해 예금보험제도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예금보험료 수입이 지난 2001년말까지 누계로 약 2조 5,0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하지만 지난 97년 이후 퇴출된 금융회사의 예금자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과 사실상 보험금 지급과 다름 없는 금융회사들에 대한 출연금(출자금은 제외)만 40조원이 넘었다. 따라서 현재 예금보험기금의 영업수지는 마이너스 37.5조원인 셈이다.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서는 예금보험제도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보대상 예금잔액의 1.25%에 해당하는 만큼 예금보험기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예금보험기금의 목표액이 설정돼 있다.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보험사고에 대비,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만일 미국의 연방예금보험공사처럼 예금보험의 보호대상이 되는 부보예금 잔액(2001년말 기준 약 600조원)의 1.25% 정도를 예금보험기금으로 확보하려면 적어도 예금보험기금의 순자산을 적어도 7조 5,000억원이 되도록 유지해야 한다.우리의 경우 예금보험기금의 누적 결손에 해당하는 마이너스 37.5조원에 순자산 필요금액 7.5조원을 더하면 적어도 43조원 정도의 예금보험기금 수입이 앞으로도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예금보험제도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회사는 예금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 은행이나 보험회사이다. 현재 예금을 취급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대체로 예금잔액에 대해 연간 0.1% 정도의 예금보험료를 내고 있다.이는 금융회사들이 지급보증을 해주고 기업들에게서 받는 수수료가 1% 정도임을 감안해 보면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보험의 원리상 ‘보험사업자’에 해당하는 정부(예금보험기금)는 보험사업의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등 경상비용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보험금의 지급에 충당할 정도의 충분한 보험료를 ‘보험계약자’인 금융회사 등에서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이 예금보험제도의 직접적인 수혜자이며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서 볼 때에도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예금보험기금의 적자를 보험계약자도 아닌 일반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전하는 것은 보험의 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다.”그러나 97년 IMF 전까지 정부에서는 은행의 도산이나 퇴출은 거의 상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몇십 조원 규모의 예금보험금 지급에 대비해 예금보험제도를 운용해온 것은 아니었다.그래서 공짜나 다름 없는 수준의 그야말로 명목상의 예금보험료만을 금융회사에서 징수해온 것이다.그러나 앞으로는 은행의 도산이 불가피하며 금융회사의 퇴출도 시장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정부방침이 확실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예금보험료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 예금보험제도의 건전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그리고 금융회사에서 부담해야 할 예금보험료를 일반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는 사회적 정의에도 맞지 않고 예금보험제도가 당초에 도입된 취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물론 은행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당장 크게 올려 받기는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또 은행들이 사정이 어려울 때에 지급해야 할 보험료 납부를 일시적으로 유예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납부 자체를 면제해 준다면 이는 정부가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의 임직원, 또는 대부분 외국인들인 주주들에게 거액의 정부 보조금 내지는 특혜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특히 최근 국내은행의 주식을 50% 이상 심지어는 70% 가깝게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외국인에게 배당소득이나 자본이득을 안겨주고 있는 꼴이다.다행히 2001년부터 은행들의 영업수지가 좋아졌다고 하니 빠른 시기에 예금 보험료를 현실화해야 할 것이다.요즘 들어 당연히 내야 할 예금보험료를 내지 않고 그 덕에 영업상 이익을 조금 실현했다고 해 금융회사의 임원들이 몇십억 원이나 되는 스톡옵션이나 퇴직위로금을 챙기려 한다는 사례를 접할 수 있다.우리는 이같은 모럴 해저드가 판치고 예금보험기금의 건전성을 이른 시기에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생길 수도 있는 금융시장에 대한 새로운 위협과 국민들의 추가부담들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