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에 데운다고 말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십중팔구 식품류다. 레토르트 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식은 밥에서 냉동피자에 이르기까지 전자레인지는 먹거리 고민을 가볍게 풀어주는 만능해결사이다. 때문에 전자레인지 안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먹거리일 수밖에 없다. 따끈따끈하고 먹음직스런 음식이 되기 직전의 먹거리가 아니고는 전자레인지 안에 들어갈 수 없다.일본 의약품 시장의 최근 2~3년간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이같은 선입견을 뒤집은 상품이 크게 늘어났다는 데 있다. 식품류만을 집어넣는 줄 알았던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고객의 만족을 극대화한 상품이 줄지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초단시간에 고열을 가해 주는 전자레인지의 장점을 주목해 만들어진 상품은 어깨 등 신체 특정부위를 찜질할 때 사용하는 패드류. 전자레인지에 잠깐 집어넣어 가열시킨 후 사용하는 찜질 패드는 지난 98년 말 ‘피푸 후지모토’사가 선발 주자로 제품을 내놓은 데 이어 고바야시제약 등 대형 의약품업체들도 앞다투어 참여, 업체간 경쟁이 한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피푸 후지모토사의 제품인 ‘피푸 호토패드’는 인스턴트 식품 등의 건조제로 쓰이는 실리카겔을 천으로 된 봉투에 넣어 만든 것으로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가열해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제품 상자에 같이 들어 있는 고정 띠에 달궈진 실리카겔을 넣어 목 둘레와 어깨, 허리 등에 걸치도록 하는 방식이다. 실리카겔은 열을 가하면 뜨거운 김을 뿜어내기 때문에 띠를 차고 있으면 찜질 효과로 뭉친 근육과 피로를 풀 수 있게 된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이 회사는 젊은 여성들을 겨냥해 만든 이 제품이 당초 예상과 달리 남성과 노약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자 99년 목, 허리 등으로 착용부위를 세분화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 회사 상품개발센터의 다나카 유코씨는 “1999년 겨울에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재미를 봤다”며 “경쟁사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어 2001년에는 제품 가짓수를 7종으로 늘렸다”고 밝히고 있다.유리구슬 등 내부 사용 재질도 다양전자레인지용 찜질 패드가 유망 상품으로 자리잡자 가장 먼저 추격에 나선 것은 상품개발의 귀재회사로 꼽히는 고바야시제약이었다. 고바야시제약은 2000년 10월 어깨, 허리, 무릎 등에 사용하는 제품을 ‘안메르츠 팀 마사’ 브랜드로 선보이고 겨울철 6개월간 10억엔의 매출을 올렸다.이 회사는 광물질계의 재료로 만든 특수한 유리 구슬을 사용, 보온효과를 높이면서 사용자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고바야시제약의 위생용품 개발팀 관계자는 “찜질 수건으로 어깨를 덮을 때 느끼는 감촉과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한 기분을 살리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주력제품은 어깨용이지만 이 회사는 몸에 맞을 정도의 넉넉한 사이즈에 충전재를 경쟁사들 제품보다 넉넉하게 넣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구매자의 80%가 20~50대의 여성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남성들 사이에서도 사용하기 편한 제품을 원하는 의견이 적지 않아 이를 반영했다는 것이 회사측 주장이다.고바야시에 이어 찜질 패드 시장의 또 다른 추격자로 나선 하쿠겐사는 ‘젤’을 충전시킨 제품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유담폰’의 브랜드로 2000년 9월부터 첫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하쿠겐은 2001년 9월 가짓수를 4종으로 늘리고 판촉활동에 영업력을 집중, 고바야시와 피푸 후지모토가 양분하고 있던 시장 판도를 3파전 싸움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하쿠겐은 제품 개발의 동기를 겨울철에 냉기를 없애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통에 더운 물을 채운 후 이불 속에 넣고 자던 풍습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시장 관계자들은 ‘온고지신’의 지혜가 현대판 히트상품을 탄생시킨 사례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3사간의 경쟁은 일본 의약품 유통업계에 ‘스팀전쟁’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샐러리맨들 고객이 많은 도쿄 간다역 앞의 한 약국 관계자는 “전자레인지를 옆에 놓아두었더니 남성 회사원들도 이제는 찜질 패드만 찾는다”며 “전자레인지에 사용하는 패드가 인기상품으로 뿌리내렸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