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펄프 사용 ‘부드럽고 덜 자극적’… 후발업체들 신제품 잇따라 출시, 경쟁 점입가경

지난해 12월 미국의 대테러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색다른 풍경이 잡혔다. 다름 아닌 ‘아기용 물티슈’로 얼굴을 닦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송된 것. 목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손과 얼굴을 닦는 유일한 수단으로 물티슈를 사용했던 것이다.국내 물티슈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유한킴벌리(이하 유한)가 이를 그냥 지나쳐버릴 리 없었다. 유한은 방송 장면을 사내 인프라넷에 재빨리 올려 직원들이 이를 마케팅에 십분 활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어찌 보면 그냥 재미로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시장점유율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이면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유한의 철저한 프로정신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물티슈 시장은 물론 기저귀 시장에서 유한이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인 셈이다.지난 87년부터 형성된 국내 물티슈 시장은 지난해 600여억원대로 이 중 40%를 유한이 장악하고 있다. 물티슈 시장을 국내에 처음 연 곳 또한 유한이다. 유한은 당시 ‘크린베베’라는 브랜드로 아기용 물티슈를 선보였다. 이미 기저귀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터라 보완제품이나 다름없는 물티슈 시장의 석권은 뻔한 일이었다.그럼에도 유한은 경쟁사들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산골짜기의 식품 잡화점까지 뻗어 있는 거미줄 영업망을 동원, 물량공세를 펼쳤다. 초창기엔 물티슈 시장 자체가 작아 경쟁사들이 끼여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늘어나고 좀더 간편하게 육아를 담당하려는 욕구가 증가하면서 시장규모는 해마다 50% 이상 성장을 거듭했다. 시장전문조사기관인 한국 AC닐슨에 따르면 국내 주부 10명 중 5명은 이미 아기용 물티슈가 생활필수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유한의 물티슈 야심작은 2000년 7월부터 시판에 들어간 프리미엄급 ‘하기스 골드 아기용 물티슈’이다. 이는 기존 크린베베보다 품질이나 기능 면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제품이다. 사실 유한은 프리미엄급에서 경쟁사인 니베아보다 몇 달 늦게 출시해 자존심이 약간 상하기도 했다.하지만 일찌감치 일반용 물티슈 시장을 장악해와 프리미엄급에서도 선두에 오르는 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지난해 시장규모가 400% 이상 성장한 프리미엄급에서 유한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로 거의 독점에 가깝다.유한 관계자는 “일반용 물티슈는 경기변동에 영향을 받으며 최근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프리미엄급의 경우는 경기에 상관없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미혼여성들도 미용티슈로 사용하기스 골드는 기능적인 측면만 놓고 볼 때도 일반용 물티슈와 차이가 크게 난다. 일반용 물티슈에 비해 두 배 이상 두툼해졌고 천연펄프를 사용해 재질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또 물티슈 표면에 곰돌이 모양과 엠보싱을 넣어 주부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영우 마케팅 팀장은 ‘하기스 골드 아기용 물티슈’를 기획하면서 두 가지 요소를 주안점으로 뒀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아기의 대소변이 잘 닦여야 한다는 기능적인 측면과 아기 피부에 자극이 없어야 한다는 피부보호적인 측면이다.자사의 특허공법인 ‘코폼(Coform)’을 통해 제작된 천연펄프를 원단으로 사용해 기존 물티슈 제품에 비해 부드럽고, 피부에 덜 자극적이라는 설명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프리미엄급 물티슈 시장에서 선두를 지키게 하는 요인이다.최근에는 프리미엄급 아기용 물티슈를 사용하는 계층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할인점에서 미혼여성들이 프리미엄급 아기용 물티슈를 구입하는 모습은 이미 낯익은 풍경이 됐다. 일반 물티슈에 비해 두툼하고 피부 자극이 덜하다는 인식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미용티슈로 사용하기 때문이다.그뿐 아니라 아기용 물티슈를 휴대하고 다니는 미혼남성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체 물티슈 시장에서 아기용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우는 10%에 불과한 것으로 회사측은 설명하고 있다.한편 프리미엄급 물티슈 시장은 유한의 하기스 골드 외에 한국존슨앤드존슨의 ‘존슨즈 베이비 스킨케어 와이프’와 니베아의 ‘니베아 로션 티슈’ 등이 메이저를 이루고 있다. 이와 함께 롯데마그넷은 마그넷 PB(자사 브랜드)의 프리미엄급 아기용 물티슈를 기획해 직접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어 향후 이들간 경쟁도 볼만하다.INTERVIEW 이영우 Wet Wipes 마케팅 팀장“온갖 아이디어 수집, 제품에 반영”프리미엄급 물티슈 시장을 호령하는 유한킴벌리에는 이영우 Wet Wipes 마케팅 팀장이 있었다. 그는 2000년 2월 프로페셔널 마케팅(산업용품)에서 오래 몸담고 있다가 옮겨왔다.“프로페셔널 마케팅에서의 오랜 경험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회사나 저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제품도 낯설더군요. 더욱이 물티슈 시장은 아기용 물티슈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육아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던 터여서 막막한 감마저 들었습니다.”하지만 이팀장은 ‘마케팅은 제품과 시장을 잘 알고, 그 분야에서 경험이 많다고 해서 항상 성공하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밀어붙였다. 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기획력과 창의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제품과 시장, 이에 맞는 전략이 나온다는 것.이팀장은 이때부터 닥치는 대로 물티슈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친척이나 친구들, 선후배 할 것 없이 물티슈에 대해 물어보고 ‘뭐가 불편한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뭔지’를 틈나는 대로 묻고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물론 회사에서도 아기 물티슈에 대한 여러 소비자 태도조사 등을 통해 마케팅 전략에 필요한 객관적인 근거를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그는 제품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마케팅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소비자들은 여러 장을 겹쳐 쓰지 않고도 한 번에 깨끗이 아기들의 대소변을 처리하는 제품을 원하는데, 시중의 제품들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수요는 외면한 채 기존 제품으로 가격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코폼 공법을 도입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가격보다는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전략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어갈 수 있도록 광고나 영업망을 통해 ‘훨씬 두툼한 물티슈’라는 하나의 목소리(One Voice)를 낸 것이 주효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그리고 제품의 특징을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이러한 장점을 집중적으로 알려 ‘하기스 골드 아기 물티슈는 출시 1년여 만에 프리미엄 제품 가운데 70%에 달하는 점유율을 보이면서 성공한 제품으로 자리잡게 됐다.“지금도 꾸준히 시장점유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경쟁사들도 브랜드나 제품력 면에서 만만치 않을뿐더러 1위 브랜드를 계속 이어가려면 남다른 준비가 필요하죠. 요즘도 매달 발표하는 시장점유율 자료를 보면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습니다. 점유율이 올라가면 그 추세를 어떻게 하면 유지할까 하는 생각과 점유율이 내려가면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느라 입술이 마릅니다.”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처음을 생각하면서 순간의 현상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객관적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