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부터 상호신용금고가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금고에서 품격(?)이 높은 은행으로 격상된 것이다.계급과 품격을 중시하는 같은 동양 문명권인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즉 예전에 중소금융기관인 신용금고들 중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신용금고를 지방은행으로 격상시켜준 일이었다.IMF 외환위기 이후 지방은행은 물론 전국 규모의 시중은행도 퇴출되는 사태를 겪으면서 은행이라는 명칭이 지닌 품격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은행이라는 명칭에서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 상품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신뢰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상호저축은행으로 품격이 격상됨을 계기로 금융감독원에서는 ‘은행명칭 사용에 걸맞는’ 건전성을 확보해 서민 금융기관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신용금고에 대한 감독행정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의 지침을 발표했다.그 내용 중에는 자기자본 지도비율을 종전의 4%에서 5%로 상향 조정하며, 아울러 2001년말 현재 평균 15.7%인 신용금고의 부실채권(고정이하 여신) 비율을 2002년 말까지 10% 이하로 감축하도록 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이를 위해 금감원에서 개별 신용금고와 ‘부실채권 감축계획에 대한 약정서’를 체결하고 분기별로 이행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미 이행 금고에 대해서는 건전성 감독 강화 차원에서 검사를 거듭 실시하고 감독관 파견 등의 강력한 조치도 불사하겠다고 한다.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성이 결여된 감독행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한편으로는 떡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뒤통수를 치는 격이라고나 할까.상호신용금고는 지난 98년 이후 최근 4년간 당기순이익은커녕 당기순손실이 해마다 누적되고 있고, 그 누적 금액은 전체 상호신용금고의 자기자본 금액을 상회하는 3조원에 이르고 있다. 총여신금액도 98년 말의 26조원 수준에서 2001년 말에는 20조원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 추세에 있다.이는 최근 각종 게이트에 연루된 상호신용금고들이 변칙적인 자금운용 등으로 금고에 거액의 손실을 가져온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상호신용금고의 어려운 영업환경이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려고 해도 금고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비상장기업인 신용금고의 경우 일반 대중으로부터의 자금조달은 곤란하고 결국 대주주의 재력에만 의지해 증자해야 하는데 이도 쉽지 않다.또 부실채권 비율을 낮추는 문제는 감독당국보다도 오히려 당사자인 신용금고들이 그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왜냐하면 부실채권비율이 낮아져야 수익성도 개선되고 재무구조도 건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실채권 비율을 단기간에 감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은행권에서는 2001년에 무려 40조원의 부실채권을 정리해 2000년말 8%에 달했던 부실채권 비율을 2001년 말에는 3.4% 수준으로 감축하는 데 성공했다.만일 신용금고들도 은행들처럼 부실채권을 줄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만 있으면 적어도 10% 수준으로 부실채권 비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 속에서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이 격상되는 대가(?)로 부실채권 비율을 감축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한 것이라면 이는 우리 금융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왜냐하면 지난해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이 전년도의 8% 수준에서 갑자기 3% 수준으로 감축됐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양뿐’인 부실채권 감축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은행권에서는 지난 1년간 유동화채권(ABS)의 발행을 통해 약 11조원의 부실채권을 정리했다고 한다.은행이 부실채권을 담보로 유동화채권을 발행해 이를 매각한 경우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는 부실채권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매조건이 붙어 있거나 보증이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또 부외의 잠재손실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어서 실제로 부실채권을 감축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그리고 은행은 부실기업의 채무를 출자전환 해 주고, 부실기업의 채무를 탕감하는 등 이른바 기업정상화 금융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살아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여신 약 8조원을 부실채권이 아닌 정상채권으로 재분류 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그러나 신용금고의 경우에는 최근 200여개나 되던 금고의 숫자가 반으로 줄 정도로 영업환경이 악화된 상태이다. 그뿐 아니라 지난 4년간 결손이 누적돼 영업이익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하기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은행들처럼 많은 수수료 부담이 소요되는 자산유동화 채권의 발행도 어렵고 채무를 출자전환 하거나 채무를 탕감해 주는 등 기업정상화 금융을 지원해 부실채권을 정상채권으로 재분류할 수 있는 묘책도 통하지 않는다.신용금고의 자기자본 비율의 인상이나 부실채권 비율의 감축이라고 하는 감독당국의 요구사항은 상호저축은행으로 품격이 격상된 신용금고의 단순한 품위 유지비(?)라고 하기에는 몹시 커다란 부담으로 느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