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파문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의 7대 기업이 망했다’는 단순한 사실보다 미국 기업과 회계법인들이 자신하던 ‘회계에 대한 신뢰’가 붕괴됐다는 점에서다. 엔론의 정치권에 대한 로비 의혹은 드라마를 재미있게 해주는 감초일 뿐이다.엔론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엔론주식을 소유하고 있던 일반투자자들이다. 그중에는 시장에서 엔론주식을 산 사람도 있지만 퇴직연금 마련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 엔론주식을 통째로 매입한 종업원들도 있다. 이들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게 됐다. 한때 90달러에 이르던 주식값이 휴지조각으로 바뀐 탓이다.이제 투자자와 종업원들은 엔론 몰락에 대한 노여움을 가라앉히고 이 스캔들이 주는 교훈을 새겨야 할 때다. 쓰라린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제2, 제3의 엔론에 당하지 않는 방법 10가지를 말하고 있다. ‘엔론에서 배우는 10대 교훈’이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주식투자자들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1) 애널리스트들을 믿지 말라기업분석 애널리스트은 그들이 담당하는 기업들과 ‘아주 긴밀한 특수관계’에 있다. ‘근친상간’이란 표현까지 있을 정도다. 월가에서 활동하는 애널리스트들은 약 3만명. 이들이 주식을 추천할 때는 평균 66%가 ‘강한 매수’나 ‘매수’이다. ‘매도’를 권하는 경우는 평균 1% 미만에 그칠 정도이다. 미국 경제가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던 지난해 9·11 테러 직후 주가가 급락할 때도 애널리스트들의 추천은 ‘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때도 ‘매도’ 추천은 1.4%에 지나지 않았다. 엔론이 파산 직전에 이를 때까지 적지 않은 애널리스트들이 ‘강한 매수’를 권하기도 했다.2) 기업의 위험신호를 주시하라텍사스주의 평범한 가스공급회사가 10년 만에 거대 에너지중개회사로 떠오르고 그 규모가 미국 7대 기업에 달했을 경우 프로투자자라면 당연히 그 주식을 사야 한다. 물론 회사의 재무상황은 CEO였던 케네스 레이(Kenneth Lay)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므로 일반투자자들이 알기는 쉽지 않았다.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엔론이 망하기 몇 달 전부터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위험신호’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버드 MBA 출신으로 신경제 CEO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이 그토록 꿈꾸던 1인자 자리에 오른 지 불과 몇 달 만에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갑작스레 회사를 떠난 것은 첫번째 징후였다.이때 주가는 이미 연초대비 57% 떨어진 36.75달러였다. 10월 중순 엔론이 이익을 수정한다고 발표한 것도 또 다른 신호였다. 이때만 팔았어도 주당 26달러는 건질 수 있었다. 지금은 26센트에도 팔기 힘들다. 99년 이후 경영진들이 무려 10억달러어치의 주식을 내다팔았다는 점에서도 뭔가를 알아챘어야 했다.3) ‘독립경영’은 하나의 환상이다외부인으로 구성된 기업 이사회 멤버는 회사 안에 있는 경영진들과는 아주 친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친할 뿐 아니라 이들은 대부분 회사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돈을 주고 컨설팅업무를 맡기는 회사의 간부가 이사를 맡는 식이다.결국 사외 이사들의 수에 관계없이 회사 경영진들은 독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 엔론과 함께 문제가 된 타이코인터내셔널의 경우 CIT그룹을 100억달러에 인수할 때 중개역할을 해준 사외이사 플랭크 왈시에게 사례금으로 1,000만달러를 주었고 그가 관여하고 있는 자선단체에도 1,00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4)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사외 이사들이 제대로 된 업무를 할 수가 없다. 어떤 이사들은 상당히 많은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느라 해당 회사내용을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하다. 능력이 모자라는 이사들도 상당수다. 몇천 개의 파생상품을 취급했던 엔론처럼 기업거래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나 사외이사 가운데는 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실정이다.5) 숫자를 왜곡하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다엔론이 수익을 실제보다 부풀리도록 장부를 조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엔론은 장부 조작을 통해 막대한 손실을 감추고 수익을 낸 것처럼 위장했다. 이에 따라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엔론 외에도 많은 회사들이 변칙적인 회계처리를 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6) 특별 파트너십(자회사)을 잘 파악하라우리식의 자회사 개념인 특별 파트너십은 리스크가 많은 벤처비스니스를 수행할때 많이 이용된다. 문제는 엔론의 경우 특별 파트너십들에게 부채를 넘기는 등 장부를 조작했다는 점이다. 엔론은 이들을 통해 부채를 감춘 것은 물론 이들과의 거래에서 이익을 낸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7)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투자분산엔론사태는 투자 다양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엔론처럼 종업원들이 퇴직연금을 오로지 자기 회사주식 매입에만 사용했을 경우 그것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퇴직할 때가 가까운 엔론직원들의 경우 몇십만 달러 이상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여러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고전적 투자격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8) 재산은 덧없는 것이다주식은 팔아서 현금화할 때까지 어떤 이익도 현실화된 것이 아니다. 엔론 종업원들은 자신들이 저축한 자사주식이 주당 90달러 이상 거래되는 것을 보았으나 이는 거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승에 눈이 어두워 현재 장부가의 손실과 실제 손실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장부상의 이익은 장부상의 이익일 뿐이다.9) 기적을 기대하지 말라많은 신규투자자들은 지난 90년대의 연간 20% 상승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현실은 70년 이후 처음으로 연평균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S&P 500지수는 지난 70년간 연평균 11.4%의 투자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두 자릿수 상승시대는 잊어야 한다. 연간 수익률이 7% 선이면 이상적인 것으로 기대해야 한다.10) 규제자들은 약한 사람들이다회계법인들은 컨설팅 업무와 회계감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상당수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기업 내부자들의 주식거래 동향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고하도록 하고 △종업원 은퇴연금의 자사 주식보유를 제한하며 △자회사를 통한 장부외 거래를 통제하는 것 등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규제가 곧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큰 오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