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침체는 경제가 아닌 정치·사회문제에서 비롯된 것

피터 드러커미래학자 교수미래학자이며 저서 <21세기 지식경영> 등으로 잘 알려진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박사가 라는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드러커 교수의 책은 이재규 대구대 경영학과 교수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해 왔다.이교수는 92년말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Post Capitalist Society) designtimesp=22134>를 처음 번역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이교수는 지난 2월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있는 드러커 박사를 만났다.지난해 9·11 테러 사건 이후 국제관계가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표현한 후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에 관한 얘기들이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박사님은 남북한 문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전쟁 위협은 좀더 완화되리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전쟁 도발국가가 상대방 국가를 초기에 철저히 파괴하지 못하고 반격을 받아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당할 것을 예측한다면 어느 나라도 전쟁을 쉽게 일으키지 않겠지요.한국은 아마도 10년 안에 통일될 것으로 봐요. 그것도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마치 10년 전 동·서독처럼 말이지요.다시 말해 지금부터 10년 이후까지도 북한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것보다 나은 경제체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속 북한체제에 순응하리라 보기는 어렵지요.따라서 10년 이내 한국의 경영자들은 북한의 인적 자원을 활용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으로 봅니다.박사님은 지식사회, 지식근로자, 그리고 지식생산성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또 그것이 인구의 변화와 큰 연관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특히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에 큰 의미를 갖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날 인구계층은 어디일까요.물론 노동력의 중심이 완력을 사용하는 육체노동자에서 두뇌를 사용하는 지식근로자로 바뀐다는 것이겠지만, 그것말고도 고려할 것이 많아요. 노후를 준비한 노인인구가 급속히 증가한다는 것, 그리고 인구증가율이 감소한다는 것도 사회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것들이지요.무엇보다도 한국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여성 인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일 거예요. 지식의 응용은 성(性)과는 무관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1870년대 우리 할머니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1900년대초 우리 어머니 시대까지도 여성은 가정 바깥에서 할 일이 별로 없었지요.그러나 정보기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지식사회에서는, 다시 말해 컴퓨터 앞에서 머리로 일하는 사회에서는 여성이 오히려 더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지식근로자란 본질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거나, 각종 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지식근로자는 주어진 과업을 좀더 생산성 높게 수행하고, 그리고 품질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지요.박사님은 지금과 같은 온캠퍼스 대학(On-Campus University)이 통학시간과 비용열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한 일이 있습니다. 정보기술이 한층 더 보급되고 있는 지금 그 예측은 좀더 현실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내가 속해 있는 클레어몬트 대학은 오로지 미국 내의 대학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 대학들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의 고교졸업자들을 놓고 이미 뉴질랜드와 호주의 대학들과 경쟁을 하고 있지요.그리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학은 인터넷 대학인 피닉스 대학입니다. 1840년대 철도는 물리적 거리를 단축했다고 한다면, 인터넷은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를 아예 없애버렸지요.인터넷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발휘할지는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것은 기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그것과 관련해 새로 나올 책에서 박사님은 앞으로 기술해독능력(Technology Literacy)보다는 정보해독능력(Information Literacy)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증기기관의 발명부터 시작해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인류는 기술을 어떻게 이용해 생산성을 향상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지요.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다시 말해 두뇌활동을 확장하는 정보기술이 등장한 이후로는 정보기술 자체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를 넘어, 새로 수집된 정보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기존 지식들을 활용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것이 경쟁우위를 유지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한때 세계가 일본식 경영방식을 배우자고 야단법석이었는데, 최근 일본의 문제가 저렇게 심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지금 일본의 문제는 경제와 경영의 문제 이전에 정치와 사회 문제예요. 일본의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 의회를 움직여 선거구에다 지나치게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해요. 결국 생산성이 없는 곳에 자원을 계속 투입해 보았자 달라질 것이 없어요.또 보조금 가운데 상당 부분은 정치헌금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그리고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의식해 기업이 종업원들을 해고하지 못하도록 압력도 넣지요. 사실 몇백만 명의 종업원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면 일본 사회에는 큰 동요가 일어날 겁니다. 이런 것은 경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문제예요.대다수 사람들이 박사님을 미래학자로 인식하고 있고, 또한 박사님은 경영과 사회에 대해 실질적으로 많은 예측을 했음에도 예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실제로 시간만을 변수로 한 예측만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행성의 궤도, 일기예보, 계절의 변화 등이 그렇지요. 자연현상에서 기적이란 무엇인가요. 기적이란, 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그 반대로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기적이지요. 다시 말해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잠시 연기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치명적인 암에 걸린 사람이 의사가 진단한 생존기간보다 오래 살고 있는 것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죽음이 연기된 것이지 죽을 운명의 사람이 영원히 살게 된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기적이란 매우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 같은 일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려면 그 원인들이 먼저 형성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어떤 고유하고도 독특한 현상이 일어나면 그 결과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있습니다.예를 들면 19세기까지는 일반 평민들이 사회적 상승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교육기회가 귀족외에 평민들에게도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회현상에는 자연현상 법칙(Natural Law)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따라서 사회과학자는 새로운 현실을 초래할 사회적 변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래를 예언하는 미래학자(Futurologist)가 아니라 사회생태(Socioecology)를 분석해 이미 일어난 미래를 관찰하고 새로운 현실을 제시하는 사회생태학자(Socioecologist)예요.사회 분야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에요(드러커 박사는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을 지금 결정해야 한다고 그의 저서 여러 곳에 쓰고 있다). jklee480808@ 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