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가전시장에 통념을 뒤업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가전제품을 만들어 파는 유명회사가 가전제품 렌털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도시바’.이 회사는 지난해 4월부터 렌털 사업을 시작, 가전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데 이어 경쟁업체들의 신규 참여를 자극, 렌털 비즈니스를 신종 유망사업으로 키워가고 있다.도시바가 렌털 대상으로 내놓고 있는 품목은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TV 등 모두 네 가지. ‘독신 생활을 응원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독신자와 지방으로 전근가는 단신 부임자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가전제품의 사이즈는 한결같이 소형이다. TV의 경우 화면이 14인치짜리며 나머지도 모두 미니 사이즈다. 회사측이 준비해 놓고 있는 모델의 종류가 한정돼 있어 고객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모델을 선택할 여지도 거의 없다.하지만 제품만은 새것이다. 렌털이라고 해서 중고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돈을 주고 한꺼번에 장만하려면 줄잡아 15만엔은 주어야 하는 신제품들이다. 이런 가전제품들을 월 3,500∼4,500엔에 빌려준다. 계약기간은 최저 2년. 기간이 2년이면 월 4,500엔을 받지만 4년이면 3,500엔으로 깎아준다. 빌려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루 캔커피 하나 값으로 생활필수품을 신품으로 장만할 수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가전제품을 처음에 고객 집으로 실어다주고 설치하는 비용도 받지 않는다(일본의 가전양판점에서는 배송료를 요구하는 것이 기본 관행). 렌털 기간이 끝나도 도시바측이 무료로 수거해 간다. 사용기간 중 고장이 날 경우 24시간 신고를 받고 있는 도시바에 연락만 하면 직원이 새것으로 교환해 주고 간다. 쓰고 난 중고 가전제품을 버릴 때의 경제적 부담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4월부터 가전제품 리사이클법이 시행돼 품목에 따라 2,400∼4,600엔의 처리비용을 사용자가 내야 한다.중고품이 아닌 신제품 대여해줘도시바가 신규고객 확보에 장애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 렌털 사업에 뛰어든 목적은 세 가지였다. 무엇보다 수요층이 넓고 풍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신학기와 입사 시즌이 겹치는 4월이 되면 150만여명의 각급 학교 신입생이 생겨나고 혼자 근무지를 옮기는 단신 부임자들도 엄청나 이들을 고객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었다.또 반복 구매의 가능성도 도시바가 기대한 효과를 가져왔다. 도시바 제품을 써본 고객이라면 결혼을 하거나 가정으로 돌아갈 때 다시 도시바 제품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의도였다. 셋째 소비자에서 메이커에 이르는 제품 리사이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폐제품을 무단 투기하는 사람이 법률 시행전보다 세 곱절이나 늘어난 상황에서 렌털사업은 무분별한 투기와 그로 인한 회사 이미지 훼손을 막아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렌털 품목의 주이용 고객은 예상대로 독신 생활자와 학생, 영업사원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도시바는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잠재고객의 추가 확보를 위해 이 회사는 부동산 중개업소와 주택관리회사 등과 제휴, 신규 입주자를 대상으로 공격적 판촉활동에 나서고 있다. 또 이토요카도 등 대형 슈퍼체인 업체들과도 손잡고 슈퍼 매장의 이벤트 참석을 통해 독신 생활자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렌털 사업은 대형 가전사 중 산요도 참여를 검토 중에 있어 가전업체들의 새로운 경쟁 무대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폐제품의 처리가 큰 고민거리로 등장할 것”이라고 지적, “렌털 사업은 환경친화적 뉴 비즈니스로 각광을 받을 전망”이라고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