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이냐, 수익이냐. 보험사들이 고민에 빠졌다.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까. 국내 22개 보험사의 자산 총액은 137조 9,621억 7,700만원. 엄청난 큰손이다.게다가 보험자산은 기간이 길기 때문에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장기 투자 자산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식시장은 활황세를 보이고 있으나 선뜻 주식투자에 나설 수도 없다. 보험자산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지난해 말부터 국내 보험사들은 앞다퉈 ALM(자산 부채 관리)개념에 입각해, 유행처럼 자산구성 재편성에 나섰다. 가급적 전체 운용 자산 가운데 안정적 이자 수익(Income Gain)을 올릴 수 있는 자산의 비중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자산운용 포트폴리오 재구성의 큰 방향. 생명보험사는 대부분 부채의 만기구조가 길기 때문에, 건전성에 역점을 두고 자산을 운용하려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유럽계 미국계 등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대부분의 외국계 보험사 한국법인들은 애초부터 철저히 이같은 원칙에 입각해 자산을 운용한다.장기채 물량 적어 부채 기간과 매칭 어려워하지만 사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말처럼 간단치 않은 일이다. 우선 원칙대로 하자면, 시중금리의 단기 변동과 관계 없이 채권을 사야 한다.즉 채권 외에 다른 장기 자산 운용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면 금리가 상승(채권값 하락)해도 불구하고 계속 채권을 사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자산운용 수익률은 당연히 떨어지게 돼, 고객에게 돌려줄 배당이나 회사의 이익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장기 운용이 녹록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나라 채권시장의 특성상 장기채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푸르덴셜 생명의 대표계리인 조의주 부장은 “사업 초기에는 장기채에 관심을 가지는 보험사들이 없어 7년물 국고채를 싹쓸이했으나, 최근에는 경쟁이 치열해져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없다. 대안으로 특수채와 우량 회사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중소형사에 속하는 ING생명은 여전히 ‘무조건 정도’를 고집한다. 자산 구성도 매우 단순하다. 80%는 채권, 그것도 회사채보다 만기가 긴 국고채 중심이다. 이 회사는 대출 자산도 전혀 없다. 그런데 최근 ‘무조건 주식편입 0%’를 고집해온 이 회사조차 주식투자를 검토했다.“검토는 했으나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지만, 고민의 수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교보생명은 지난해말 자산 재편원칙을 시행키로 하고, 낮은 값에도 불구하고 주식 상당수를 처분했다. 하지만 정리한 직후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해 이래저래 손해를 봤다.1위 대형사인 삼성생명은 고민 끝에 자산운용을 아웃소싱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안에 15조원에 이르는 채권운용 전체 업무를 계열사인 삼성투자신탁운용 등 외부 회사에 맡긴다는 것.이 회사는 매킨지의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이같은 방향을 추진 중이다. 4월 중 5조원쯤을 삼성·대한·한국 등 3투신사에 위탁하고, 하반기에 15조원 전부를 아웃소싱할 예정이다.삼성생명에서는 2,000억원 규모의 상품주식과 해외채권만 직접 운용한다. 저금리 시대에 안정과 수익을 모두 좇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이 회사는 지속적으로 해외투자를 늘려갈 계획이다.최근 주가가 조정국면을 지속하는 시점을 전후해, 투신운용사 등 증권가에는 보험사의 자금이 속속 유입되고 있다. 직접투자에서도 4월 1일부터 11일까지, 보험사들은 901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증권사는 하루, 은행은 1년, 생명보험사는 30년짜리”라고 한다. 바로 한 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예측하기 어려운 터에, 30년을 내다보고 경영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장기 원칙이 단기 주가 상승에 쉽사리 흔들리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