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최근 위성채널을 통해 만화영화 <철완 아톰 designtimesp=22180>을 앵콜 방영해 시청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한국에도 소개돼 높은 인기를 누렸던, 아주 오래된 만화영화다.흑백 필름 상태의 화면이 60년대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어른 시청자들까지 화면 속으로 빨아들인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로봇이다.사람의 얼굴을 하고 ‘아톰’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계 인간인 것. NHK는 아톰을 오랜 친구나 영원한 벗으로 생각하는 성인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이번 방영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아톰이 일본인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심어놓은 데서 알 수 있듯 로봇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유별나다. ‘로봇’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면 위험하고 힘든 일을 사람 대신 해주는 산업용 로봇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본의 사정은 다르다.애완용 로봇이 오래 전 등장한 데 이어 이제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것은 물론이고 뜀박질하는 로봇까지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주부들의 청소 고민을 덜어줄 로봇이 나타났는가 하면 주인이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도록 집을 지켜주는 로봇까지 모습을 드러냈다.일본 로봇산업의 대중화를 리드하는 선두 주자는 단연 전자메이커 ‘소니’와 자동차 회사 ‘혼다’의 양 축이다. 두 업체는 혼다가 재작년 가을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내놓고 인기몰이에 선수를 친 가운데 소니가 또 다른 고기능 로봇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등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혼다의 아시모가 누리는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다. 마치 우주비행사를 연상케 하는 신장 120cm의 아시모는 TV CF의 인기 모델로 자리를 굳힌 것은 물론 어린이 과학관의 안내직원으로도 등장해 갈채를 받고 있다.특히 유럽 현지에서 촬영한 CF는 아시모의 걷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 서양 어린이들의 놀란 표정과 호기심 어린 눈을 통해 혼다의 기술력을 은근히 뽐내고 있다. 서양 콤플렉스를 지우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아시모의 광고를 보면서 일본의 실력에 자부심을 느낄 것은 뻔한 이치다.혼다가 인간형 로봇에서 한 발 앞서 갔다면, 소니는 인간형 로봇뿐 아니라 애완용 로봇 등 다양한 신제품 개발과 대중화와 속도에서 혼다를 앞지르고 있다.특히 소니가 미국의 벤처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손잡고 개발한 강아지 모양의 로봇은 지금까지 등장한 로봇 중 가장 빠른 스피드로 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시판 중인 소니의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를 토대로 만든 이 로봇은 네 발로 뛰는 스피드가 분속 70m로 사람의 보행속도와 맞먹는다. 발 끝에 센서를 내장, 지면에 앞발이 닿으면 0.01초 후 땅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동작을 반복하도록 돼 있다. 스프링이 장착된 인공 근육을 다리에 붙여 땅에 발이 닿을 때의 충격을 줄여주는 한편 위로 솟아오르는 힘이 생겨나도록 했다.소니는 인간형 로봇에서도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제품을 선보였다. 3월 중순에 공개한 ‘SDR-4X’라는 이름의 로봇은 두 발로 걷는 것뿐 아니라 넘어졌을 때 땅을 짚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놀라운 것은 운동 능력만이 아니다. 5만어 이상의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이 로봇은 주인을 알아내고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을 지녔다. 사람처럼 희로애락 등 6가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데다 노래까지 부를 수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섬뜩한 감정까지 느끼게 할 정도다.소니는 신장 58cm, 체중 6.5kg의 이 로봇을 곧 대량 제작해 시판할 예정인데, 가격이 승용차 1대값과 맞먹는 200만엔 전후에서 책정될 것으로 보여 시장의 반응이 주목된다.마쓰시타전기는 전자, 센서기술을 응용한 청소 로봇을 내놓아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일반 가정용으로 개발된 이 로봇은 50개의 센서를 탑재, 적외선과 초음파로 앞에 놓인 장애물과 거리를 측정해 내는 특징을 지녔다. 스스로 알아서 실내를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구석구석 청소해 주는 이 로봇을 마쓰시타전기는 앞으로 2~3년 후 약 50만엔의 가격으로 판매할 방침이다.길이 37cm에 중량 9.8kg의 이 로봇은 진공청소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제작돼 일반 가정에도 무리 없이 파고들 것이라고 회사측은 자신한다.산요전기는 집 지키는 개 로봇을 일본 벤처기업 ‘테무자크’와 공동으로 개발해 냈다. 공룡을 모델로 해 네 다리로 걷도록 제작된 이 로봇은 앞부분에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집을 찾아온 손님의 동화상을 카메라로 촬영해 외출 중인 주인의 휴대전화로 송신해 주는 최첨단 기능을 가지고 있다. 주인은 집 밖에 나가 있을 때도 휴대전화를 이용해 원격으로 동작을 제어할 수 있는 게 또 다른 특징이다. 산요전기는 이 로봇을 2003년부터 개당 100만엔 전후의 가격으로 시판에 들어갈 계획이다.보안업체인 종합경비보장은 4월부터 경비용 로봇의 판매를 시작했다. 이동, 주행을 자율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기능이 장착된 이 로봇은 센서로 사람이 오고 가거나 화재가 발생하는 것 등을 가려내는 능력을 가졌다.상황을 판단한 후 리얼타임으로 감시센터에 통보해 주는 기능도 갖췄다. 또 엘리베이터를 자동제어해 건물내 각 층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시센터에서 원격조정으로 전해지는 명령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회사는 시판 첫해 동안 우선 10대 정도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일본 SGI와 로봇전문회사 ‘플라워 로보텍스’가 공동제작한 인간형 로봇은 외부 손님을 맞는 접수창구의 안내원 대역으로 제작된 게 큰 특징이다.3세 여자 어린이를 이미지화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바퀴를 달고 있어 무선조작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팔과 목을 움직이는 한편 사무실 안내까지도 맡아할 수 있다.일본 전문가들은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개인용 로봇 시장의 규모가 아직 미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마음 놓고 부릴 수 있는 로봇의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연구, 개발도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과 같은 성과가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사정은 크게 달라지리라는 게 일치된 견해다. 이들은 중국 등 저임금을 무기로 한 후발공업국의 추격에 밀려 일본 제조업이 위기를 맞았지만 첨단 전자, 기계기술이 필수조건인 로봇만큼은 어림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로봇산업이야말로 일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며, 특히 2005년쯤이면 개인용 로봇은 현재의 산업용 로봇과 맞먹는 연간 5,000억엔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이들은 개인용 로봇의 실용화 및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화의 열쇠가 ‘가격’에 달려 있다며 값만 해결된다면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소니의 경우 애완용 로봇을 2001년 가을부터 시판했지만 가격(9만 8,000~18만엔)이 부담스러운 탓인지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의료기업체 오무론이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고양이 모양의 로봇 ‘네코로’도 18만 5,000엔의 비싼 가격 때문에 지난 3월 말까지의 판매량이 목표 5,000개를 크게 밑돌았다.이같은 현상과 관련, 소니의 한 임원은 “3월말 열린 로봇박람회에 몰린 인파와 열기를 감안하면 로봇 시장의 성장가능성은 무한하다”며 “가격을 얼마나 끌어내리는지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yangsd@hankyung.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