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서울에서 출퇴근하며 살고 있는 서울시민들에게는 서울은 그냥 예전의 서울일 뿐이다. 그러나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예전과 상당히 달라졌다. 서울의 중심, 종로에 우뚝 솟아 있는 프레이저 스위츠, 삼성동의 오크우드 등은 장기체류 외국인을 위한 전용시설이 갖춰져 있다.초펭삼 프레이저 스위츠 사장은 “해마다 10%씩 증가하는 외국인의 초기 정착을 돕기 위해 세탁과 탁아, 투숙객 자녀의 등하교 셔틀버스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개념의 주거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거리의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외국계 금융기관의 간판이 서울 곳곳에 내걸리는가 하면, 밤에는 뉴욕이나 홍콩처럼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에서 마티니 한 잔을 걸친다.웨스틴조선호텔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지난해 이맘때보다 엄청나게 늘었다”며 “월드컵 여행객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해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그는 “야외 바비큐 파티를 여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요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전했다.과연 서울은 도쿄와 상하이,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시아의 금융중심지, 국제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까. 김기환 골드만삭스 국제고문은 “금융중심지가 되려면 정보중심지가 돼야 하는데 아직 중국은 언론자유가 그리 많이 허용되는 곳이 아니다”며 “싱가포르도 활력이 많이 줄어 서울이 아시아의 중심지로 부각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일단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얘기다.김고문은 최근 서울을 아시아의 금융중심지로 만들자는 취지로 ‘서울파이낸스포럼’을 결성했다. 이 포럼에는 정운찬 서울대 교수,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학자들과 제임스 루니 딜로이트 컨설팅코리아 부회장, 제프리 존스 미상공회의소 회장 등 외국계 인사들, 그리고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등 명망 있는 전문가들이 참가했다.서울파이낸스포럼은 오는 8월 말까지 서울이 아시아의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 발표할 예정이다. 김고문은 “한반도가 열강의 전쟁터에서 경제 요충지로 변모한 만큼 서울이 금융중심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부도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고 있다. 지난 4월 재정경제부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이란 두툼한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을 동북아 경제활동과 국제물류의 최적지로 성장시키겠다는 원대한 비전이 담겨 있다.서울에서 3시간 비행거리에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가 43개 있으며,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인 중국이 2시간 거리에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가 활성화된다면 몽골-러시아-중앙아시아-유럽까지 우리의 배후권역이 된다.여기에 인천국제공항, 부산항, 광양항 등 충분한 수송시설을 갖췄다. 게다가 서울은 세계 최대의 통신망시설로 연결된 첨단도시로 성장했다. 김용덕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한국의 장래를 좌우할 시급한 과제”라며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하지만 서울이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해선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제프리 존스 미상공회의소 회장은 “비즈니스 중심지가 된 뒤라야 금융중심지가 될 수 있다”며 “다국적기업들이 이곳으로 본부를 옮기려면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서울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존스 회장이 제시하는 유인책은 낮은 소득세율이다.그는 “한국은 8,000만원 이상 연봉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민세를 포함해 39.6%의 소득세를 물린다”며 “25%까지 낮춰야 외국인들이 자청해서 서울로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싱가포르에 있는 다국적기업에 물어봤더니 소득세율을 낮추면 서울에 오겠다고 말했다”며 “일본과 중국을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점이 서울의 장점”이라고 전했다.소득세 문제는 나라의 세수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다. 재정경제부가 선뜻 고액연봉자들의 세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전체 국민의 7%인 고액 연봉자들이 세수의 3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존스 회장은 “소득세율을 낮추면 고액 연봉자들이 자진해서 신고할 것”이라며 “고액 납세자들이 늘면 국가의 세수도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 미상공회의소 회장 임기 동안 한국에 다국적기업을 20곳 이상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문화중심지 역할도 기대세금과 함께 외국인들에게 불편한 사항은 생활환경이다. 특히 교육 문제는 개선할 점이 상당히 많다. 오이겐 뢰플러 하나알리안츠투신 사장은 서울에 온 지 3년째다. 그는 12년 전 독일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 하나를 뒀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즐겁지만 교육문제는 골치 아프다.“애들을 독일학교에 보내는데 수용인원이 적어 불편합니다. 게다가 독일은 13학년까지 있는데 서울은 10학년까지밖에 없어요. 그 뒤에는 얘들을 독일로 보내야 하는데 내가 얼마나 서울에서 일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합니다.”주차문제도 그에게는 심각하다. 서울 한남동에 사는 그는 종종 자신의 차고 앞에 다른 차가 주차된 것을 본다. 때로는 차내에 연락처를 적어놓기도 하지만 연락처를 남기지 않는 얌체족도 있다.오이겐 뢰플러 사장은 “연락처가 없는 차 때문에 경찰에 신고도 하지만 해결해주지 않는다”며 “만약 아이가 다쳤을 경우 이런 차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라고 걱정했다.또 다른 외국계 회사의 사장은 “공무원들의 어정쩡한 태도에 질렸다”고 불평한다. 그는 “홍콩은 규정이 명확하고 행정이 효율적이어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명확하다”며 “한국 공무원들은 처음엔 사업을 해도 좋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아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서울이 금융중심지 못지않게 문화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기환 서울파이낸스포럼 회장은 “서울은 경제중심지면서 동시에 문화중심지가 돼야 한다”며 “음악 분야에선 세계적인 스타들이 많이 배출돼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한다면 홍콩, 싱가포르와는 다른 도시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600년 넘게 한양(漢陽)을 지킨 서울의 비전은 오늘날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최근 서울을 찾은 영국 런던금융시장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마이클 올리버 시장은 “서울은 금융중심지보다는 금융서비스중심지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는 서울이 외국인들에게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서울에 세계 최고의 두뇌들을 불러모을 수 있다면 앞으로 600년 이상 더 번성하지 않을까.돋보기 아시아 국가별 비즈니스 환경 비교한국 소득세율 호주·베트남 다음으로 높아최근 싱가포르 정부가 발등에 불떨어진 것처럼 다국적기업의 유치에 나서고 있다. 현재 아시아 국가 중에선 홍콩 다음으로 낮은 소득세를 부과해 외국인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최근 소득세를 더 내린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싱가포르에 있는 한 다국적기업이 서울로 아시아지역본부를 옮기는 데 따른 조치다. 금융산업으로 성장한 싱가포르로서는 한국의 적극적인 투자유치가 부담스러운 것이다.싱가포르는 외국계 투자사에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예컨대 싱가포르 정부는 모든 외국계 투자신탁회사에 연금의 일부를 운용하도록 떼어준다. 치열한 입찰경쟁을 통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니 외국계 회사가 몰린다.홍콩은 행정부가 깨끗하고 일처리가 깔끔해 외국계 투자사들이 선호하고 있다. 게다가 소득세는 아시아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중 일부가 집과 사무실을 홍콩에 두고 있는 이유도 낮은 소득세 때문이다.비행기삯을 제하고도 남는 게 많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사실상 소득세율은 외국기업의 투자유치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한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 외국인들이 맘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가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아 이들을 유혹할 수 있는 포인트가 필요하다.최근 세계적 컨설팅 회사 PWC(Price Water House Coopers)는 부양가족 3인 기준으로 고액 연봉자들이 얼마나 세금을 내는지 조사했다(표참조). 20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직원의 경우 홍콩은 13%의 소득세율을 적용하고, 싱가포르는 15%를 적용한다.반면 한국의 경우 34%로, 호주와 베트남 다음으로 높다. 사실 경쟁국인 홍콩과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세금을 내는 셈이다.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르는 중국은 33%로 우리보다 1%포인트 낮다.이런 이유로 서울에 우수한 두뇌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소득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