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문 대대적인 재편 가능성
미래전략실 부활 관심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삼성전자가 이르면 내일(27일) 2025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5일 재판에 출석해 ‘삼성전자 위기론’을 거론하고 개혁 의지를 드러낸 만큼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권한은 있고, 책임은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미래전략실 부활 여부도 관심이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부터 DS부문을 중심으로 일부 임원들에게 퇴임 통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지난 5월 '원포인트 인사'로 취임한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이 취임한 이후 첫 정기인사다.

특히 ‘초격차’로 표현해온 기술 리더십에 제동이 걸리고 반도체 사업이 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임원의 이동과 퇴임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경쟁사에 밀렸고 주가도 올해 들어 30% 넘게 하락했다.

정현호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의 역할에 변화가 있을지도 주목된다. 미래전략실 부활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위기를 타개할 인사 쇄신이 쉽지 않은 만큼 삼성내에서는 미전실 부활 등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하는 방안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사업지원 TF는 미전실 해체 후 삼성전자에서 '미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회사가 수년째 결실을 내지 못하는 대형 인수·합병(M&A)을 비롯한 굵직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현재 삼성은 공식적으로 ‘그룹’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옛 ‘미래전략실’은 2017년 2월 해체됐다.

하지만 현재 사업지원TF는 공식 조직이 아니다. 정 부회장도 등기이사가 아님은 물론이다. TF의 권한은 과거 구조본 미전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일각에서는 '벙커같은 안전지대에 있는 삼성지휘부'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시각 때문에 미전실 부활을 통해 공식 조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삼성 준범감시위원회도 지난 10월 '2023년 연간보고서 발간사'를 통해 컨트롤타워 재건과 등기임원 복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재용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를 통해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컨트롤타워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준감위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 7곳이 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외부기관이다.

삼성은 이미 인적 준비는 사실상 마친 상태다. 지난 5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핵심 구성원들이 삼성전자로 다시 모인 것을 계기로 미전실 부활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용관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부사장은 지난 5월 삼성메디슨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삼성전자로 복귀했다. 김 부사장은 2014년부터 2년간 미전실에서 반도체 투자 등을 담당한 ‘전략통’으로 꼽힌다.

사업지원 TF를 이끄는 정 부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비서실부터 전략기획실, 미전실을 두루 거쳤고 이 회장 경영 수업이 본격화한 시기부터 그룹 사업 전반의 의사결정을 도왔다. 미전실 해체로 사임했다가 2017년 말 삼성전자가 사업지원 TF를 출범하자 사장직으로 복귀했고 현재까지 7년째 실질적인 그룹 2인자로 통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재무라인도 미전실 출신이 잡고 있다. 내부 살림을 챙기는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은 미전실 해체 전 경영진단팀장(부사장)을 지냈다. 이후 삼성SDS 사업운영총괄로 옮겼다가 2020년 1월 사장 승진과 함께 DS부문 경영지원실장으로 복귀했다.

DS부문 경영지원실 역시 미전실 출신인 김홍경 부사장이 맡고 있다. 이들 모두 재무통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정현호 부회장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등 2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등 2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뉴스1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5일 2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삼성전자 위기론’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쇄신 의지를 내비쳤다.

이 회장은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안다”며 “누군가는 근본적 위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걱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저희가 맞이한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며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회사를 정상화할 기회를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 회장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며 “부디 제 소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날 검찰은 “이 회장의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과 무관하게 합병이 추진됐고, 각종 부정거래 행위가 수반됐다”며 이 회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은 검찰이 제기한 의혹과 관련해 “개인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주주에게 피해를 주거나 투자자를 속일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며 합병이 회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책임경영 의지를 밝혔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