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세계 자동차업계의 관심을 끈 이례적인 모임이 있었다.‘9·11 테러’가 1주일 정도 지나 열린 이모임에는 돈 에번스 상무장관 등 정부대표와 빌 포드 주니어 포드자동차 회장, 존 스위니 전미자동차산업노조(UAW)위원장 등 미국 자동차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거두들이 참석했다.이들은 위기에 처한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서로 힘을 모아 불황을 극복하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이에 미국 자동차시장은 테러 충격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일부 차종은 오히려 이전보다 판매가 상승곡선을 그리는 효과를 발휘했다.노사화합이 이뤄낸 긍정적인 결과였다. 노사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위기에 몰린 자동차 메이커를 살려낸 사례도 있다.지난 99년 부도위기에 몰렸던 닛산은 올해 사상 최고의 순익을 기록하며 성장곡선을 가파르게 그려가고 있다.이에 카를로스 곤 최고경영자는 “올해 말 목표로 세웠던 ‘닛산 리바이벌 플랜’(회생전략)도 예상보다 1년 빠르게 달성했다”고 공식 선언할 정도였다. 닛산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기 때문이다.지난 3년 동안 전체 직원의 15%인 2만2,900명을 줄인 데 이어 부품공급업체를 40% 이상 축소하고 부품 구매비용도 평균 20% 이상 낮췄다. 이결과 닛산은 2000회계연도에 3,311억엔의 흑자를 기록했고, 2001회계연도에는 이보다 12.4%나 늘어난 3,720억엔의 이익을 냈다.그리고 <파이낸셜타임스 designtimesp=22355> 선정 세계 500대 기업(주식시가총액 기준)에서는 지난해 235위에서 올해 131위로 100위 이상 훌쩍 뛰어올랐다. 자동차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이 노조와 마찰 없이 단기간에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2000년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도 잇따라 노사 마찰 없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경쟁력을 높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근로자들이 노조결성 부결시키기도GM은 미국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103년 전통의 올즈모빌 사업부까지 없애기로 하는 등 강도 높은 처방을 내놓았다.GM이 이처럼 강도 높은 자구 계획을 시행하기는 불황으로 고전하던 90년대 초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GM은 적자로 고전하던 92년부터 3년 동안 10만명의 직원을 내보내는 등 뼈를 깎는 자구 노력 덕분에 기사회생했다.GM은 98년 노사분규를 8주 동안 끌면서 22억달러의 파업손실을 냈다. 이에 31%에 달하던 시장점유율은 20%로 뚝 떨어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노사간 반목이 컸다. 2년에 걸쳐 13번의 파업을 겪으면서 노사 모두 ‘교훈’보다 상대에 대한 ‘불신’만을 키웠기 때문이란 게 미국 언론들의 지적이었다.GM사 경영진은 당시 노조원들에게 ‘생산성의 제고’를 요구하며 공장 폐쇄와 이전을 위협했지만 노조는 ‘생산성이 올라도 결국 공장은 해외로 이전될 것’이라는 의혹을 버리지 못해 마찰을 빚었던 것이다.하지만 2000년대 들어 GM이 노사문제를 야기치 않았던 것은 근로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인력정리시스템을 확립했기 때문으로 자동차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GM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수익성, 과잉설비 여부 등 업무 전반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통해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부분을 가려내고 사업부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각 업무에 적합한 인력을 재배치하고 남는 인력은 해고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아예 처음부터 노사문제의 근원을 없앤 자동차메이커들도 있다. 지난해 미국 테네시주 닛산 현지공장의 근로자들은 3분의 2가 넘는 숫자로 노조설립을 부결시켰다. 2000년에는 앨라배마주 벤츠 조립공장에서도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노조설립을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이에 한때 미국 자동차업계를 쥐고 흔들던 미국자동차노조(UAW)의 위력이 크게 약화되기도 했다 이는 닛산 혼다 도요타 등 외국계 자동차회사들이 자동차노조의 메카로 불리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노조활동이 상대적으로 약한 남부지역으로 옮겼기 때문으로 자동차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현대자동차가 최근 앨라배마주에 현지공장을 설립키로 한 것도 이같은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올 국내 자동차메이커들의 노사쟁점은 임금 및 성과급 지급, 고용안정으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성과급 지급으로 파업사태를 맞았던 현대자동차는 임금협상을 진행 중이다.달라진 게 있다면 노조가 회사에 대해 실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최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다녀온 자동차단체 관계자는 “노조가 예전과 달리 회사의 매출에 영향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며 “이는 회사매출이 떨어지면 궁극적으로 근로자들의 성과급 내지 임금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현대자동차 노조관계자도 “현재 임금협상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파업과 같은 최악의 경우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가능한 한 회사와 대화로 협상을 마무리지을 것임을 내비쳤다.그는 이어 “대우차를 인수한 GM이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펼 경우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에 큰 지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대우자동차 노조는 GM측의 노사담당 부사장이 지역별 노조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명회를 지켜본 뒤 최종입장을 정리한다는 유보적인 입장이다.노조는 GM과 채권단이 부평공장 조기 인수조건으로 합의한 내용 중 ‘평화적 노사관계’ 즉, ‘GM의 전세계 사업장 평균쟁의 손실시간(2001년 기준)보다 적거나 동등할 때 조기인수조건에 충족된다’는 내용과 관련해 ‘아예 쟁의행위를 못하도록 강압적으로 문서를 통해 제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해 왔다.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사실상 GM이 부평공장을 인수할 뜻이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라며 “향후 노사양측이 ‘평화적인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