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품질 전도사’ 변신후, 미국시장서 ‘약진’/싼타페·EF쏘나타·카니발 등이 선풍 주도

지난해 12월 국내 자동차 판매시장에 이변이 벌어졌다. 르노삼성자동차의 SM5가 6,057대 팔려 현대자동차의 대표적 차종 EF쏘나타(5,673대)를 능가했던 것이다. 당시 현대가 노사분규로 생산차질을 빚어 생겨난 일이었다.올 들어 현대는 지난 1월 노사문제 타결로 EF쏘나타를 다시 판매 부문 1위에 올려놓았지만 SM5의 시장점유율이 무섭게 늘어나는 추세여서 내부적으로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르노삼성은 지난해 내수시장에서 SM5를 6만3,178대 팔아 파란을 일으킨 데 이어 올 들어 4월까지 3만3,452대 판매하는 등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SM5의 판매가 10만대를 넘는 것은 물론 이익도 낼 것으로 자동차전문가들은 보고 있다.SM5의 성장비결은 품질에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최근 발표한 ‘2001년 자동차 피해구제 업무분석’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피해구제 요청건수는 모두 1,291건으로, 이 중 88.9%인 1,147건이 품질 및 기능에 대한 불만인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이 중 SM5에 대한 불만은 1.2%인 15건에 불과했다. 이를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내수판매량을 감안해 비교해 봐도 SM5의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 기아, 대우, 쌍용 등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내수판매 대비 피해구제율은 0.1~0.2%인 반면, 르노삼성은 0.02%로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DAUM&F-inside’가 지난해 신차구매자 1만4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상품성(TGR:엔진 등 11개 영역의 만족도를 물은 후 종합 10점을 만점으로 만족도를 평가)에서도 르노삼성은 8.27로 국내자동차업체들의 평균점수 7.22점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르노삼성은 상품성에서 수입차(8.41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결론적으로 SM5는 경쟁차종들보다 품질이 뛰어나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셈이다. ‘품질향상이 매출증대의 지름길’이라는 품질전문가들의 논리를 입증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현대자동차의 싼타페·EF쏘나타, 기아자동차의 카니발이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린 것도품질향상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차량은 최근 미국 자동차컨설팅 회사인 오토퍼시픽이 지난해 9~11월에 3만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비자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의 주인공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다.정회장은 2000년부터 직원들에게 자동차 품질향상을 독려하는 등 ‘품질 전도사’로 변신했다.정회장은 자동차 품질지수인 IQS(100대당 결함수)를 2000년 189에서 2005년 세계 자동차업체 평균인 150으로 낮추고, 2010년에는 6대 생존회사에 속하기 위해 세계 최고인 도요타 렉서스의 83 수준에 도달할 것을 품질 관련 임직원들에게 강력하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에 따라 현대와 기아는 품질개선에 집중, 지난해 미국에서 57만대의 차량을 판매해 닛산에 이어 7위로 올라섰고, 올해는 62만대의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품질향상이 단순히 매출증대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비용절감에 따른 수익극대화 효과도 크다. 현대는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품질보증기간을 ‘10년 10만㎞’로 늘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이로 인해 미국 내 자동차판매가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품질보증을 위한 판매보증 충당비용으로 매출액(22조5,000억원) 대비 3.1%인 7,064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2000년 4,458억원보다 58%가 증가한 금액이다.기아도 지난해 품질보증비용으로 전년 2,903억원보다 무려 79%가 증가한 5,210억원(매출액 대비 4.1%)을 배정했다. 물론 이 돈은 앞으로 발생할 보증수리나 사고보상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책정한 것일 뿐 모두 지출된 비용은 아니다.하지만 자동차전문가들은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보증수리 및 사고보상 비용으로 평균매출액 대비 3~4%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대 및 기아가 마련한 품질보증충당금 전액이 그해 사용된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따라서 이들의 주장대로 현대 및 기아가 품질을 높여 판매보증충당금을 미국 빅3 수준인 매출액 대비 2%로 줄이면 지난해 기준으로 약 5,000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최근 현대가 2,500억원을 들여 새로 선보인 소형차 클릭과 같은 차종을 두 종류 개발할 수 있는 금액이다.자동차전문가들은 품질향상을 위해 일정액의 예방 및 평가비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진상 Bic인터내셔널 대표는 “품질불량 발생에 따른 사후비용은 이를 줄이기 위한 사전비용의 6배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품질불량 제로를 목표로 삼고 예방 및 평가비용을 늘리는 게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자동차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엔진, 트랜스미션, 조향장치 등 자동차 핵심부품의 기술향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품질보증이 이들 핵심부품에 집중돼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가여서 고장을 일으킬 경우 하자보수 및 보상비용이 크기 때문이다.실제 ‘DAUM&F-inside’ 조사자료에 따르면 국산 자동차 고장경험률이 엔진, 브레이크, 조향장치, 트랜스미션 등 핵심부품에서 수입차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또 소비자보호원이 발표한 소비자들의 자동차 피해 구제 사례에서도 소음진동, 시동꺼짐 등 주요핵심부품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표참조). 결국 품질향상의 첫걸음은 기술개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