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환율 악영향 미칠까 일정 연기...여차하면 국내매각으로 'U턴' 할수도

조흥은행의 주식예탁증서(DR) 발행계획이 난항을 거듭하다 지난 6월3일 발행을 연기하기로 결론이 났다. 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고 차질 없이 민영화 일정을 추진하려던 정부의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왜 연기했나 = 재경부는 DR발행을 연기한 가장 큰 이유로 국내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원화가치가 급상승함에 따라 환율조절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다.DR가 발행돼 그 물량이 원화로 유입되면 원화가치 상승을 부채질하게 되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발행물량을 줄일 수도 있지만 현 국제금융 상황에서는 헐값매각이 불가피한 데다 지분매각으로 달러가 들어온다면 원화가치가 더욱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연기배경을 설명했다.재경부와 예금보험공사는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냉기류가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DR발행 시기를 더 늦추거나 아예 다른 방법으로 정부지분을 파는 방법도 검토할 예정이다.하지만 원화수급조절보다 더 복잡한 고민들이 이면에 있다. 국유은행 조기 민영화, 원활한 물량소화, 제값 받기 등 여러 가지 정책목표 사이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오직 환율만이 문제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게 시장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유입 대금을 시장에 풀지 않는 것이다. 달러로 들어오는 DR 대금을 그대로 한국은행과 스와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예전에 국내 은행들의 DR발행 때에도 이 같은 방법이 활용된 적이 있다.따라서 환율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제값을 받고 정부보유지분을 팔면서 은행민영화의 산뜻한 출발을 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에 냉기류가 흐르는 데다 해외 투자가들로부터 조흥은행 주식이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 것.앞서 조흥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더 우량한 한미은행도 DR가 할인 발행돼 자존심을 구겼고, 더욱이 최근에는 가격이 더 떨어졌다. 외국 투자가들의 펀드에서 이미 은행주들은 오버웨이트 (Overweight·포트폴리오 내 편입비중이 지나치게 높음)된 상태.시장관계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외국인이 과연 보유 중인 국내 우량주를 처분해 조흥은행을 살까 하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는 그동안 전세계가 한국의 은행구조조정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말해왔다.그런데 정작 이처럼 ‘성공적인 구조조정’ 후 정부보유지분을 매각하겠다고 하니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 돌아오면 이만저만 난처한 것이 아니다.●조흥은행 입장 = 주주인 정부가 보유한 지분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조흥은행으로서는 이러쿵저러쿵할 입장이 못된다. 이 은행의 한 관계자는 “더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한 정부의 판단으로 본다”면서 “정부로서는 민영화 일정에 대한 부담과 DR발행가격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다만 ‘조흥은행’이라는 상품의 매력이 불충분해 자신 있게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선 발끈하고 있다. 시장상황이 좋지 않을 뿐이라는 것.“굳이 매각환경이 좋지 않은 해외에서 DR발행을 고집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조흥은행 고위관계자는 말했다. 다른 실무관계자는 “DR발행이 어느 정도 늦춰질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하반기로 연기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한편 국민은행 지분투자의 이익을 실현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던 골드만삭스는 보유물량 중 국민은행 원주의 절반을 뉴욕증시에서 직접공모 형태로 매각하기로 했다.시장에서는 골드만삭스의 국민은행 지분 매각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조흥은행 DR발행 연기결정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조흥은행 DR발행이 연기되면서 오히려 한국물이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향후 행보= 일단 DR발행은 3분기나 연말로 넘어가게 됐지만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시장상황을 봐가며 정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때 국제금융가는 비수기에 접어든다는 것.국내 사정과는 대선과 맞물려 선거를 앞둔 정부의 운신폭은 더욱 좁아지게 된다. 이 같은 복잡한 속내를 반영하듯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6월4일 “국내 사정이 호전되면 국내에서도 매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재경부 변양호 국장은 “DR발행을 하반기 중에 추진하되, 내년으로 미뤄야 할 만큼 시장상황이 안 좋다면 해외 DR발행이라는 민영화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조흥은행의 한 실무 관계자는 “하반기 중에 계획된 지분 10~15%에 대한 전략적 제휴나, 블록세일(시장에서 팔지 않고 제3자에게 일괄매각하는 것) 방침은 유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정부는 증권사나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이 금융업 겸업화 추세에 따라 은행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데 적극적일 것이라는 예상에 제휴를 통한 지분 처분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또한 정부는 오는 2004년부터 조흥은행 전체 주식의 20%를 수년간에 걸쳐 자사주로 매입, 소각하는 방법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