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자동차 구입 고객들은 자금을 마련하는 데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하지만 할부금융사들의 텃밭이었던 자동차금융에 경쟁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카드사들이 시장에 파고들고 있으며, 한 차례 쓴맛을 보고 물러나긴 했지만 은행들도 호시탐탐 자동차금융시장을 노리고 있다.할부금융사 안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우자동차가 위기를 맞았을 때 대우차는 판매를 늘리기 위해 계열사인 대우캐피탈뿐만 아니라 모든 경쟁 금융사에 ‘문호를 개방’했다. 대우차를 많이 팔아만 준다면 고객이 은행에서 자동차론 대출을 받든 타 할부금융사를 이용하든 신용카드로 구매하든 관계치 않게 된 것이다.그사이 고객들도 똑똑해졌다. 그저 딜러가 시키는 대로 자동차메이커 계열사의 할부금융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이보다 금리가 싸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소득공제로 인한 할인효과를 노리고 신용카드로 차를 사기도 한다. 각종 비교 사이트가 등장해 소비자들이 정보를 많이 갖게 돼 이런 경향은 가속화되고 있다.자동차메이커와 자동차금융 관계사들은 입장에 따라 ‘변한 게 없고,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다’와 ‘앞으로 구입방식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라고 각각 다른 주장을 편다. 양쪽의 주장은 모두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먼저 르노삼성의 판매기록은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매월 마감을 하고 판매방식구성비를 뽑아 보는데 75~80%까지 되던 캐피털 이용 비중이 최근 3개월간 30% 아래로 떨어졌다. 할부금융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은 신용카드다. 70%가 신용카드로 르노삼성자동차를 사고 있으며, 5%는 은행 오토론을 이용해 차를 샀다.반면 시장리더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의 판매 기록을 보면, 전체 판매된 자동차 중에서 결제방법의 비율에 뚜렷한 변화가 없다. 현금을 내고 차를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 금융상품을 통해 차를 사는 고객 중 절대 다수가 현대캐피탈의 할부금융을 이용하고 있다.하지만 경쟁사들은 이처럼 현대차 구매고객들이 꿈쩍도 않는 것은 시장 지배자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이 무리하게 금리를 낮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재 할부금융사 중 현대캐피탈의 금리가 24개월 7.75%, 36개월 8.25%로 가장 낮다. 캐피털보다 조달금리가 낮은 은행의 오토론조차 금리가 더 낮지 않다.경쟁 캐피털사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역마진이 날 정도로 무리한 금리인하를 추진하는 것이 바로 자동차금융 시장에서 경쟁이 격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사들은 메이커인 현대자동차가 이 같은 금리인하로 생기는 현대캐피탈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부당거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한 자동차마케팅 전문가는 “자동차메이커들이 자신들의 판매데이터만으로는 고객이 어떤 금융상품을 동원했는지 추적할 수 없음을 모르고 있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금을 내고 산 고객으로 분류돼 있다고 해도 이 사람이 은행에서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아 자동차회사에는 현금을 낸 뒤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고 있다면 금융상품을 통해 차를 산 것이라는 설명이다. 캐피털 입장에서 보면 모르는 사이 고객을 은행에 빼앗긴 것이다.현대캐피탈 경쟁 할부금융사들이 대우차와 쌍용차 구매고객을 대상으로 시장을 뚫고 있는 사이 은근히 시장잠식에 나선 것은 카드사들이다. 가장 공격적인 것은 국민카드. 최근 카드사들이 너도 나도 실시하고 있는 자동차 구입시 4~6개월 무이자 할부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신용카드로 자동차를 사게 되면 연말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어 실질적인 가격인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는 ‘행사’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시작했고, 원래는 6월에 행사가 끝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카드사들은 행사기간을 연장, 회원들이 계속해서 차를 무이자 할부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또한 국민카드는 신용카드회사의 최대 자원인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무기로 자동차론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민카드는 국민카드 소지자에게는 금리 8.9%에 차량가의 전액을 할부로 할 수 있게 해준다. 한 딜러는 “요즘 국민카드의 오토론으로 차 구입비를 내겠다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한편 은행들은 2년 전 의욕적으로 오토론 시장에 진출했다가 대부분 패배를 경험하고 물러났다. 당시 은행의 오토론 금리는 할부금융사들보다 2% 이상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로 인기가 없었다. 게다가 국민은행 자동차론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고, 부실 발생시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계약한 삼성화재와 책임 소재를 두고 법정싸움을 벌이는 등 문제가 벌어지면서 대부분 은행의 오토론은 ‘개점휴업’ 상태거나 아예 판매를 중단했다. 농협, 조흥, 하나은행만이 오토론을 계속 판매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상태. 마케팅력 부족과 차 구입자 데이터베이스 부족이 은행들이 자동차대출 시장에서 실패한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르노삼성 고객금융팀 심승민 대리는 “대출을 받을 때와 차를 살 때 고객의 자세는 완전히 다르다. 대출을 받을 때는 자기가 아쉬워서 가지만 차를 살 때는 왕이라고 생각한다”고 구매자들의 심리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 은행 오토론을 이용하려면 꼭 한 번 은행에 나가야 한다. 이런 불편함에 금리가 낮다 해도 은행 오토론을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다.다른 은행들이 오토론에서 ‘일단 철수’한 가운데 하나은행만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속 자동차론 시장을 개척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앞다퉈 자동차론에 뛰어들었던 것은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론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는데 최근 3년간 주택담보대출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 은행 가계금융팀 추홍연 대리는 “결국 남은 것은 자동차금융밖에 없고 결국 다시 은행들이 자동차금융에서 승부를 보려고 할 때가 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고 설명했다.할부금융이나 오토론 등 자동차금융을 중개해주는 전문 브로커도 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15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같은 금융법인인 ‘오토스’의 강도순 사장은 설립 초기 단계임에도 그는 올해 안에 현대캐피탈 자동차할부 연매출의 10%를 잠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이제는 메이커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 입장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때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