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경쟁상대는 누구입니까?” 90년대 중반 ‘세계화’가 정부의 대표적인 구호가 되었을 당시 공익광고의 말미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계화로 인해 한국 회사원의 경쟁상대는 독일의 회사원, 한국 경찰의 경쟁상대는 영국의 경찰 등 각 직종에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자기의 경쟁상대라는 것을 말한 뒤에 시청자에게 묻는 질문이었다.그당시만 해도 이러한 공익광고의 내용이 현실감 있게 피부에 다가 오기보다 새로운 추세인 세계화를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하지만 2002년 현재, 공익광고의 내용은 단순한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정보통신혁명과 세계화의 실질적인 진전으로 경쟁의 범위와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경쟁상대가 전세계로 대폭 확대되고, 동일 업종 간의 경쟁을 넘어서 서로 다른 업종 간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예를 들어 금융업의 경우 겸업화로 은행, 증권, 보험 상품 간 경쟁이 가속화되어 경쟁구도가 은행 간 경쟁뿐만 아니라 은행과 비은행 간 경쟁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나아가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고객확보와 수익사업을 둘러싸고 이동통신사업자, PDA사업자와 금융기관 간 경쟁이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경쟁의 범위와 내용이 달라지는 대표적인 예는 히딩크 감독과 일본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사장이다.히딩크 감독과 곤 사장의 공통점 중 대표적인 것은 성공한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적 성공요소로는 연고주의와 정실인사의 폐해 극복, 합리적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십 등을 들 수 있고, 이러한 요소들은 외국인이었기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었다고 분석된다. 즉 외국인이라는 것이 제약요인이라기보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곤 사장의 예에서 보듯이 일본의 CEO들은 이제 일본인 CEO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곤 사장 같은 글로벌 CEO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예는 더욱더 한국사회에 충격적이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한국인들에게 유능한 외국인이 한국인의 생활을 얼마나 행복할 수 있게 하는지를 땀과 눈물로 감동을 주면서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주는 행복이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한국민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세계화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축구감독의 경쟁상대는 더 이상 유명 국내 축구감독이 아니라, 히딩크 같은 글로벌 축구감독인 것이다. 세계화 관련 공익광고의 내용이 우리 안방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특히 히딩크 감독이 한국의 CEO들에게 주는 숙제는 크다. 첫째, 히딩크 감독은 CEO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CEO가 잘하면 동일한 후보군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성과를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IMF 위기 이후 CEO 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해 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히딩크 감독은 CEO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게 갖도록 하고 있고, 그러한 기대를 한국의 CEO들이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다.둘째,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CEO들이 외국의 CEO들과 경쟁을 하여 생존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한국인 CEO여서 연고주의와 정실인사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합리적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한국인 CEO들은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해외로부터의 CEO 수입논의는 활발해질 것이다. 이는 한국 CEO들의 벤치마킹이 더 이상 국내가 아니라 세계의 CEO가 되어야 하는 등 CEO시장의 범위와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히딩크 감독은 온 국민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는 동시에 경쟁의 범위와 내용이 더욱더 격화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양면성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