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음성군에 있는 동부전자 반도체공장.동부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순항할 것인가. 동부전자는 최근 금융기관의 2,600억원 신디케이트론 집행결정으로 급한 불은 일단 껐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자금수혈로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자체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는 불가능해 불안감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동부전자의 반도체사업이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룹이 사활을 걸고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부건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등 그룹의 주력사가 동부전자에 지분을 출자하거나 대출보증을 섰다. 만약 반도체사업이 실패하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동부의 반도체사업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그동안 우왕좌왕한 것이 사실이다. 동부가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것은 97년 3월. 그룹의 오너인 김준기 회장이 동부제강과 동부한농화학 이외에 그룹 간판이 될 만한 세계적 규모의 제조회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뛰어들었다. 그러나 출발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처음에는 메모리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곧 IMF를 맞았다. 국내 경기가 악화되고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98년 5월 공사를 중단했다. 이로 인해 당시 IBM에 지급한 기술도입료 91억9,90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절치부심하던 동부는 이후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업체)사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2000년 7월 일본 도시바와 기술이전계약을 체결, 충북 음성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마련했다. 2001년 4월 상업생산에 돌입하는 등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이 또한 반도체 경기 악화와 자금조달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지난해 동부전자의 생산실적이 겨우 70만달러(약 84억원)에 불과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반면 지난 7년간 당기순손실은 약 780억원에 달했다. 웨이퍼 생산능력도 월 5,000장 규모로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경쟁업체들을 당해낼 만한 경쟁력이 없다.이렇게 되자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동부전자의 반도체사업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비관론이 꼬리를 물었고, 자금줄 또한 여의치 못하게 되면서 동부전자의 목을 죄고 있다.추가투자금액 순조롭게 조달돨지는 ‘미지수’사실 자금문제는 동부의 반도체사업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반도체사업은 전형적인 장치산업으로 거액의 투자비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동부측도 애초에 생산설비 신증설에 필요한 투자비만 2조5,000여 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을 정도다(2002년 분기보고서). 이미 지난해 12월까지 투자한 금액만 1조4,914억원으로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1조600억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과연 동부전자가 이 정도의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사정은 여의치 못하다. 곧 성사될 것 같은 외자유치는 번번이 미뤄졌다. 또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조달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동부는 지난해 11월 산업, 국민, 외환은행 등 11개 금융기관과 5,1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체결했다. 2,500억원은 지난해 12월 들어왔다.그러나 2차와 3차에 걸친 2,600억원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6월 말 가까스로 해결됐다. 사실 2, 3차는 계약서에 ‘외자를 4억5,000만달러 유치했을 때 인출할 수 있다’는 선행조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채권단은 기존의 계약옵션을 없앤 대신 연말까지 500억원을 증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채권금융기관 간에 마찰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외자유치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며 “잡음이 있었지만 외자유치를 좀더 순조롭게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동부가 일단 2,600억원을 조달해 급한 불은 껐지만 앞으로도 적잖은 자금이 들어갈 전망이다. 신디케이트론 2차 대금 2,600억원 중 1,800억원이 1차 설비투자에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월 5,000장 규모의 웨이퍼 생산능력을 4분기부터 월 1만장 규모로 늘려 가동할 수 있게 된다. 동부전자가 손익분기점으로 잡고 있는 월 웨이퍼 생산량은 2만장. 이후 2차 설비투자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5,000억원 규모다.이는 2차 대금잔여분 800억원과 금융기관 융자 등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그러나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의 교체주기가 보통 3~5년이다. 여기에다 3~4년이 지나면 5,100억원의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외자유치는 필수적이다.파운드리사업에서 자금력과 함께 중요한 대목은 기술력과 영업력이다. 기술력 부문은 도시바의 기술력을 이전받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그러나 세계 파운드리 산업은 대만의 TSMC, UMS와 싱가포르의 세미컨덕트 매뉴팩처링 등 3개사가 81%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를 뚫는 것이 관건이다. 이들 3사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고, 대형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즉 세계 1위 업체인 TSMC의 2000년 설비투자액은 45억달러, 경쟁사인 UMS는 30억달러 가량이다. 게다가 이들은 탄탄한 고정거래처인 IBM, 미쓰비시, 모토롤러 등 약 200개에 달하는 고정 거래선을 확보하고 있다. 참고로 동부전자의 거래처는 현재 20여 곳에 불과하다.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들은 “고객확보는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 충분한 자금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선발업체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이에 대해 동부 관계자는 “정면충돌은 불가능하다”며 “선발업체와 이미 제휴 중인 외국 대형 고객을 대상으로 세컨드 소스(2nd Source)전략을 구사하면 후발업체라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정보의 기록, 저장기능을 갖고 있는 메모리가 소품종 대량생산의 특성을 갖고 있다면 정보의 제어, 연산기능을 갖고 있는 비메모리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다양한 고객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선발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로 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동부전자의 반도체사업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 추진 중인 외자유치의 성패 여부가 동부전자의 앞날을 가름할 것으로 반도체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돋보기 그룹사에 미치는 파장계열사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지난 5월 한국신용정보는 동부건설과 동부한농화학 회사채 신용등급을 각각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낮췄다. 한신정은 “동부전자에 대한 지분출자와 지급보증 등으로 그룹의 전반적인 재무적 위험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현재 계열사들의 동부전자 지분율은 42%. 동부건설이 833여 억원을 투자해 16%의 지분을 갖고 있고, 이어 동부한농화학과 동부제강이 각각 388여 억원을 투자해 8%의 지분을 획득했다. 지분투자에 이어 이들 계열사는 산업은행 등 11개 은행으로부터 신디게이트론 대출을 받으면서 보유하고 있는 동부전자와 동부한농화학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또 동부건설의 경우 동부전자의 반도체 공장 건설과 관련해 공사대금 1,500억원을 아직까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사 채권분석팀 관계자는 “지금 와서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도 추가 지원의 여지가 남아 있고, 따라서 동부전자의 정상화가 늦춰질수록 계열사 부담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동부 관계자는 “신용평가사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통해서만 동부전자를 평가하려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1차 대금 상환조건이 4년 만기 일시 상환이며 2차대금도 2년 만기 4년 분할 상환이므로 당장 영향을 받을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동부는 반도체사업 시작 초기에 지분투자방식의 자본조달을 강조하며 그룹 계열사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 아울러 상장업체인 동부건설과 동부한농화학, 동부제강 등이 회수가 불확실한 기업에 투자를 함으로써 주주들의 이익을 저버렸다는 지적도 제기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