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놓고 은행까지 참여...과당경쟁으로 인한 소비 부채질 역풍 우려돼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고금리 소액대출… 은행의 영업화두가 3개월 주기로 유행처럼 변하고 있다. 수익성 경영이 은행들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이후 생긴 현상이다.수익성 있는 새로운 영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급박한 과제에 따라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 한 은행 임원은 이를 두고 “공 하나 따라서 우루루 몰려다니는 동네 축구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최근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는 고금리 소액대출 시장이다. 이 시장은 요즘 들어 갑자기 ‘금융권 최후의 황금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금융을 비롯해 일본계 대금업체, 상호저축은행, 캐피털사와 신용카드사 등이 뒤엉켜 백병전을 치르고 있다.다른 업종과 경쟁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은행들까지 한 판 승부를 벌여보겠다고 나선 바람에 더욱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이미 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전문회사 ‘씨티파이낸셜’을 설립, 발빠르게 영업을 시작했다. 씨티파이낸셜은 지주사인 씨티코프가 출자한 형태를 취했다.자본금 200억원으로 지난 7월4일 명동에 1호점을 냈고, 다음달까지 서울 강남, 상계동과 인천 부평, 대구, 대전, 광주 등에 지점을 더 낼 계획이다.김홍식 대표는 “월 100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는 이들을 대출고객을 한다”면서 “올해는 국내 소비자금융시장을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내년부터는 이같은 탐색을 토대로 삼고, 일본과 미국에서 쌓은 소비자 금융분야의 노하우를 접목해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씨티파이낸셜은 이미 일본에서 대표적인 소비자 금융회사로 자리잡았다.다음은 신한지주회사다. BNP파리바 은행과 합작해 ‘신한 세텔렘’(가명) 설립준비를 마쳤다. 애초 7월부터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당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또 한미은행이 시장을 검토하고 있고, 무엇보다 초대형 국민은행이 이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사전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사와 조흥은행도 곧 뒤따를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자회사인 기은캐피탈을 할부금융사로 전환등록하는 방법으로 같은 시장에 뛰어들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금리 소액대출시장은 신용도가 낮아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고객을 상대로 100만~500만원 단위의 금액을 꿔주는 일종의 틈새시장이다.외환위기 전인 지난 97년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서로 돈을 꿔주겠다고 아우성치는 곳이 많지 않았던 상황이라 개인이 대출받을 수 있는 창구는 은행, 보험사, 저축은행(당시는 신용금고) 정도에 불과했다.금리는 최대 20%선이었는데 신용이 나빠 이런 곳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은 아예 제도권 금융기관의 문도 두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사채업자들이 독점해 온 비제도권 대출시장이 바로 고금리 소액대출시장이었다.그러다 98년말부터 연 22~26%의 금리를 내는 현금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이 시장이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자동화 기계를 이용, 서류나 각종 심사 없이 간편하게 심야에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편리성에 현금서비스가 급팽창한 것이다.A&O 프로그레스 등 일본계 대금업체들이 영업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시장의 요구는 있으나 공급자가 없는 것을 눈치채고 기존 사채금리의 절반 수준인 100%대를 제시했다. 이들은 기존 사채업자와 달리 깨끗한 매장과 합리적인 대출절차를 내세웠다.전략은 적중했고 일본계 대금업체의 성공은 국내 상호저축은행을 자극, 진흥 현대스위스 등 상호저축은행이 연리 60%를 받으며 100만~500만원을 신용대출해주는 시장에 뛰어든다.이들 수도권 5개 저축은행은 덕분에 지난해 사상 최대인 1,000억원대의 흑자를 냈다. 일본계 대금업체에 연 100%의 이자를 물던 고객을 흡수했던 것. 캐피털사들도 ‘론카드’라는 소액대출로 급격히 대출자산을 늘려갔다. 이제 은행까지 여기에 가세하면 그야말로 치열한 쟁탈전이 예상된다.은행, 왜 고금리 소액대출시장 뛰어드나최근 영업을 시작한 씨티파이낸셜 김홍식 대표는 “금리 연 20~30%대의 소액대출시장은 규모가 연 100조원대”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시장의 2%만 점유하면 2조원대의 대출실적을 올리는 것이고, 대출금리를 20%로 가정할 때 연간 4,000억원의 이자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국민은행 신사업개발팀 이용승 팀장은 “금리 20~30%의 대출시장은 아직껏 국내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이므로 발굴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무주공산이므로 ‘찜하면 임자’라는 논리.하지만 ‘은행이 고리대출까지 한다’며 시각이 곱지 않아 계획대로 곧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자 은행들은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논리를 집중적으로 펴고 있다.이제까지는 20~30%대의 금리로 대출을 해 주는 금융사가 없었기 때문에 중간급의 신용도를 가진 사람이든 최하의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이든 신용도에 관계없이 모두 가장 높은 금리를 내고 돈을 빌려가야 했다.하지만 은행이 소비자금융 전문회사 형태로 이 시장에 참여해서 시장을 다양하게 분리하면 신용리스크 이상의 과한 금리를 부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에 따라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금리가 낮아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또한 외국의 사례를 참고할 때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 저축보다 소비에 관심이 많아지므로 소비자금융업이 발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은행들은 주장하고 있다.저축은행, ‘볼멘소리’은행이 고금리 소액 대출에 나서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저축은행들이다. 저축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60%대 소액신용대출을 통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저축은행에서 60%대 이자를 내면서 대출받는 고객 대부분이 20~30%대 대출이 가능한 신용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대신경제연구소 조용화 연구원은 “자본 여력이나 리스크 관리 노하우 측면에서 저축은행에 이렇다할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리스크 관리는 은행만 못할 것이고, 부실이 발생했을 경우 추심이나 사후관리 면에서는 일본계 대금업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한 예로 대금업체인 A&O의 대출잔고 규모는 2,500억원인데 직원이 400여 명이다. 비슷한 규모의 상호저축은행 직원이 50여 명밖에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이처럼 조직규모를 늘릴 여유가 없는 저축은행으로서는 대출심사나 추심에서 경쟁이 어려운 것이다.3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을 판매하는 진흥저축은행의 경우에는 은행들의 참여가 가시화되자 이를 더 늘리지 않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경쟁에 동참할 경우 연체율이 높아지고 부실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출혈경쟁에 나서느니 차라리 다른 시장을 찾는 게 낫다는 것이다.하지만 푸른저축은행의 이문성 과장은 “참여 회사가 많을수록 오히려 시장이 커지고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금리만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면 대출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성격의 시장이다”고 자신했다. 은행의 시장참여보다 금리 가이드라인이 더 문제라는 주장이다.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는 타깃 고객과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 등 시장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저축은행은 사금융 흡수역할을 해야 한다면서도 인위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무조건 금리를 낮추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감독당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일본계 대금업체 ‘느긋’일본계 대금업체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A&O의 박진욱 대표는 “은행계 대출회사와의 금리차가 크기 때문에 고객이 이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일부 대금업계 관계자들은 되레 ‘은행계 소비자금융사가 영업을 잘할 수 있겠는가’라며 의문을 표시하기까지 한다. 또한 20~30%대의 금리로는 고객을 쉽사리 확장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이 금리에 맞추려면 고객을 까다롭게 골라야 하는데 그럴 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리가 90%나 되는 A&O의 경우에도 창구에 찾아온 10명 중 5명은 대출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고 있다. ‘은행 마인드’로 밀착형 영업인 소비자 금융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 섞인 우려도 나온다.오히려 다케후지 등 일본 최대 대금업회사들의 진출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A&O 박대표는 “이미 1년 전부터 계속해서 이들이 한국시장에 들어온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면서 “1년 이상 끌고 있는 대금업법이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므로 결론이 나는 것을 보고 나서 이들의 구체적인 진출 계획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금리인하 순기능? 지나친 소비 역기능?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 등 정책 당국은 고금리 소액대출시장의 확장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은행, 저축은행, 대금업체 등 고금리 소액대출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는 업체들은 감독 당국의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다.특히 은행들은 여신전문업법상의 할부금융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을 통해 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인데 금융감독위원회와 재경부가 은행의 대금업 진출 허용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금감위는 이와 관련해 지난 7월5일과 19일 금감위원들간의 간담회를 가졌으나 격론이 벌어지는 등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금감위원들은 물론 금융감독원 내에서도 은행측 주장대로 “고객선택권이 넓어지는 것 아닌가.결과적으로 금리가 하향조정될 수도 있다”와 “은행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정성순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개인적으로는 고객의 선택 범위가 넓어진다는 데 동의한다”면서 “의견조율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결정이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금감위는 은행의 할부금융 자회사에 대한 자금지원을 금지해 자회사가 부실화된다 해도 은행의 자산건전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차단장치를 마련하거나, 자산건전성 분류법을 강화하거나, 대손충당금 비율을 상향조정하는 등의 방법들을 검토하고 있다.그러나 이미 신용카드의 지나친 확장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부작용을 경험한 것처럼 지나친 소비를 부채질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전에는 대출을 받지 않던 사람도 대출을 일으키게 될 수 있는 것이다.재경부는 은행의 대금업 취급은 서민들의 제도권 금융 흡수 등 순기능보다 가계여신 치중에 따른 기업금융 위축 등 역기능이 더 크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재경부는 은행이 할부금융자회사를 세워 대금업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할부금융사의 경우 대출 등 부대 업무의 비중을 50% 이하로 제한하는 규제를 여신전문금융기관법에 집어넣어 하반기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과거 은행이 신용금고 자회사를 만들어 부실을 초래한 전례가 있는데다 기업의 간접금융은 외면한 채 가계금융에만 매달림으로써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처럼 재경부와 금감위에 입장차이가 있는데다 내부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최종 결론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사채를 제외하곤 가장 높은 수준의 금리로 대출을 하고 있는 A&O의 박진욱 대표는 “영업한 지 3년을 넘겨 데이터도 쌓이고 수익도 난 만큼 금리인하 여력이 생겼다”면서 “금리인하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은행 등의 시장참여로 인한 경쟁보다 감독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금리인하에 더 큰 변수다”라고 지적했다. A&O는 대금업법이 통과되는 것을 봐가면서 금리수준을 결정할 계획이다. 그는 “대금업법이 확정되면 금리를 과감하게 낮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돋보기 금리대별 소액대출시장은행금리 20~30%선 될듯흔히 대금업이라고 통칭하지만, 고금리 소액대출시장은 금리에 따라 차이가 있다. 금리 8.0~22.0%대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할부금융사의 ‘소액급전대출’이 제공하고 있다.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신용상태가 좋은 일반인들로, 잠깐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게 된다.상호저축은행은 금리 60%대의 500만원 이하 대출을 판매한다. 신용상태가 양호한 일반인들을 포함해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이미 한도대로 대출을 받았거나 신용카드를 연체한 사람들, 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이 금리대의 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금리가 가장 높은 90%대의 대출은 대금업이라고 불리는 일본계 대금업회사들이다. 급전이 필요한데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확보가 곤란한 사람들이 여기에서 급한 돈을 꿔 쓴다.이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은행들이 예상하고 있는 금리대는 20~30%선이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금리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정해질 지에 따라 구체적인 금리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20~30% 금리의 대출시장에 대해 은행들은 다분히 부정적인 인상을 풍기는 대금업 대신 ‘소비자금융’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꼭 대기업에 다니지는 않더라도 매달 일정 소득이 있는 생활자, 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낮은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영업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