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원하는 만큼만 물건을 저울로 달아 팔거나 양을 측정해 파는 장사 기법은 일본인들의 알뜰하고 정확한 소비문화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거울의 하나다. 헌옷이나 음식물을 ‘그램(g)당 얼마’ 식으로 세분화해 파는 장사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일본사회에서 제법 눈요깃거리가 됐지만 이제는 시선을 끌지 못한다.일본인들의 입맛과 구매습관에 잘 맞는지 유사한 스타일의 장사가 여기저기에서 꼬리를 물고 나타났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본인들의 지독한 프로장사꾼 감각은 의약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좀처럼 쪼개 팔고, 달아 파는 대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의약품까지도 고객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극소량씩 나눠 판매하는 비즈니스가 등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오사카의 신사이바시에 점포를 둔 ‘다이코쿠 드러그 스토어’는 감기약, 위장약, 진통제 등을 최소 1회분씩 나누어 팔면서 일본 의약품 유통업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이곳에서 한 번 복용할 분량 등 쪼개 팔고 있는 약의 종류는 무려 27가지에 달하고 있다. 물론 포장된 약을 그대로 파는 것이 아니고 약사가 고객과 상담을 거친 후 점포 내에서 조제한 약을 판다.판매가격은 진통제가 1회분 3엔부터, 감기약은 1회분 6엔부터 책정돼 있으며 생약을 배합한 감기약은 1회분 24엔에 팔고 있다. 조제약국의 면허를 갖고 있는 이 스토어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다른 약국들에 비해 월등히 낮은 판매가격에 있다.조제원료의 약을 모두 제약회사와 직거래를 통해 구입, 조달원가를 낮춘데다 필요한 양만큼 호주머니 사정에 맞춰 사갈 수 있도록 하니 고객들은 하나같이 대만족이다. 갑자기 열이 나거나 통증이 생겼을 때 어쩔 수 없이 상자에 든 패키지 약을 구입한 후 다 복용하지 못하고 버린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고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약값이 비싼 일본에서는 한 갑에 최소 몇 백엔 이상을 주어야 하는 해열, 진통제가 수두룩하다. 따라서 고객들은 단돈 몇 십엔만 지불하고도 필요한 약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약의 남용으로 인한 낭비까지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스토어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달아 파는 계량 비즈니스는 샴푸, 린스에서도 등장해 여성 고객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일본정부는 샴푸액을 병에 집어넣는 작업을 약사법상의 제조과정으로 규정, 생산설비를 갖춘 공장 이외의 곳에서 소포장으로 나눠 파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왔다. 그러나 2001년 법 개정으로 이 같은 비현실적 규제가 풀리자 샴푸 등을 계량해 파는 비즈니스는 단숨에 신종 유망사업의 하나로 자리를 굳혔다.이 같은 사업의 파이어니어로서는 저자극성 화장품과 샴푸를 제조, 판매하는 ‘비버니즈 퍼톡’이 단연 대표주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 회사는 미용실 등을 중심으로 샴푸, 린스를 계량해 판매하는 기계를 집중 보급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샴푸 판매기계는 마치 생맥주를 뽑아내는 ‘서버’와 같은 외양을 갖추고 있다. 샴푸가 나오는 꼭지 밑에 병을 대고 위의 레버를 누르면 내부에서 샴푸액이 나와 충전되도록 하는 방식이다.기계는 미용실 등에 렌트 방식으로 공급하되 전문스태프를 카운셀러로 파견해 고객들의 상담에 응하도록 하고 있다. 계량기계를 통해 판매하는 샴푸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일반 제품보다 값이 비싸다.샴푸는 1,000㎖에 1,000엔, 린스는 1,100엔을 받으니 다른 슈퍼마켓이나 드러그 스토어에서 팔리는 제품들에 비해 두 배는 족히 되는 가격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고객들의 만족도가 일반 제품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천연성분의 제품만을 파는데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쓸 수 있다는 만족감이 젊은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