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만인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디플레이션의 일본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일본에서 ‘인플레이션 목표’라고 말하면 물가를 잡는 것이 아니라 물가를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연 3% 정도만 물가를 끌어올려도 일본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을 폴 크루그먼은 벌써 5년도 넘게 펴왔다.미국의 ‘10년 호황’도 이를테면 자본시장의 투기적 환상에 의해 뒷받침된 측면이 크다. 해외로부터 매년 4,000억달러가 넘는 거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주식과 부동산시장이 흥청거렸던 90년대였다. 퇴근 무렵이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역(逆) 러시아워가 있었다는 정도였고….불행하게도 시장경제는 흥청망청하는 ‘무언가의 과잉’을 필시 요구하는 모양이다. 근검절약은 개인의 윤리도덕으로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도덕지상주의로 경제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소 천박하고 약간은 속물적이며 때로는 경박한’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시장에는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는 그런 인간을 ‘이기적 인간’으로 규정했고….한국인이라고 해서 물론 예외는 아니다. 압축성장 궤도를 달려왔으니 더하면 더할 뿐 못할 것은 없다. 누군가가 “주식!”을 소리 높여 외치면 모두가 주식시장으로 미친 듯 달려가야 하고 “이번에는 부동산!” 하면 또 그쪽으로 우르르 달려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그런 질풍노도의 시대를 한국인들은 살아왔다.강남이다 하면 강남으로, 목동이다 하면 목동으로, 벤처다 하면 벤처로, 원룸이다 하면 원룸으로 무리지어 내달려야 그나마 과잉성장(인플레이션) 과실을 조금이라도 나눠 가질 수 있는 한국이다.‘과잉에의 동참’, 다시 말해 ‘거품에의 참여’ 없이는 한국사람 노릇도 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동네 부인회가 아파트 가격까지 담합할 정도라니 이제는 군중심리와 투기의 시대정신을 넘어 불법행동까지 조직하는 단계에 이른 꼴이다. 역시 그중의 깃발은 서울의 강남이겠고….온갖 투기대책이 나와도 끄떡없는 강남 집값에는 한국인의 오랜 경험과 약간의 과잉, 그것보다 조금은 더 뿌리 깊은 천박성,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대중이 참여하는 ‘그것’에 동참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불안, 소외심리가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무총리후보조차 남에게 뒤질세라 강남에 집을 몇 채씩 갖고 있다니 긴말이 필요없다.어떤 이는 “교육열”이라고도 말하고, 또 다른 이는 “편리한 생활환경”이라고도 말하는 것들의 배경에는 우리시대가 갖는 온갖 종류의 양떼현상(Herding)이 불안증후군으로 자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강남의 집값을 피라미드로 본다면 원룸이 가장 아래층에 있다는 것인데 그 비싼 월세를 내고 원룸에 둥지를 트는 수요자는 대부분 룸살롱 등 화류계 여성들이라는 것이고….함께 어울려 살기에 그만한 이웃도 없고, 그래서 교육환경도 덩달아 좋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도시소음, 녹지 공간 등에서 환경이 열악할수록 집값이 오히려 비싼 것도 오직 한국에서만 설명 가능한 현상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변수라면 ‘오르니까 사고, 사니까 오른다’는 투기적 자산의 가격 법칙일 뿐이다.어떻든 온갖 시대정신의 집합인 만큼 집값이 오를 때는 강남부터 오르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것이 ‘약간의 과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때에 발생한다는 것이고, 곤란한 일은 그 ‘약간’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