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은 언제나 요동친다. 주가그래프는 가파른 능선과 계곡을 오르내리고 투자자들은 지옥과 천당을 들락거린다.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조차 비틀거리는 요즈음이다. 마치 굶주린 암사자떼에 둘러싸인 지친 들소 같은 모습이다. 증권시장의 붕괴는 언제나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 투기적 자산의 가격은 항상 실체보다 과장되게 나타난다. 주가 역시 그것의 기초자산인 기업경기의 부침보다 부풀려져 나타나게 마련이다. 기업이익이 10% 줄어들면 주가는 20% 떨어지고, 성장률이 5% 올라가면 주가는 50%를 기어오르기도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주가는 심리지표라고도 말한다. 언제나 환상과 더불어 부풀어 올랐다가 좌절 속에서 꺼져 가는 것이 주가다.자본시장의 육성이 국가 경제개혁의 슬로건으로 내걸린 지도 벌써 여러 해다. ‘충분히 발달한 자본시장’이라는 키워드는 ‘DJ 노믹스’의 핵심과제이기도 했다. ‘자본시장의 미성숙’은 그 자체로 낙후된 시장경제를 의미했고, 바로 그 때문에 과다한 차입경영이며 경영의 불투명성이 나타난다는 논리는 거의 오서독스(Orthodox)로 받아들여졌다.“미국은 차입 대 자기자본의 비율이 2대8인 데 반해 한국은 8대2다. 이 구조를 바꿔 놓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경제는 없다”는 주장은 증권시장론의 하부구조에 관한 다양한 개혁과제들과 더불어 역시 교설로 받아들여졌고….문제는 ‘여기까지만’이다. 벤처육성이며 민영화 등의 주제들이 모두 ‘충분히 발달한 자본시장’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고 보면 오서독스도 분명 일리는 있다. 문제는 여기서 한발만 더 나가면 낭떠러지라는 점이다. 미국식의 충분히 발달한 자본시장이 한국에서 가능한 것이며 과연 증권투자는 다수 중산층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것인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에 이르면 답은 궁해진다.충분히 발달한 자본시장이라는 슬로건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실패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자금 조달 실적을 보더라도 부침이 과도하게 크다. 주가가 피크를 기록했던 99년 주식자금 조달은 무려 41조원에 달했으나 2000년에는 바로 14조원으로 급감했다. 주가가 하락세였던 2001년에는 12조원대에 그쳤다. 증시가 활황일 때는 그나마 주식이 팔려나가지만 불황일 때는 거의 모든 것이 올 스톱이다. 투자자들은 활강하는 주가에 떠밀려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한국증시의 급등락은 실로 세계적이다. 올랐다 하면 세계 최고의 상승률이지만 떨어질 때도 세계 최고다. 고상한 말로 ‘변동성’이라고 부르는 주가부침이 클수록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돈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투자는 대부분을 배부르게 하기보다 소수를 배불리는 그런 ‘게임’이다. 투자자 자신도 딸 가능성보다 잃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알지만 따는 쪽에 포함됐을 경우의 보상이 워낙 크기 때문에 기꺼이 돈을 투자한다.주식선물과 옵션에서는 우리나라가 감히 미국조차 따돌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을 자랑한다. 놀라운 일이다. 선물, 옵션은 모두 기초자산인 주식보다 변동성이 크다.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부의 집중도 역시 커지고 투자자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필연적으로 양분된다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게임의 논리가 관철되는 곳이 증권시장이고, 한국의 증권시장은 더욱 그렇다. 항차 정부가 중산층과 근로자 다수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증권투자, 특히 주식투자를 권장할 일은 결코 아니다.바로 그 때문에 정부의 증권정책은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드는 데서 결코 한걸음도 더 나가서는 안된다.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증권시장을 부양하려는 정부의 생각은 위험천만이다. 미국의 연금과 한국의 연금은 그 성격부터가 매우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