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놀음' 교수들 자성시급...정부도 기초학문 발전 차원 지원 필요

추락 중인 경제학을 되살리는 묘책은 뭘까. <영화로 읽는 경제학 designtimesp=22754>을 펴낸 최병서 동덕여대 사회과학대학 학장(50), 경제학의 현실참여를 강조해 온 <광대의 경제학 designtimesp=22755>, <경제학 카페 designtimesp=22756>의 저자 유시민씨(42), 국내 금융정책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는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44),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정수용 빙그레 사장(52) 등을 통해 경제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강의에 흥미를 유발하라이들의 첫 제언은 ‘재미있는 경제학 강의가 필요하다’는 것. 학생들이 경제학보다 경영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선호하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경제학은 난해한 학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다.최병서 학장은 “이처럼 경제학을 어렵게 만든 것은 경제학자들의 지적 오만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최학장은 또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최고의 학문적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비슷해 어려운 이론을 소개하면서 정작 학생들이 이해 못하면 그것은 그들의 나태나 무지의 소산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떠나가는 학생들을 다시 잡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현실적인 수준이나 성향, 그리고 실제적인 요구에 부응해 경제이론의 강의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학장이 <영화로 읽는 경제학 designtimesp=22766>을 펴낸 이유도 이 때문이다.그는 “경제학은 수학이 많이 등장하므로 건조하고 딱딱할 수밖에 없어 대학생들이 첫 수업 강의를 듣고 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며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영화 이야기로 강의를 풀어갔더니 졸던 학생들이 사라졌다”고 경험담을 소개했다.현실과 정면 승부하라‘현실과 정면으로 승부하라.’ 경제평론가 유시민씨가 내놓은 ‘경제학 구하기’의 묘책이다. 유씨는 “강의내용이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을 강의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교수가 살아가는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추상적인 이론만 강의한다면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절대 자극할 수 없다는 것. 게다가 대다수 학생들이 학부과정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데도 그저 ‘학문적 깊이’만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내모는 행위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유씨는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우리 사회에서 보고 들은 경제현상을 강의재료로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가령 노동시장 유연화, 환율문제 등 사회적 의제를 경제학으로 풀어낸다면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그가 늘 “경제학이 한국경제 현실과 정면대결을 펼칠 때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덧붙여 유씨는 아예 강의 전담 교수를 따로 둬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교수가 연구와 강의를 함께 잘하기는 힘들다는 것. 그는 “우리 사회는 생산만큼 유통이 중요해졌다”며 “강의를 잘하는 강의 전담 교수가 유통을 전담한다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경제학 위상을 다시 세워라.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경제학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와 대학이 경제학은 공적 성격이 강한 학문이라는 점을 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연구위원은 “몇 년 전부터 국가정책의 영향을 미치는 연구소 인력이 속속 기업이나 금융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며 “이들 경제학자가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연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제학자들과 연구소가 정책여론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마치 정부의 비서 조직이나 이벤트 조직으로 전략한 느낌을 가진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았다.기업들도 경제학과 출신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다.정수용 빙그레 사장은 “급변하는 시대의 미래를 내다보고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데 경제학 소양과 안목이 중요하므로 기업들이 임원급이나 기획 파트 등에 경제학에 대한 교육투자를 확대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Interview유장희 한국경제학회 수석부회장“전문대학원제 도입해야”경제학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면서 누구보다 고심하고 있는 곳이 바로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제학회(이하 학회)다. 학회가 지난해 ‘경제학교육위원회’를 결성해 대책수립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위기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장희 한국경제학회 수석부회장(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61)을 만나 학회 차원의 대응책 등을 들어보았다.위기감이 어느 정도입니까.경제학은 여전히 중요한 학문이지만 경제학을 선택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입니다. 입학전형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학부제로 전환한 이후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 해졌습니다.상경계열에서 견디다 못해 아예 사회과학계열로 자리를 옮기는 대학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부나 기업들도 경제학과 출신들을 선호하지 않고 있습니다. 각종 고시에서도 경제학이 빠져 있습니다. 이제 경제학은 우리 사회에서 별 쓰임새가 없는 학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봅니까.우선 학생들이 경제학을 너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골치만 아프고 학점 따기도 어려운데 굳이 경제학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은 난해한 편입니다. 대학원 과정에서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따라서 경제학을 어렵게 만든 교수들의 책임이 큽니다. 이와 함께 사회적 수요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부나 기업에서 실용적인 학과 출신들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구체적인 대책이라도 있는지요.우선은 교수들이 자성해야 합니다. 학부과정에서 ‘지적 게임’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강의노트부터 쉽고 알차게 만들어서 학생들의 호기심을 유발해 재미있는 수업을 해야 합니다. 아울러 전문대학원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학부과정은 인간의 사고능력을 제고하고 기초능력을 키우는 데 역점을 둬야 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전문대학원이 책임지면 됩니다.전문대학원에 대한 반대가 심하다고 하던데요.그렇습니다. 학부 위주의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지방의 모 대학을 졸업한 뒤 일류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마치면 사회는 그를 지방대학 출신으로 낮춰보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전문대학원제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합니다.학회가 결성한‘경제학교육위원회’의 성과는 있습니까.지난해부터 학회 안에 ‘경제학교육위원회’를 만들어 활동 중입니다. 이 위원회는 이미 ‘경제학교육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공청회도 실시했고, 앞으로 꾸준한 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대책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적어도 2~3년을 두고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대책을 내놓을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