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와 한국경제신문,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로이어’는 로펌의 실수요자인 사내변호사들과 기업 법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조사다. 2010년 처음 시작해 15회째를 맞았다.
로펌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춘 로펌과 변호사들을 직접 뽑는 데 의미가 있다.
평가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의 심사도 함께 진행했다. 국내 주요 로스쿨 교수 및 대기업 법무팀 임원 등으로 구성한 평가위원회의 정성평가를 거쳐 최종 결과를 도출했다. 한국 법률시장을 움직이는 ‘2024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로이어’를 소개한다.
2024년도 쉽지 않았다. 대내외적으로 기업들은 유난히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국내에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수많은 기업이 송사에 휘말렸다.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한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등은 각종 위법 의혹을 받으며 공정거래위원회 및 검찰 수사망에 올랐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SK는 조 단위에 달하는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으로 곤욕을 치렀으며 LG는 총수 일가가 상속 관련 분쟁을 벌였다. 고려아연과 영풍,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처럼 치열한 경영권 싸움으로 내홍을 겪는 기업들도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불거진 새 규제와 법적 리스크도 기업들을 괴롭혔다.
수출은 위축되고 내수 경기도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물론 내수 기업들도 타격을 받았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미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계성 김앤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 대표변호사는 “통상 환경의 변화는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안보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세계 각국은 경제무역 안보의 관점에서 전례 없는 규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와 한국경제신문, 한국사내변호사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2024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전문성 평가도 이런 기업들의 위기감이 반영됐다. 올해 결과는 한마디로 ‘대형로펌들의 지배력 강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오랜 업력을 가진 전통의 강호들이 일제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많은 전문 인력을 앞세워 빠르고 정확하게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로펌들에 대한 기업들의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2024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전문성 평가는 ‘금융 일반(은행·증권·핀테크 등)’, ‘M&A·IPO’, ‘조세·관세’ 등 총 14개 부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주요 고객인 대기업 법무 담당자들과 한사회 소속 변호사들에게 설문을 돌려 ‘국내 로펌 중 어느 로펌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설문에는 21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적어낸 답변을 토대로 점수를 매겼으며 그 결과를 ‘평가위원회’(이황 고려대 로스쿨 원장 등 6명)에서 검토했다. 평가위원회에서는 주요 로펌들이 제출한 공적 조사서를 보고 정성평가를 가미했다. 이름이나 소속 등이 불명확한 답변지는 모두 제외하고 최종 순위를 결정했다.
13개 부문 싹쓸이한 김앤장2024년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로펌 1순위로 이름을 올린 로펌은 김앤장이었다. 김앤장은 한경비즈니스가 2010년 첫 베스트 로펌 조사를 시작한 이후 15년 연속 1위 자리를 수성했다. 부문별 평가에서도 압도적이다. 답변자들은 조세·관세를 제외한 13개 부문에서 ‘최고 실력을 갖춘 로펌’으로 김앤장을 선택했다.
김앤장은 규모나 매출에 있어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자타 공인 한국 최대 로펌이다. 현재 김앤장에는 국내외 변호사 외에도 회계사, 변리사 등 2000여 명의 전문가들이 포진했다. 매출도 국내 로펌 중 유일하게 1조원이 넘는다. 인수합병(M&A)부터 해외 기업들과의 분쟁 등 국내 대기업들의 굵직한 법률 자문이 필요할 때마다 그 뒤에는 항상 김앤장이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올해도 김앤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화제가 된 사건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정부는 금융회사들의 거액 횡령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자 올해 책무구조도 및 내부통제 등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개정했다. 김앤장은 여러 시중은행, 증권사, 보험사 및 외국계 금융회사에 대해 관련 개정안에 대한 컨설팅 및 법률 자문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및 주한 외국 은행단이 발주한 다수의 연구용역도 수행했다.
올해 국내 최대 규모의 M&A도 김앤장의 손을 거쳐 마무리됐다. 국내에서 가장 큰 환경 전문 기업인 에코비트 매각 건이다. 이 회사는 미국 사모펀드(PEF)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과 티와이홀딩스가 공동 소유하고 있었다. 김앤장은 이들을 대리해 에코비트 지분 100%를 거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각가는 2조700억원에 달한다.
이외에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및 화물사업부 매각 자문, 서울 여의도 소재 콘래드서울 호텔 매각 등 업계의 관심이 쏠렸던 대형 거래를 성공적으로 처리했다. 세종, 4년 만에 2위 탈환올해 베스트 로펌 전문성 조사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어느 로펌이 김앤장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느냐였다. 2019년까지는 법무법인 광장과 법무법인 태평양이 늘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여왔다. 항상 두 로펌 중 한 곳이 김앤장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이런 구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광장과 태평양을 따라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인재를 영입한 법무법인 세종과 법무법인 율촌이 업계에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광장과 태평양을 밀어내는 이변을 일으키며 2위 싸움은 해가 지날수록 더욱 치열해졌다.
올해는 근소한 차이로 세종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이후 4년 만에 2위 탈환이다. 세종은 올해 법조계에서 인재를 대거 영입하며 공격적 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제중재·분쟁에서 세종은 올해 국내은행의 투자 신탁계약 위반 여부를 둘러싼 1조8000억원대 청구 사건을 담당했다. 국내의 한 은행을 대리해 홍콩 국제중재센터 중재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형사·수사기관 대응 부문에서의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김범수 카카오그룹 위원장 수사 대응, 민희진 어도어 대표 업무상 배임 등 대형 사건들을 세종이 도맡았다.
M&A 부문에서도 오리온의 레고켐바이오 인수, 한국타이어의 한온시스템 인수, 컴포즈커피 인수 등 다수의 굵직한 거래를 성공시키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2년과 2023년 2위에 올랐던 율촌은 3년 연속 2위 수성을 노렸으나 올해는 아쉽게 3위를 차지했다. 다만 올해도 광장과 태평양을 앞지르며 그간 받았던 높은 평가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조세 명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조세·관세 부문에서는 김앤장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올해도 율촌은 조세 부문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다. 국내 한 대기업을 대리해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관련 사건에서 선례가 없는 판결을 끌어내 이 회사가 절세하는 데 도움을 줬다. 3주택 이상 보유 납세자를 대리해 중과세율 적용 양도소득세 과세처분 전부 취소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민사·송무 부문에선 삼성카드를 대리해 렌털계약과 관련한 700억원 규모의 규정 손실금 및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에서 전부 승소했다. 지식재산권·특허·상표 부문에서는 인공지능(AI)을 발명자로 기재한 특허출원에 대한 무효 처분에 불복해 제기된 행정소송을 맡았다. 특허청을 대리하여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후발주자 화우의 무서운 성장4위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5위는 법무법인 광장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톱3’에서는 밀렸지만 활약상만큼은 경쟁 로펌에 뒤처지지 않는다.
올해 국내 금융업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었다. 태평양은 이 자문을 맡아 국내 최초로 지방은행이 은행업 인가를 받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간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된 선례가 없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구은행과 태평양은 금융당국 및 학계 등과 깊이 있는 논의 과정을 거치며 전환을 성사시켰다.
태평양은 또 은행법상 시중은행 전환 시 필요 절차 등 관련 법령의 검토, 실제 은행업 인가 준비 및 지원은 물론 금융감독 당국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의 자문을 제공했다. 그 결과 대구은행은 은행업 인가(인가 내용의 변경)를 신청해 시중은행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법인(LGDCA) 및 모듈법인(LGDGZ)의 지분 전량을 중국 디스플레이 생산업체에 매각한 것도 태평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매각 건은 최종 거래금액이 한화 2조원을 초과하는 규모였다.
한국 기업의 중국 엑시트 딜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기존 주주들과의 이해관계, 중국 정부 대응, 중국 외환 이슈, 기업결합신고를 포함한 각국의 정부 인허가 등 각종 이슈가 복잡하게 얽힌 난도가 높은 딜이었으나 태평양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이번 매각으로 실탄을 확보한 LG디스플레이는 OLED 사업에 더욱 집중해 경쟁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광장은 국내기업이 발행한 교환사채 중 역대 최대 규모의 거래를 처리했다. LG화학이 발행한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 해외교환사채 발행 거래의 자문을 맡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눈을 돌려도 2002년 이후 최대 규모다.
광장은 발행 관련 근거 법령에 관한 자문, 계약서 및 투자설명서의 검토, 정부 인허가 검토 등 발행 전반에 걸쳐 자문을 제공했다. 특히 주가 및 시장 상황에 따른 변동성이 큰 상장사 주식 거래 특성을 고려해 신속하고 정확한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6위는 법무법인 화우에 돌아갔다. 화우는 2003년 설립됐다. 다른 대형로펌들과 비교해 출발은 늦었지만 매년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도 화우는 관심이 높았던 주요 송무 사건들에 빼놓지 않고 이름을 올렸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사건, DB하이텍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사건에서 승소했다.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 다올투자증권 의뢰로 수행한 행동주의펀드 소액주주 대응 업무도 맡아 처리했다. 현재 진행 중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도 한 축을 맡는 등 주요 기업들의 굵직한 사건에 관여하며 오랜 전통의 강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자문 분야에서도 효성그룹의 후계 경영에 따른 사업재편 일환으로 효성 분할 및 HS효성 설립에 법률 자문을,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합병 및 합병 후 통합자문을 제공하는 활약을 했다. 10년 만에 톱10 진입한 케이씨엘7위부터 9위까지의 순위는 작년하고 변함이 없었다. 법무법인 지평, 법무법인 대륙아주, 법무법인 바른이 이름을 올리며 탄탄한 실력을 보여줬다.
눈에 띄는 로펌은 10위를 차지한 법무법인 케이씨엘(KCL)이다. KCL이 한경비즈니스 베스트 로펌 조사에서 톱10에 진입한 건 2014년 이후 처음이다.
KCL은 올해 사조그룹의 인그리디언코리아(현 사조씨피케이) 인수 거래를 자문했다. 인그리디언은 미국 뉴저지에서 설립됐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글로벌 기업이다. 식품 소재 솔루션을 120여 개국에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조그룹의 푸디스트 지분 인수 거래 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또 KCL은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스킨케어 시장의 신흥 강자인 코스알엑스 인수에 법률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작년 10위였던 동인은 11위로 밀려났다. 2021년 이후 처음으로 톱10에서 빠졌다. 최근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논란이 인 것이 평가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새로운 강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법무법인 클라쓰한결은 15위에 그쳤다. 지난해 중견 로펌인 클라쓰와 한결이 합병하며 단숨에 10대 로펌(변호사 수 기준)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한 지붕 두 집 살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클라쓰 사업부와 한결 사업부가 각각 운영되며 완벽한 통합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위권까지 눈을 돌렸을 때 눈에 띄는 로펌은 12위를 기록한 법무법인 문장과 13위에 오른 법무법인 린이다. 법무법인 문장은 2019년 설립된 신생 로펌이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작지만 실력 있는 로펌으로 정평이 났다.
2017년 설립된 린은 김앤장 등 대형로펌 출신 베테랑 변호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등 최근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펌이다. 현재 변호사 수만 100명이 넘는다. 대형로펌 수준으로 몸집을 불렸다.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앞세워 여러 방면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머지않아 업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로펌으로 평가받는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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