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경제부총리의 별명은 ‘혈죽’이다. 한자로 ‘피 혈(血)’에 ‘대나무 竹(죽)’을 쓴다. 우리말로 하면 ‘핏대’다. 한글로 말하고 보니 뜻이 분명해진다. 그는 돌려 말하기보다 직설적인 표현을 선택한다.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서 더욱 ‘혈죽’이다. 그의 오랜 공무원 경력이 아마도 그의 직선적인 성품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그는 직업공무원 경력의 대부분을 공정거래 분야에서 일해 왔다. 79년 유통조정관에서부터 79년 7월에는 공정거래담당관이 됐고, 결국 97년에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올랐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는 ‘경쟁 촉진’이나 ‘공정한 거래’보다는 재벌을 통제하고 혼내주는 쪽에서 더욱 열심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어깨에 힘을 주는 부서이고, 그 때문에 다소 경직되어 있기 마련이다. 다른 부처의 공무원들조차 “그 사람 공정위에 오래있더니만…”이라며 공정위 직원들의 경직성에는 혀를 내두른다.문제는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윤철 부총리는 확실히 실물경제나 금융 같은 일종의 ‘생물’을 다루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경제나 금융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까지는 노회하고 의뭉한 성격이 어울리는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어느 나라건 금융 분야 고위직들은 다소 비밀스럽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공식석상보다 비공식 모임에서, 낮보다 밤에, 대중연설보다 사석의 대화에서 더욱 예민해지는 그런 사람들이다. 미국의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현 시티그룹 회장)이 바로 그런 유형에 속하고,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도 대표적인 예다. 언제나 양의적(Ambiguous)인 어휘를 구사하고, 때로는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혼동시킨다. 루빈은 여기에 더해 목소리마저 낮게 깐다.전윤철 부총리는 그 반대다. 금리문제에 대한 최근 그의 발언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9월 금통위가 열렸던 9월12일 아침 한 모임에서 “금리를 올리면 심리적 ‘패닉’이 올 수도 있다”며 공개적으로 금리인상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금리가 아니라 그의 말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음은 물론이다.물론 재경부가 부랴부랴 “발언 요지가 와전된 것”이라는 해명자료를 내야 했지만 “저 사람 재경장관 맞나?” 하는 수군거림이 금융가에 퍼져갔음은 물론이다.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한은총재나 금통위원들은 기겁을 했을 것이고….지난봄 경제부총리로 임명된 직후에는 느닷없이 “설비투자가 부진한 데 대해 기업가들은 반성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기업가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누구는 설비투자를 하기 싫어서 안하나?”라는 소리가 역시 청중 사이에 번져갔다. 설비투자가 무엇이며 금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인지, 아니면 워낙 답답하다 보니 해보는 말인지 물론 제3자로서는 알기 어렵다.명색이 재경부 장관이며 경제부총리가 설비투자와 금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둘 중의 하나, 즉 그것들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부총리의 직무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없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국내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반성을 촉구하는 부총리가 정작 해외에 나가서는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과잉투자가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데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9월 말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는 또 어떤 발언을 했는지 궁금하다. 한동안 금융공부에 열심이라더니 부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는 그마저 그만둔 것인지 모르겠다. 세계금융시장은 더욱 불안한데…. 혹 이 글을 읽으며 또 혈죽이 됐을까 그것도 궁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