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부 외곽의 작은 도시인 순이시엔에 자리잡은 베이징자동차공장. 공장 정문에 최근 ‘베이징시엔다이자동차’라고 쓰여진 팻말이 하나 등장했다. 베이징자동차와 현대자동차가 합작, 지난 9월18일 공식 설립된 베이징현대 공장이다.지금 베이징현대 공장은 내부 개조작업이 한창이다. 기존 생산라인을 모두 뜯어내고, 서울에서 들여올 새 라인을 까는 공정이다. 올 연말이면 이곳에서 ‘EF쏘나타’가 생산된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공략이 시작되는 것이다.현대자동차와 손잡은 베이징자동차(일명 베이치)의 꿈은 중국 제4대 자동차메이커로 부상하는 것. 베이징자동차 관계자들은 “폴크스바겐, 시트로엥, GM 등에 이어 네 번째로 국무원의 승용차 합작 승인을 얻었다”며 “이로써 제4위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진출은 그만큼 중국 자동차시장 판도를 바꿔놓을 만한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현대의 파트너 베이징자동차는 과연 중국의 4대 자동차메이커로 등장할 수 있을까.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 자동차시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현대의 중국 진출 이전 중국 자동차업계는 이미 변혁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있었다. 이치(제1자동차 그룹), 둥펑, 상치(상하이 자동차 그룹) 등 기존 3대 메이커들이 지난 1~2년 동안 치열한 세력 확장 경쟁을 벌여왔다. 이들 기업은 특히 시장장악을 위해 군소업체를 흡수하는 등 합종연횡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지난 99년 지린성 창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치자동차(대표모델 ‘제타’)에 30대의 젊은 CEO가 등장하면서 자동차시장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주엔펑. 당시 38세였던 그는 ‘시장 옆에 공장이 있어야 한다’라는 철학으로 전국 주요도시의 소규모 자동차공장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산둥성 칭다오, 광시성 류저우, 쓰촨성 청두, 하이나도 등에 공장을 세웠다. 중국 전체 자동차시장 공략을 위한 포석이다.주엔펑은 지난 6월 승부수를 던졌다. 일본 도요타와 합작관계를 갖고 있는 톈진자동차의 주식을 인수, 최대주주로 부상한 것. 이로써 톈진자동차와 일보 도요타의 합작품인 ‘시아리’ 승용차는 이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이치의 다음 목표는 랴오닝성 선양에 본부를 둔 승합차 전문 생산업체인 진베이자동차다. 이치는 현재 진베이의 제2대 주주. 최대주주인 양룽 사장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어 진베이는 결국 이치에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이치의 공격적인 시장전략에 후베이성 우한에 본부를 두고 있는 둥펑자동차(대표모델 ‘푸캉’)가 위기감을 느꼈다. 이치가 마치 둥펑을 포위하는 듯한 시장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둥펑은 우선 기존 합작업체인 프랑스 시트로엥과의 협력관계를 한 단계 높였다. 푸캉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한편 ‘엘리제’ ‘피카소’ 등 새 브랜드를 잇달아 출시했다.내부정리를 끝낸 둥펑은 광둥으로 눈을 돌렸다. 광저우시와 일본 혼다의 합자사인 광저우혼다가 타깃이다. 둥펑은 지난 5월 광저우시 및 혼다와 제휴, 광저우 수출가공구 내에 승용차공장을 설립키로 합의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광저우혼다가 결국은 둥펑의 바람에 휩쓸려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둥펑은 이에 앞서 지난 3월 저장성 위에다에 있는 기아자동차를 그룹 내로 끌어들였다. 둥펑은 위에다-기아의 주식 25%를 매입, 앞으로 이 공장을 둥펑의 소형차 생산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현재 위에다 공장에서는 프라이드 모델이 생산되고 있다.폴크스바겐 및 GM과 합작하고 있는 상하이자동차 역시 자동차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미 12년이 지난 폴크스바겐과의 합작경험이 이 회사의 최대자산. 상하이자동차는 GM에 이어 포드자동차와의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GM과 공동으로 류저우 우링에 승용차 공장을 설립, 소형 승용차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또 상하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창장삼각주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난치 장링 등을 매입했다. 창장삼각주에 자동차왕국을 설립한다는 게 이 회사의 꿈이다.상하이자동차는 최근 대우GM 주식 10%를 매입, 한국 자동차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대우GM 매입의 목표는 산둥성 엔타이의 대우 라노스 공장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 상하이자동차는 또 엔타이의 대우 엔진공장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들 3대 자동차업체의 ‘시장 레이스’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예상되는 수입자동차의 공세를 막아내자는 차원. 외국자동차가 들어오기 전 내수 시장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놓자는 계산이다.이 같은 분위기에서 베이징자동차는 현대를 끌어들인 것이다.베이징자동차는 국무원 합작 승인으로 일단 기존 3대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연간 30만대 이상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베이징현대는 올해 2,000대에 이어 오는 2003년 3만대, 2005년 10만대, 2010년에 50만대 등으로 생산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베이징 시정부는 베이징현대의 초기사업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시내 택시를 모두 EF쏘나타로 바꿀 계획이다.베이징현대의 앞날이 결코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중국 자동차시장은 최근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어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다. 혼다와 도요타 역시 국무원 비준을 받기 위해 뛰고 있어 공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대는 특히 50대50의 합작비율에 걸려 독자적인 경영을 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국무원 승인을 얻은 현대자동차의 중국 사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