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받게 될 줄 알았다면 정장을 준비했을 텐데 (전혀 예상을 못해) 이렇게 회사 작업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갖게 돼 죄송합니다…”지난 10월9일 밤 일본 교토의 시마즈제작소 본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학사 출신의 중견 기업체 회사원 신분으로 노벨화학상을 거머쥐며 1억2,600만명의 일본국민을 환희와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다나카 고이치씨(43)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자신말고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 상을 받게 된 것으로 알았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시마즈제작소의 생명과학연구소 주임으로 일하는 다나카씨의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소식은 일본국민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사건이었다.세계 최정상의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노벨상을 무명의 기업체 연구소 주임이 당당히 수상하게 됐다는 것은 기쁨에 앞서 엄청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그에 앞서 10월8일 저녁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도 수많은 화제를 뿌렸지만 다나카 주임의 소식은 일본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뉴스로 각광받았다.일본 언론은 하루아침에 열도의 영웅으로 떠오른 다나카 주임의 인생 스토리가 지금까지 일본에 노벨상을 안겨준 11명의 기존 수상자들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점을 특히 주목했다. 첫째, 박사는커녕 석사학위도 갖고 있지 않은 학사 출신의 기업체 연구원이 기라성 같은 학자들을 제치고 노벨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 다나카 주임을 돋보이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마주보는 도야마현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센다이의 국립 도호쿠대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바로 지난 83년부터 교토의 시마즈제작소에서 일하면서 생명과학연구소의 주임이라는 명함을 갖고 있었다.따라서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대학을 다닌 후 직장마저 지방에 잡았던 점을 감안해 본다면 화려한 중앙무대와는 철저히 담을 쌓고 인생을 살아온 그였다. 일본 학자들은 자연과학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학사증은 운전면허증과 같은 기초자격증에 불과한데도 이 같은 핸디캡을 딛고 상을 받게 된 데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다나카 주임의 수상과 관련해 일본 언론이 주목한 또 하나는 상아탑이 아니라 기업체의 연구실이 탄생시킨 최초의 노벨상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노벨상은 지난 73년 에자키 레어나 현 시바우라공대 학장이 미국 IBM 연구원 신분으로 물리학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모두 전현직 대학교수들이 수상의 영광을 독차지해 왔다.그나마 에자키 학장도 일본이 아닌 미국 기업의 연구원 신분이어서 순수 일본 기업의 연구두뇌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다나카 주임이 사실상 첫 번째인 셈이다. 때문에 일본 국민과 언론은 다나카 주임의 수상이야말로 상아탑 울타리 안에서 24시간 연구에만 매달린 학자들과 달리 생산현장과 밀착된 곳에서 탄생시킨 ‘보석’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이를 ‘보통사람의 인간만세’로 극찬하고 있다.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히데유키 쓰쿠바대 명예교수는 다나카 주임의 수상에 대해 “이론이 아닌 실험으로 받았다는 데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는 기업체의 연구실에서도 제2, 제3의 다나카씨와 같은 사례가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시마즈, 학구적인 연구풍토의 산물한편 다나카 주임의 수상배경과 관련, 일본 언론은 그동안 산업계가 뿌리고 가꿔온 연구ㆍ개발(R&D)풍토를 일등공신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뒷받침해 온 일본 기업체들이 연구ㆍ개발에 소요되는 거액의 자금을 아끼지 않으면서 젊은 과학두뇌들의 도전과 실험정신을 북돋워 준 것이 오늘의 열매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다나카씨가 근무 중인 시마즈제작소는 지난해 매출이 1,920억엔으로 일본 산업계 수준에 비춰 본다면 중견기업 수준에 불과한 업체다. 자본금도 168억엔에 불과하고, 그나마 최근 2년간 계속 적자를 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매년 전체매출의 약 6%에 해당하는 120억엔의 거금을 R&D에 쏟아붓고 있다. 종업원이 3,200여명이지만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1,000명이 연구인력일 정도로 기술 최우선 주의를 앞세우고 있다.‘과학 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1875년 교토에서 창립된 이 회사는 1909년 일본 최초의 X선 촬영장치를 만들어냈는가 하면 1947년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자현미경 개발에 성공하는 등 세계 정상급의 테크놀로지 파이어니어 업체로 손꼽혀 왔다. 업계에서는 이 회사가 대학보다 더 학구적인 연구풍토와 여건을 구축해 놓고 있다며, 이번 수상도 이 같은 전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다나카 주임도 “연구과정에서 성공보다 실패를 훨씬 더 많이 반복했다”며 “돈이 되는 것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고 실험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준 회사에 감사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시마즈제작소는 R&D를 중시해 왔다.그러나 R&D를 최우선시하는 기업풍토가 정밀기기와 교육용 이화학기자재 메이커인 시마즈제작소 한 업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일본 언론은 보고 있다. 나라 전체의 과학연구개발비의 약 80%를 민간부문이 담당하고, 나머지 20%만 정부가 지원해 왔던 지금까지의 패턴을 감안할 때 시마즈제작소와 다나카 주임의 사례가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는 자신이다.언론은 ‘현장’과 ‘응용’을 중시하며 연구ㆍ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산업계의 전통과 분위기가 앞으로도 ‘과학 일본’의 이미지 제고에 든든한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물리학상을 받게 된 고시바 명예교수의 경우도 소립자관측에 절대 없어서는 안될 초고감도 광센서를 일본의 정밀기술이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연구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산업계의 축적된 힘에 은근히 갈채를 보내고 있다.일본기업의 R&D 수준 다시 입증언론의 주장에는 학계와 재계 원로들도 동감을 표시하고 있다. 세라믹부품회사를 창업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일본에는 인재와 기술이라는 보물이 아직 얼마든지 존재한다”며 “다나카 주임의 쾌거는 이를 입증한 좋은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교토의 경우 기술자 출신의 사장들이 많은데다 이들이 세운 기업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연구ㆍ기술력에서 뒤지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뒤 시마즈제작소와 함께 롬, 호리바제작소, 니혼전산 등을 예로 들었다.다나카 주임의 노벨상 수상은 일본 산업계의 R&D 파워의 높은 수준을 다시 한 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는 한편 기업 내부의 젊은 과학두뇌들의 활약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노요리 료지 나고야대 교수는 “무명의 다나카 주임이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기업체 연구실을 지배해 온 연공서열 구조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노요리 교수는 또 “최근 노벨상의 수상자 선정이 응용분야를 중시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럴수록 제조업을 통해 탄탄한 기술력과 응용력을 축적해 온 일본의 젊은 과학두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한편 다나카 주임이 소속된 시마즈제작소는 주임직급에 불과한 그를 이사대우로 격상시키기로 방침을 확정한 데 이어 해외출장 중인 사장이 귀국하는 대로 이사회를 열어 최종 결정키로 했다.연구활동에서도 집단주의를 강조하며 특정인의 성과독점을 허용치 않아온 일본의 기업풍토에 비춰 볼 때 시마즈제작소의 결정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 내 과학엘리트들의 도전의욕을 북돋우는 당근을 기업들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