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건 기업이건 상식과 기존 관념을 무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룰과 정형화된 틀을 무시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해야 더 큰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화려하게 포장된 수사’의 하나다.막상 현실에 부닥치면 대다수의 사람과 기업은 과거의 선례와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해보지 않은 일, 가보지 않은 길에는 두려움과 함께 실패의 위험 또한 만만찮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기업의 경우는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가 개인보다 더욱 어렵다. 조직도 조직이지만 ‘돈’이 걸려 있어서다. 따라서 대다수의 경우 기업들은 경쟁기업이 간 길, 택한 방법을 집중 연구하면서 이곳에서 생존 노하우를 찾고, 자신만의 시장 개척법을 터득하게 된다.일본 유통업계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염가판매 전문점 ‘돈키호테’는 사실 신생업체가 아니다. 도쿄 인근의 외곽도시에서 첫 점포문을 연 지난 89년 3월 이후 13년간 계속 점포를 늘려 온데다 뛰어난 가격경쟁력으로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높은 지명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본 언론은 돈키호테를 최근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상술과 감춰진 힘을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법으로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단순히 싸게 판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객흡인력과 폭발적 성장에너지가 돈키호테에 감춰져 있다고 판단해서다.일본 언론이 주목하는 돈키호테의 파워는 경쟁업체들을 압도하는 염가전략 이외에 마케팅 상식을 철저히 뒤엎는 상술과 점포 내부 배열(레이아웃), 그리고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상품조달방식 등으로 압축된다. 돈키호테라는 이름에서 당연히 연상돼 왔던 염가판매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고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끈 원동력이 다른 곳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마케팅 상식을 기본부터 외면한 상술은 창업자이자 현재도 회사를 이끌고 있는 야스다 다카시 사장의 설명에서 그대로 확인된다.심야고객들 적극 유인한 것이 ‘적중’“돈키호테라는 간판을 달기 전 ‘도둑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할 때였습니다. 가게 문을 닫으려고 앞에 진열해 놓았던 물건을 들여놓고 있는데 손님들이 하나둘씩 몰려오는 겁니다. 취객이거나 밤늦게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그런데 이들이 돈을 쓰고 가는 단위가 다르더라고요. 낮에 주부들 지갑에서 나오는 돈보다 훨씬 액수가 크고 상품도 비싼 것이 많이 팔리는 겁니다. 바로 이때 눈을 떴지요. ‘돈은 심야에 뿌려지는 것이다’는 것을 말입니다.”야스다 사장의 지론에 걸맞게 돈키호테의 영업시간은 일본의 다른 유통업체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할인점(디스카운트) 형태지만 도심 번화가에서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다음날 새벽 5시에 닫는다. 교외라 하더라도 전체 58개 점포 중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 곳이 대다수다.고객들이 가장 붐비는 시간도 다른 업체들과 다르다. 전자양판점과 일반 슈퍼마켓 등이 문을 닫는 시간인 오후 9시부터 10시 사이가 황금시간대다. 당연한 일이지만 고객들은 밤늦게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20대와 30대 고객이 전체의 4분의 3을 넘고 있다. 반면 가족 단위로 쇼핑을 나와 들리는 고객은 10%에도 못미치고 있다.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회사의 특징에는 점포 내부 배열도 당연히 포함된다. 점포 내부에 처음 들어서는 고객이라면 누구나 가득 들어찬 상품의 양에 기가 질리게 된다. 어림잡아 300평 정도의 매장이라면 가전, 일용잡화, 의류,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줄잡아 4만여 품목의 상품들이 채워져 있다.이토록 많은 상품이 가지런히 정리ㆍ정돈돼 있는 것도 아니다.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이 올라가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내팽개치듯 바닥에 쌓여 있는 상품도 수두룩하다. 백화점 등 깔끔한 매장만 다니는 고객이라면 거의 현기증이 날 정도다.어지럽고 복잡하기는 통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지나가기도 비좁아 카트를 끌고 다니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고객이나 가족 단위의 쇼핑객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하지만 회사측에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다. 공간활용도를 최대한 높이려다 보니 이렇게 철저한 ‘압축진열’ 방식을 동원하게 됐다는 것이고, 이런 점들이 모두 염가판매를 떠받치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야스다 사장은 “일부 계층으로부터 혹평을 듣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젊은이들은 마치 보물찾기에 나선 것처럼 재미있어 한다”며 “이야말로 돈키호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처음 들린 매장에서 모든 상품을 한눈에 볼 수 없으니 더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궁금증을 품다 보니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논리다.돈키호테가 감추고 있는 경쟁력 중 눈여겨볼 만한 또 하나는 상품조달방식이다. 이 회사는 상품을 찾아내고 사들이는 과정에서 일반 대형유통업체들과 분명한 획을 긋고 있다.어떤 이유에서건 메이커나 대형도매상들로부터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 상품들을 집중적으로 발굴해 매장에 투입하고 있다. 그다지 각광받지 못한 상품일수록 매입가는 낮아지기 마련이고, 이를 파격적인 가격에 조달하니 다른 곳들이 넘볼 수 없는 염가에 팔 수 있다는 식이다.직원들 철두철미 성과위주로 평가이 회사의 다카하시 미쓰오 경영전략본부장은 “상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매장 전체의 구매력을 높이는 것이 돈키호테 상품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이 같은 전략의 효과는 매출효율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돈키호테의 매장면적 1㎡당 연간 평균매출은 약 280만엔으로 대형종합할인점이나 슈퍼마켓의 세 배를 웃돌고 있다.그러나 일본 전문가들이 파헤친 돈키호테의 성장에너지 중 하나는 종업원들의 맨파워와 이들을 활용하는 용병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 돈키호테는 철저한 ‘권한이양’과 치열한 ‘경쟁원리’를 바탕으로 종업원들을 움직이고 있다.장사에서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사장도 점장도 아니요, 일선 매장의 담당자들이다. 이들은 물건을 사들이고 파는 과정, 즉 가격책정, 진열방법, 상품관리 등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장사하며 성과를 냉엄하게 심판받는다.이 같은 방식을 놓고 외부에서는 권한이양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돈키호테는 ‘주권재현’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오직 성과로 직원들을 평가하다 보니 이 회사의 점장들은 모두 장사의 프로가 아닐 수 없다. 평균연령이 27세에 불과하지만 연봉은 최고 1,200만엔을 받는 사람도 있다.하지만 점장자리만큼 불안한 것도 없다. 성적이 나쁘면 당장 강등돼 자신이 부리던 종업원 밑으로 들어가고 만다. 야스다 사장은 종업원들에게 끊임없는 교육과 경쟁을 강조한다. 교육도 경쟁의 하나라며 ‘경육’이라는 용어를 쓸 정도다. 비슷한 일을 하는 부서도 둘로 쪼개 서로 경쟁을 시킨다.“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나오는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달려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초대형 유통업체들을 싸움 상대로 삼는다는 각오로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붙인 겁니다.”(야스다 사장)회사이름에서부터 엉뚱한 이미지를 풍기는 돈키호테의 도전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일본 언론은 야스다 사장의 행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