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심 주택가를 걷다 보면 눈에 자주 띄는 점포 중 하나가 세탁소다. 깔끔한 국민성을 지닌 때문인지 몰라도 세탁소는 주택가 골목 구석구석에 어김없이 박혀 있다. 일본 클리닝업계는 전국적으로 세탁소가 5만여개에 달하며 세탁물을 접수, 처리만 해주는 취급점도 11만개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약방의 감초처럼 주택가 골목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것이 일본 세탁소들이지만 영업문화는 한국과 크게 다르다. 우선 수거, 배달을 거의 하지 않는다. 고객이 세탁물을 직접 들고 가 맡기는 방식이다. 터진 곳, 얼룩진 곳을 빈틈없이 체크하며 이런 곳은 별도의 돈을 더 받는 게 일반적이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3~4일은 기본이고 일주일을 넘기는 곳이 허다하다.점포수는 많지만 뒤집어 말하면 일본의 세탁소 영업문화는 불편한 구석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고객이 일일이 맡기고 찾으러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과 느려 터진 속도가 일본 세탁소들의 약점인 셈이다.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약점을 역으로 이용해 시장을 파고든 신종 세탁 비즈니스가 등장, 시장의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주유소의 유휴 공간을 거점으로 해 태어난 ‘드라이브 스루’와 지하철이나 전철역의 로커 같은 전용상자를 이용한 ‘퀵 세탁’ 이 그것이다.드라이브 스루는 자동차문화 선진국인 미국에서 일반화된 세탁서비스를 일본에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베스트 클리너즈’가 도쿄 외곽의 마치다시에서 문을 연 1호점은 주유소에 급유하러 온 고객들이 세탁소에 따로 가지 않고도 세탁을 마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햄버거나 치킨을 사러 갈 때처럼 고객은 자동차 안에 앉아 세탁의뢰와 수거를 끝낼 수 있다. 세탁, 수리는 주유소 한쪽에 마련된 자체 시설에서 처리하니 업체측으로서도 세탁물 이동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주유소에 급유하러 온 고객 중 세탁까지 같이 처리하는 비율은 30%를 넘고 있다. 이 회사의 구로기 겐스케 사장은 “주유소는 세탁소의 새로운 영업거점으로 각광받을 것이 분명하다”며 “불황으로 고전하는 소규모 세탁업자들에게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장담하고 있다.드라이브 스루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도 호의적이다. 일본패브릭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합병, 통합으로 문닫는 주유소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유휴지도 남아도는 상황에서 드라이브 스루는 석유유통업계와 세탁업자들의 욕구를 절묘하게 충족시킨 모델이 됐다”고 진단하고 있다.편의성을 높이면서 시간절약의 매력을 극대화한 또 하나의 케이스는 24시간 무인 접수기를 앞세운 세탁 비즈니스다. 나라현 다이와다카다역에 등장한 이 접수기는 세탁소의 영업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고객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객은 미리 발급받은 선불카드나 신용카드를 넣어 접수기 표면에 달린 모니터를 확인하고 지시에 따라 버튼을 조작한다. 그리고 접수기가 열리면 안에 달린 전용 수거자루에 세탁물을 투입한 후 문을 닫고 모니터로 세탁물의 찾는 날을 확인하면 된다.세탁업체는 정해진 시간마다 들러 의뢰받은 세탁물을 가져가거나 도로 갖다 놓으면 된다. 이 방식은 고객이 언제든 자신이 편한 시간에 들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리듬이 불규칙한 젊은이들의 욕구를 정확히 간파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시테크 장점을 앞세운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는 초스피드로 세탁고민을 해결해주는 업체가 꼽히고 있다. 요코하마에 샤본느라는 간판을 걸고 등장한 이 업체는 얼룩 제거의 경우 3분, 드라이클리닝은 1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에 그 자리에서 끝내주는 신속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시장전문가들은 친절과 빈틈없는 서비스만을 강조했던 세탁소들의 영업방식도 이제 갈림길에 섰다며 변화의 핵심은 ‘스피드’와 ‘편의’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