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돈에서 가장 여유가 있는 계층은 누가 뭐래도 중년들입니다. 특히 50~60대 중년들의 약 4할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일본 굴지의 종합광고대행사인 A사는 2년 전인 2000년 실시한 한 소비자조사 결과를 통해 이색적인 결론을 내렸다. 돈을 무절제하게 쓰거나 소비의욕을 왕성하게 갖고 있는 계층은 젊은이들이지만 실제 구매활동을 뒷받침할 ‘돈’과 ‘시간’을 가장 고르게 갖춘 연령대는 속칭 ‘아저씨, 아줌마’들로 대변되는 중년층이라는 것이었다.A사는 특히 남성들의 경우 40대가 넘으면 일터에서의 승자(지위)보다 인생의 승자(취미)를 지향하는 욕구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지적, 이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새로운 시장이 어디에서든 창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오지상(한국말의 아저씨)들이 가슴에 접어 둔 꿈을 노려라.’일본 시장에서는 중년 남성들의 옛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들이 소비 빙하기를 녹이며 히트상품 대열에 속속 합류,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닛산자동차의 스포츠카 ‘페어레디Z’와 야마하의 전자기타 ‘EZ-EG’.닛산이 구 모델을 부활시켜 지난여름부터 발매 중인 페어레디Z는 시승을 해보려는 중년남성들이 너도 나도 몰리면서 가나가와현 자마시에 마련된 시승장이 주말마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토ㆍ일요일에는 시승희망자가 150명을 거뜬히 상회, 1시간 넘게 차례를 기다려야 할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닛산은 재고가 없어 계약을 해놓고 출고를 기다리는 고객만도 11명에 달하고 있다며 최근과 같은 자동차시장의 불황 속에서 스포츠카의 인기는 전혀 뜻밖이라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스포츠카를 사가는 계약자들은 전체의 6할 이상이 40세 이상의 남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닛산 판매담당자들은 “자식들을 키우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패밀리카를 타고 다녔던 남성들의 가슴속에 묻혀 있던 옛꿈이 페어레디Z의 등장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야마하 기타 발매 4개월 만에 6천대 팔려일선 판매가격이 약 2만엔인 EZ-EG는 기타 하나당 연간 평균판매량이 3,000대 안팎인 일본 시장에서 발매 4개월 만에 6,000대의 실적을 올려 만루홈런 티켓을 일찌감치 예약해 놓은 상태다. 야마하측은 “한 번쯤 기타를 배우려다 좌절한 기억을 가진 중년들을 타깃으로 잡은 것이 대박을 터뜨렸다”고 성공배경을 잘라 말했다.이 제품은 왼손으로 잡는 기타의 윗부분에 현 대신 전자버튼을 배열했다. 그리고 곡 데이터를 기타 내부에 탑재시켜 연주할 때 눌러야 할 부분을 빛으로 가리키도록 했다. 겉모양은 왕년의 명품을 본떠 목제로 제작했다. 이 기타를 가진 사람은 따라서 연습 제로인 상태에서도 젊은 시절의 유행곡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며 가수 기분을 마음껏 낼 수 있다.소비불황을 걷어내는 중년들의 여유 있는 돈 씀씀이는 관광, 여행사 창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일본의 최대 여행사인 JTB는 유망상품은 50대 고객을 겨냥한 것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며, 유학상담을 하러 오는 중년들도 적지 않다고 전하고 있다.일본 전문가들은 중년의 향수와 꿈을 자극하는 상품들이 인기를 누리는 현상과 관련, 육아부담과 주택자금 상환 등 경제적, 시간적 제약에서 해방된 중년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자식과 직장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것을 비교적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50~60대 중년들이야말로 앞으로 거대 소비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일본 언론은 중년독자를 겨냥해 등장한 잡지들을 대상으로 비교분석한 결과를 통해 높은 인기를 끌었던 책들은 한결같이 ‘시간, 돈, 취미’의 세 단어를 공통어로 갖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