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컨설턴트 능력 갖춘 인재 드물고, 기존 관행에 젖은 직원들도 반발 움직임

“스스로를 주식브로커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애널리스트의 시황과 유망종목에 관한 리포트를 검토하면서 영업을 준비한다. 종일 기존 고객에게 주식을 권유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수입은 중개료(Commission)에서 나온다.”<뉴욕타임스 designtimesp=23155>는 88년의 미국 증권사 영업직원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반면 이 신문이 그린 97년 증권사 영업직원 모습은 이렇다.“자신을 자산관리자(Asset Manager)라고 여긴다. 1년에 두 번쯤 자산배분(Asset Allocation)세미나에 참석하고, 펀드매니저들과 투자철학 및 투자방법에 대해 상의하는 게 영업준비다. 하루의 대부분은 기존 고객과 상담하면서 보낸다. 수수료(Fee)와 중개료 수입이 6대4 비율로 들어온다.” 미국의 증권사들은 ‘자산관리형’으로 영업방향을완전히 틀었다는 얘기다.요즘 국내 금융사의 경영진들이 한결같이 “앞으로의 수익모델은 종합자산관리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수익구조로 앞으로도 먹고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하지만 방법을 몰라 고민이다. 맞춤형 자산관리 상품이라는 ‘랩어카운트’는 이미 개점휴업 상태다. 한편 은행들은 PB 점포를 앞다퉈 개점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지점에서 해오던 VIP마케팅과 뭐가 다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가만히 있자니 도태되고, 변화하자니 방법을 모르겠고 환경이 따라주지를 않고” 한 증권사 임원이 털어놓은 고민이다. 어쨌거나 방향을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장면 1.ㄱ증권사 A역 지점,11월4일,영업직원의 하루전화가 울린다. 짐작되는 바 있어 수화기를 들면서 한쪽 눈으로는 흘낏 시계를 본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기까지 40분쯤 남았다. 역시나 지점장이 내선으로 건 전화다. 대뜸 들려오는 고함소리. “야~! 돌려(증권사에서 주식을 샀다가 팔았다가를 반복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 지금 무슨 소리냐. 더 돌려. 돌리란 말이다.”오후 5시쯤, 장이 끝나고 마감 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그에게 <뉴욕타임스 designtimesp=23171> 기사를 보여주었다. “맞아, 맞아. 지금 딱 내 모습이네요.” 그가 무릎까지 쳐가며 ‘영락없는 내 모습’이라고 말하는 건 14년 전인 88년 증권사 영업직원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증권사 수입의 많은 부분이 위탁계좌에서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일임매매는 금지돼 있죠, 원칙적으로는. 요즘 포트폴리오 투자라고 해서 펀드상품도 많이 팔라고 위에서 그러는데 단순 계산해서, 펀드 팔아 손익계산(BP)을 맞추려면 브로커 한 사람이 연 260억원 어치를 팔아야 돼요.그런데 위탁계좌 5억원을 갖고 있는 브로커가 하루에 이중 절반도 안되는 2억원만 돌리면 충분히 BP를 맞출 수 있어요. 지금 당신이 브로커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자산관리는 무슨? 다 헛소리일 뿐이죠. 예나 지금이나 브로커에게 미래가 어디 있습니까. 다들 빨리 한몫 잡고 튀려는 생각뿐입니다.”장면 2. 상명대학 강의실302호, 10월27일 토요일10시기온이 뚝 떨어진 토요일 이른 아침, 스무명 남짓 되는 직장인들이 대학 강의실의 정적을 깨고 하나둘 모여 든다. 수인사가 오가고 곧이어 강의가 시작된다. 오늘의 초청강사는 유니에셋 이왕범 이사. 부동산시장 전망에 대한 내용이다.학생자리에 앉아 골똘히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증권사 금융상품개발자, 보험사 판매인, 은행대출영업 매니저, 증권사 지점장, 자산운용팀장 등이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추출해내라면 ‘금융계에 종사하거나 관련돼 있다’와 ‘직간접으로 고객을 만나야 한다’ 정도.이 모임의 회원들은 이렇게 주말을 반납하고 공부에 바치기를 1년 넘게 계속해오고 있다. 일종의 ‘스터디모임’인 셈. 당장 돈벌이에 보탬이 되는 일도 아니고, 무슨 자격증시험을 대비하는 것도 아닌데 회원들의 공부에 대한 열의는 매우 높다.이들은 1년 동안 ‘자산관리’와 관련된 커리큘럼을 만들어 공부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회원들끼리 서로를 가르쳤다. 증권, 보험, 은행, 금융컨설팅, 심지어 교수까지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제각기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회원 중에는 자신의 분야에 강사로 초청돼 가는 사람이 허다하다), 은행출신은 보험에 대해 모르고 보험은 증권에 대해 모르는 등 자신의 분야 외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이것이 일단락되자 회비를 모아 외부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그동안 SEI에셋 곽태선 대표, HSBC은행 김영삼 이사,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대표, 보험판매법인 김규화 대표 등이 강사로 초빙됐다.모임 간사를 맡고 있는 미래에셋증권 김대환 지점장은 “요즘 자산관리가 금융권의 화두이고 금융업 종사자인 우리들도 이제 단순한 금융상품 셀러(Seller)가 아니라 컨설턴트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컨설턴트 자격을 갖추려면 일단 공부부터 해보자고 모여들기 시작해 모임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금융사에서 직원에게 해야 할 교육이지만 자생적으로 먼저 영업 관련자들이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투자하는 셈이다. 이 모임의 회장인 조경만 엉클조아카데미 원장은 “우리 모임을 수수료를 받는 자산관리컨설팅법인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의견이 나온 적도 있다.하지만 아직 금융환경이 그만큼 성숙한 것 같지도 않고, 또 우리가 종합금융컨설턴트라 할 만한 능력을 갖췄는지 의문이 들었다”면서 “공부를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당장의 목표는 없다. 하지만 준비는 돼 있어야 한다는 게 회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장면 3. 삼성증권 을지로 본사 & B지점, 11월4일최근 삼성증권은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증권사의 고객이 각기 원하는 바가 다양한데도 그동안 서비스는 일률적으로 제공돼 왔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Fn 아너스’ ‘Fn 파트너’ ‘Fn디렉트’ 등으로 차별화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거래수수료가 다르고 제공되는 서비스도 다르다.마케팅팀은 이 맞춤형 서비스를 출범시키면서 한창 바쁘다. 삼성증권은 이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CRM시스템을 200억원을 들여 구입하고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한편 이 시간 삼성증권 B지점 브로커들은 이 서비스의 시행을 둘러싸고 온라인 메신저로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이제까지 관리해 오던 고객들은 파트너로 등록시켜야 되니까 일일이 설명하고 전환시켜야 하고, 전산상으로 계좌관리를 해야 되니까 입력할 데이터가 많아서 정말 귀찮아.”“계좌는 수수료 싼 온라인 증권사에 개설하고, 상담은 우리 회사에서 받는 얌체 고객들은 없어지겠네.”“회사에서 비용절감, 향후 인원조정 등이 가능하게 조직을 개편하는 것 같아. 갈수록 브로커 입지가 좁아지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