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입맛이 바뀌는 것일까. 미국음식의 대명사가 돼버린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반면, 고급 샌드위치나 식물성 위주의 간단한 건강식품인 멕시코음식을 파는 이른바 ‘퀵캐주얼’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의 몸부림을 보면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맥도널드는 최근 고객들에게 더욱 따뜻한 음식을 서비스하기 위해 식당구조를 바꿨고 점포 내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회사 내 ‘암행어사’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소비자들의 입맛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치킨, 샌드위치, 바나나셰이크 같은 40여종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비장의 카드인 가격전쟁도 선포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8개 아이템을 묶은 ‘밸류메뉴’를 내놓으면서 가격을 1달러로 정했고, 이 ‘1달러 버거’를 홍보하기 위해 무려 2,000만달러를 썼다. 1위 업체인 맥도널드가 가격전쟁을 선포하자 2위 업체인 버거킹도 11개 아이템을 묶어 99센트에 내놓는 등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야만 했다.패스트푸드업체들이 이처럼 처절한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시카고에 사는 플로일란 랜데로스(19)는 “지난 4년간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음식과 분위기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랜데로스 같은 학생이 늘어나면서 패스트푸드업체들이 점차 경영난을 겪고 있다.맥도널드는 최근 8분기 중 7개 분기의 이익이 감소하는 기록을 세우며 전세계에서 175개 점포의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직원들도 미국 내에서 200~250명을 비롯해 전세계 지점에서 400~600명을 해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위 버거킹은 아예 국제 M&A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고, 3위 웬디스인터내셔널도 예상보다 낮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현재 패스트푸드 체인의 미국 내 점포수는 맥도널드가 1만3,099로 2000년보다 2.3%가 늘어났고, 웬디스가 5,315개로 4.3%가 늘어났을 뿐 버거킹이 8,248개로 0.9%가 감소한 것을 비롯해 피자헛이 7,719개로 2.6%, 타코벨이 6,444개로 4.5%가 줄어들었다.전통적인 패스트푸드업체들이 맥을 못추는 이유는 최근 들어 비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고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주원인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업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 당뇨, 심장질환, 고협압 같은 질병을 야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패스트푸드의 인기가 한풀 꺾이고 있는 틈을 타서 ‘퀵캐주얼’ 체인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패스트푸드보다 식물성 위주의 건강식품을 파는 ‘퀵캐주얼’은 패스트푸드 체인 고객의 절반 가량이 찾고 있다.키포틀(Chipotle)멕시칸그릴은 미국 내 점포수가 177개로 2년 전에 비해 무려 70.2%가 증가했고, 구운 빵을 파는 패너라브레드도 369개로 40.8%가 증가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카고 소재 식품컨설팅회사인 테크노믹스의 데니스 롬바르디 수석부사장은 “퀵캐주얼 고객들이 한 끼에 소비하는 금액은 평균 6~8달러로 패스트푸드점의 3~6달러보다 훨씬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뉴욕의 조사연구기관인 NPD그룹은 퀵캐주얼 고객들 사이에서 놀랄 만한 트렌드를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노령층으로 접어들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퀵캐주얼’을 좋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18~34세의 젊은층에게 어필하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퀵캐주얼 고객들의 37%가 바로 이 연령층에 속하는데 이들은 전통적으로 패스트푸드를 가장 즐겨 찾는 층으로 분류돼 왔다.가격 내렸으나 고객들 반응은 냉담패스트푸드업체들의 가격전쟁은 업계 존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뉴욕시에서 7개의 프렌차이즈 맥도널드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어원 크루거씨는 “1달러 밸류메뉴가 매출을 증대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며 “가격할인 때문에 이익까지 더욱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맥도널드의 가격전략이 당장 라이벌인 버거킹을 고사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미국 버거시장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버거킹도 가격전쟁으로 매출이 크게 위축됐다고 알려졌다.오래전부터 99센트 메뉴를 개발해왔던 웬디스는 다소 여유가 있다. 그동안 싼 가격의 메뉴를 유지해 온 결과 고객들이 할인가격 품목과 정상가격 품목을 섞어서 사기 때문에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하지만 대부분의 패스트푸드업체들이 가격하락으로 경영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버거킹 고객의 맥도널드 이전이 빠른 편이다.맥도널드에서 1달러에 팔고 있는 빅N 테이스티와 맥치킨 샌드위치가 버거킹의 99센트짜리 샌드위치보다 양이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런 맥도널드를 비롯해 패스트푸드업체들은 고객들의 기호변화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맥도널드가 요즘 잘나가는 퀵캐주얼 체인인 키포틀멕시칸그릴과 영국의 고급 샌드위치 체인인 프렛매니저의 최대주주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웬디스도 커피 및 도넛 체인인 팀호튼과 멕시칸 체인인 바하프레시의 지분을 인수했고, 최근에는 샌디에이고의 잭인더박스가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편의점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패스트푸드 체인들은 제품메뉴에 채소 샐러드, 구운 감자, 요구르트 같은 건강식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 맥도널드는 지난 9월 튀김제품에 사용하는 기름에서 지방성분을 크게 줄였다고 발표했고, 이에 앞서 버거킹이 식물성 기름으로 튀긴 버거를 도입하는 등 비만의 원인 제공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버거킹의 홍보담당인 로버트 도티는 “미국인들이 비만의 원인을 패스트푸드에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오산”이라며 “미국인들은 패스트푸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식사를 하고 고급식당에도 간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패스트푸드에서 퀵캐주얼로 가는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