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선물시장이 세계 2위, 옵션시장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들은 아마 입을 딱 벌렸을 것이다. 선물옵션은 누가 뭐래도 투기, 다시 말해 도박적(的) 속성을 갖고 있다. 도박이란 무엇인가. 패가망신의 지름길? 일확천금의 횡재수? 어떤 답이라도 좋다. 확률에 의해 성립되는 숫자의 게임을 도박이라고 한다면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대경제에서 도박 아닌 것을 찾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오늘날 우리가 보험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모든 산업이 확률의 전제조건인 대수(big number)에 의해 성립되어 있다. 마진(margin)을 걸고 횡재수를 꿈꾸는 선물과 옵션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생산현장에서조차 확률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면 0.0006% 등의 확률적 개념으로) 불량과 재해위험을 관리하고 있다.한국의 도박산업 규모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말 그대로 강원도의 카지노에서부터 경마, 선물옵션에 최근 잇달아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로토 등 복권까지 더한다면 그 규모는 엄청나다. 변동성이 극도로 높아져 있는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여기에 외환시장까지 도박적 산업의 범주에 넣는다면…? 꼼꼼히 계산해 볼 것도 없다.주식시장 거래규모가 하루에 어림잡아 10조원, 채권이 10조원, 외환시장이 10조원 정도 된다. 3대 시장이 하루 30조원으로 보면 대충 맞다. 선물옵션은 놀랍게도 주식의 3배수에 이른다. 강원도 정선에서 호주머니를 털리는 도박꾼들은 그야말로 푼돈이다. 복권시장 규모는 연간 단위로 1조원 수준이다. 2002년에는 9,000억원대, 올해는 로또까지 가세했으니 1조원을 넘어설 것이다.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의 차이’일 뿐이다. 얼마나 고도화된 베팅기법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일 뿐 변동성, 다시 말해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는 것이 복권구입이며 증권투자다.문제는 머니게임의 계급성이다. “웬 갑작스런 계급론?”이냐고 놀랄 필요는 없다. 잭팟을 터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슬롯머신을 전부 차지하고 앉으면 된다. 로또에 가장 확실하게 당첨되는 방법도 간단하다. 815만장의 로토복권(확률이 815만분의 1이므로)을 사들여 정성스레 여섯 칸씩 까맣게 채워넣으면 된다. 당첨 가능성 100%다. 증권투자에서 100% 성공하는 방법도 유통주식을 몽땅 사들이면 된다. 과연 그럴까…?우리가 너무도 잘 알듯이 ‘답’은 ‘미친 짓’이다. 주식을 다 사들이면 은행이자를 넘는 수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어떤 증권시장에서든 평균이자율 이상의 배당수익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니까.’ 로토의 경우라면 어떨까. 물론 로토 구입금액의 50% 정도는 ‘확실하게’ 건질 수 있다.우리가 알다시피 손해 볼 확률 ‘100% 확정’의 조건하에서다. 로토가 인기를 끌면서 복권공화국, 도박공화국이 되고 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그나마 서민들의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자들도 로토를 사지만 구입자의 대부분은 서민들이다. 로토수입이 엄청난 만큼 정부가 아예 세금을 철폐하고 복권으로 국가재정을 조달하도록 하면 어떨까? 물론 답은 미친 짓이다. 왜?“가난한 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긁어내 나라살림을 꾸린다고?”가 답이다. 증권시장을 통해 중산층을 육성하고 근로자들에게도 복지혜택을 주자는 약간은 (실제로는 매우) 얼빠진 주장도 있다. 안될 말이다. 증권시장도 게임의 논리가 성립되고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계급성이 유감없이 관철되는 곳이다.왜? 밑천이 두둑해야 약세장을 견딜 수 있으니까…. 결국 다수의 돈을 모아 소수를 배불리는 것이 복권산업이요 투기산업의 진실이다. 그것은 언제나 ‘게임’, 다시 말해 놀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