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최근에는 양력설을 쇠는 집이 더욱 줄어들어 약 1할 내외 정도인 것 같다.우리집은 증조할아버님이 양력 1월1일에 돌아가신 이후로부터 양력설을 쇠기 시작했다고 한다. 약 60년 전부터인 셈이다.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증조할아버님께서 기독교를 믿으신 이후로는 집안에 모셔두었던 위패 등을 치우셨고 제사도 기독교식인 추도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어느 할아버지, 어느 할머니 등 조상들의 제사를 기일에 따라 각각 따로 모시던 것을 증조할아버님 기일(양력 1월1일)로 통일하여 기독교식인 추도식으로 간편화하셨다고 한다.찬송가를 부르고 간단한 성경말씀도 곁들이면서 엄숙하기도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추도식을 치른 후 나름대로 차려놓은 성찬을 들면서 어른들께서는 지난해의 관심사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화두 등을 말씀하셨고 우리들은 그저 어른들 말씀을 경청하는 것으로도 흥미로웠고 화제에 참여는 못하지만 그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좀더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는 듯한 착각을 즐기기도 했다.큰집안은 아니었지만 선친께서는 독자시고 장손이셨으므로 때마다 할아버님 형제분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이 우리집에 모이셨다. 제사상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는 것이 아니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기쁜 마음으로 신년예배를 보는 추도식 형태로 약 15분 정도 치르는 예식이다.우리집 설은 명절을 쇤다는 뜻 외에 조상님 전체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연중최대(年中最大)의 가족행사이다. 또 하나의 우리집 정월 초하루의 특이한 풍경은 선친(연극인 이해랑)을 찾아오시는 세배객(歲拜客) 이야기다.가족행사가 끝난 연휴부터는 연극하시는 분들, 연극하시다가 탤런트나 영화계에서 활약하시는 분들, 연출가, 극작가 등 세배객들이 줄을 섰다.선친께서는 연방 그 특유의 눈웃음을 치시면서 맥주를 권하시고 오신 분들은 연극, 문화계 발전을 위해 열변을 토하시다 돌아가시면 또 다른 팀이 들이닥치시고 했다.어머니는 안줏감 대시느라고 바쁘셨고 급하실 때만 나오는 평안도 사투리도 간간 튀어나오기도 하는 날이었다.요즈음 공직사회나 기업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배문화(歲拜 文化)가 없어졌다. 아마도 파벌이나 비리(非理)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아직도 문화예술계에는 존속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경험한 선친시대(先親時代ㆍ1916~89)의 문화예술계의 세배문화는 매우 아름다웠고 순수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부모님 모두 작고하신 후에는 필자가 집안의 장손이라 벌써 8년째 필자 아파트에서 정월 초하루 행사를 치르고 있다.우선 장소가 답답한 아파트인 만큼 많은 손님을 청하기에 불편한 점이 있고 선친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는 면(面)도 있는지라 집안 어른들께서도 점차 발길이 뜸해지시게 되었다.우리 오남매 중 해외에 거주하는 누이동생들은 올 수 없고 출가시킨 딸도 시집이 매우 예외적으로 우리와 같이 양력을 쇠는 집이라 내외가 점심 후 늦게 달려오는 형편이다.1년에 한 번 모시는 행사(물론 조부모, 부모 기일에는 별도 추도식이 있다) 그저 경건하고 조촐하게 모시면 되는 것이나 선친시대의 그 여유로움,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새삼 그리워진다.인터넷 시대가 되고 달나라를 가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변할 수 없는 가치(價値)는 항상 있는 것이다. 어느 가정이나 갖고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정신적 유산은 변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