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실패 딛고 92년 ‘돌장사’로 재기, 올해부터 미국 등 해외시장 공략 본격 추진

중소기업&기업인 성공스토리‘돌침대가 의료기기.’돌침대가 어떻게 의료기기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의료기기인 돌침대가 있다. 수맥돌침대(대표 이경복·54)가 만들고 있는 돌침대가 지난해 2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의료기기로 인증을 받았다.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 침대제조업계에서는 깜짝 놀랐다. 가구류인 침대가 의학적 효능을 인정받아 의료기기로 인증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침대가 의료기기라니,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이 회사의 돌침대가 의료기기로 인증을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제품은 일반 돌침대와 달리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진 ‘수맥파’를 차단시켜 준다. 이 회사의 이경복 대표는 “수맥파는 수맥에 녹아 흐르는 광물질에서 나오는 파장이 혈관을 압박하는 등 인체에 해를 주고 식물의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특히 수맥파는 지상 300m까지 도달할 정도로 강한 파장을 발산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유로 수맥파는 불면증이나 만성피로를 유발하고 고혈압 등 질병의 원인으로 주목받는 등 인체에 해로운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수맥돌침대가 만든 돌침대는 구리 및 알루미늄판을 3중으로 보강해 수맥파를 차단하고 전자파 흡수기술을 내장시켜 전자파까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제거시켰다. 이대표는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받아 식약청으로부터 의료기기로 인증받은 것”이라고 말했다.이대표의 성공에는 그 나름대로 인생역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집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학창시절을 보낸다. 학업성적도 우수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가난은 그에게 대학진학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그후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버린 그는 결국 주경야독으로 2년 후 대학에 입학, 힘겹게 졸업장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 1973년 한국조폐공사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당시 그는 찢어지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지폐의 재질강도를 높이는 연구를 했었다.“10년쯤 이 일만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더라고요.” 1982년 조폐공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나왔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그냥 일을 그만 두고 싶었어요.” 회사를 그만두자 아내는 목놓아 울었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고생길로 들어서느냐는 아내의 질타였다.직장생활을 접고 시작한 사업은 생각과 달리 시련의 연속이었다. 처음 시작한 건강식품 판매사업과 두 번째 사업인 슈퍼마켓은 1년도 안돼 문을 닫았다. 사실 말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다시 서울 가양동 아파트를 팔아 스키장갑과 야구장갑을 제조하는 봉제공장을 차렸다. 자본금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 직원수도 40명까지 늘어나는 등 처음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해가 바뀔수록 어려워졌고 결국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직원들이 떠나고 난 공장 구석에서 눈물을 훔쳤어요. 당시 오일파동으로 원자재가격이 오르고, 경영마인드 부재가 공장문을 닫게 한 이유가 됐지요. 집은 채권단에 넘어갔고 빚만 남았어요.”그후 살아보려고 문방구, 식당도 해봤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대표는 절망에 빠져 더 이상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죽음까지 생각했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구나. 가족들은 누가 책임지지” 이런저런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입소문나자 주문폭주이후 몇 달 동안 두문불출했다. 세상 밖 구경이 싫었다. 책과 신문을 읽으며 하루하루 보냈다. 방구석에만 있는 모습이 싫었는지 아내가 여행을 권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강원도 홍천의 한 암자. 전기담요 위에 돌을 올려놓고 그 위에 앉아 명상에 잠긴 스님을 만났다.“앉아계신 모습이 별나시네요.”“치질 치료하려고 그런다네.”이때 “돌장사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서울로 돌아온 그는 1991년 송파구 오금동에 사무실을 내고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쇠로 열판을 만들고 그 위에 돌판을 올려놓았다. 이렇게 만든 제품을 차에 싣고 아파트단지로 팔러나갔다. 목청껏 외치며 설명을 했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한 달 동안 단 한 개를 팔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밤에는 돌침대를 만들고 낮에는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녔다. 두 달 후에는 3개를 팔았다.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판매량이 늘었다.1992년 초로 기억된다. 임응승 신부와의 만남은 사업의 전환점이 됐다. 임신부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수맥전문가다. 임신부로부터 수맥파가 우리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돌침대에 이를 접목시키기로 했다. 1년여 만에 수맥파를 차단하는 돌침대를 내놓았다. 그리고 집집마다 방문하며 판매에 들어갔다. 경로당, 찜질방 등에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했다.당시 에피소드 하나. 경로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딱딱한 돌에서 어떻게 자냐. 허리 부러질 것이다”란 의문을 갖던 할머니가 하루는 누워보더니 “내 침대”라며 집에도 안 가고 경로당에서 며칠을 지냈다. 결국 자식들이 돌침대를 집에 사들이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다.돌침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판매량도 늘기 시작했다. 연간 30~40대 파는 게 고작이었던 돌침대가 수맥파 차단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시작한 1996년부터는 월 100대를 넘게 팔았다. 이때 공장도 확장했다. 잠실 제1공장만으로는 늘어나는 주문물량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남에 1,000평 규모의 제2공장을 세웠다. 직원수도 160명으로 늘어났다.의료기기로 인증받은 지난해부터는 병의원에서 구입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 “백병원,원광대 한방병원,혜인병원 등 많은 병의원에서 치료용으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한 의료기관에서 돌침대 구입을 위해 의사 등 관계자들이 회사를 방문하기도 했어요.”수맥돌침대는 연간 5,000대 이상을 팔고 있다. 올해부터 해외시장 공략도 본격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첫해인 올해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지에 1,000세트(200만달러 상당)를 수출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2,000세트를 수출한다는 전략이다. 수맥돌침대는 올해 12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의료기기로 인증받은 수맥돌침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욱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술개발을 끊임없이 해나갈 생각입니다.”(02-777-4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