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소비 및 투자 위축, 국제유가 . 금값 상승 불가피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가능성이 갈수록 성숙되는 분위기다. 앞으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는 세계경제에 ‘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약’이 될 것인가.지금까지의 시각은 세계경기의 회복국면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경제가 전쟁이 일어나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추가적인 경기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동시에 국제유가와 금값이 올라가고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이 초래돼 세계경제의 부담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 이후 종전처럼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이 변화될 경우 국제통상환경과 국제협조체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분명히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세계경제의 악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에 하나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중동전으로 확산, 장기화될 경우 세계경제가 장기복합불황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다행히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에 대한 우려가 1년 이상 지속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의 움직임을 보면 종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이미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 점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도 전쟁이 발발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국제유가의 급등을 방지하기 위해 원유공급을 늘릴 뜻을 시사해 오고 있다.더욱이 한동안 정책에 대해 무관심을 보였던 미국민들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대목은 앞으로 미국경제 향방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2001년 이후 미국이 금리인하와 세금감면책을 추진했어도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정책수용층인 국민들의 반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앞으로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반드시 암울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최근처럼 경제활동에 있어서 경제심리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독’처럼 암울하게 받아들일 경우 의외로 충격이 커질 수 있다.그렇다면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에 ‘약’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앞서 지적한 요인과 과거 비슷한 상황을 겪은 후에 세계경제 모습을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을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실제로 지난 1929년 대공항 당시에도 최근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팍스 브리태니아’(Pax-Britannia)를 실현한 영국경제가 붕괴되면서 세계경제가 극심한 불황국면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각국들이 극심한 경제이기주의로 치달으면서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당시 세계 각국들은 금리인하와 대내적인 정부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을 모색했으나 경제주체들이 각국 경제 앞날에 대해 불확실하게 느낌에 따라 의도했던 효과는 얻지 못하고 불황국면이 장기화됐다. 더욱이 팍스 브리태니아 시대에 수십년간 장기호황이 지속됨에 따라 공급과잉 상태를 보이면서 재고적체 현상이 심화됐다. 결국 이 상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덤핑수출 → 산업피해 → 보호장벽 → 장기침체’의 악순환이 발생했다.이런 불황의 깊은 고리를 차단시켰던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단기적인 경기침체요인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 적체된 과잉상품을 쉽게 처분할 수 있었다. 동시에 군수산업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부각되면서 장기불황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세계경제 회복과 인류공영을 목적으로 국제적인 협조 분위기가 노출됨에 따라 경제이기주의ㆍ보호무역에 따른 장기 불안요인이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1960년대 들어서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이후 베트남 특수로 미국경제 역사상 최장의 호황국면으로 평가받고 있는 ‘케네디-존슨 경기호황 시대’가 열렸다. 90년대 들어서도 걸프전을 통해 80년대 호황과정에서 누적된 일부 산업의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되면서 미국경제가 91년 3월부터 10년간에 걸친 장기호황국면의 초석이 됐던 것이다.어떻게 보면 이번 침체국면에 빠지기 전에 미국경제는 10년간 장기호황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의 재고가 누적된 상태다. 군수산업의 경우에도 90년대 들어 국제저유가 지속에 따른 재정사정 악화로 미국 군수물자의 최대 수요처인 중동의 수입이 줄어들어 재고가 누적돼 왔다.따라서 군수산업 분야에서 개발된 첨단기술이 민간부문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미국만이 누렸던 ‘외부경제’(External Econo-my)를 누릴 수 없었다. 2000년 하반기 이후 미국경제를 둔화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인 생산성 둔화가 이런 요인에 기인하는 측면이 많았다.특히 97년 하반기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성장세를 지탱시켰던 신경제도 2000년대 들어서는 재고누적과 주가의 고평가로 미국경제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등장했다. 물론 2002년 1/4분기 이후 신경제의 거품이 해소돼 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결국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번 전쟁이 미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을 해결시켜 줄 가능성도 높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미국경제를 ‘역발상 경제’(Reverse Econo-my)의 이점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위기를 기회로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반면 우리 경제를 보면 위기를 기회요인으로 삼은 적이 비교적 드물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착수한 이래 위기를 당한 때가 크게 보면 이번 침체국면을 포함해서 다섯 차례다.보는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76년 이후 찾아왔던 중동건설 특수, 86년 이내 3년 반 이상 지속된 3저 현상, 93년과 98년 이후 다시 찾아온 미니 3저 현상과 같은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우연하게 찾아왔던 대외환경의 호재가 우리 경기가 회복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됐다.오히려 대외환경의 악재가 나타나면 우리 경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 올 들어 이라크와의 전쟁가능성이 구체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주가하락폭이 세계 국가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다.이제부터 우리 경제도 ‘역발상 경제’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경제 입장에서는 대외환경 변화를 완충시킬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동시에 국민화합 분위기가 조성돼 위기를 기회요인으로 삼으려는 도전정신을 길러야 한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