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을 보고 달려드는 자가 돈키호테만은 아니다. 성서의 인물 다윗도 밤새 천사들과 힘을 겨루었다 하고, 새벽까지 귀신과 씨름을 했었는데 아침에 보니 큰 나뭇등걸이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흔한 이야기다. 웬 귀신이야기냐고?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와 재계가 벌이는 다양한 논쟁과 갈등 중에는 꼭 이 귀신소동 같아 보이는 것들이 한두 대목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상속세 ‘완전’ 포괄주의 논란이다.노무현 당선자도 직접 ‘재벌개혁 3대 과제’, 다시 말해 집단소송제와 상속세 포괄과세, 출자총액 제한제는 개혁의 골격이므로 정면 돌파하겠다며 결의를 다졌고, 인수위원들 역시 이들 과제에 대한 재계의 조직적 반발을 묵과할 수 없다며 재계와의 대립구도를 분명히 했다. 국운을 건 엄청난 투쟁이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마치 세상의 판세가 뒤바뀔 듯한 으스스한 기분마저 드는 대단한 싸움이다.‘공정한 부의 분배’ ‘부의 대물림 반대’ ‘2, 3세들의 경영승계 반대’ ‘조세정의의 실현’ 등이 상속세 ‘완전’ 포괄주의를 내건 쪽의 명분이다. 다시 말해 ‘완전’ 포괄과세만 되면 모든 빈부격차며 계급갈등이 모두 해결될 듯한 기세다. 물론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다.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며, 시장경제의 동력이요 엔진인 ‘재산축적 의욕’이 상처받고, 결과적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면서 경제가 악화될 것이라는 것은 재계의 항변이다. 어느 쪽이건 주장의 근거가 만만치 않다. 둘 다 옳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런데 혹시 이런 논쟁들이 실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의 공론이요 돈키호테가 씩씩거리며 내달았던 낡은 풍차 같은 처지는 아닌지 모르겠다. 만일 헛것을 보고 이토록 치고받으며 싸운다면 공연스러운 소동이요 괜한 유령놀음일 것이다.‘완전’ 포괄주의 과세가 헌법의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는 사실 본질적인 문제도 아니다. 지금의 상속·증여세법도 제39조에서 42조에 걸쳐 유형을 예시하고 이 유형에 해당하면 ‘포괄적으로’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증자에 따른 증여의제’ ‘전환사채 등에 따른 증여의제’ ‘특정 법인간 거래이익 증여의제’ 등의 유형을 정해 포괄적으로 과세하는 것이다.그래도 혹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제42조는 ‘기타의 증여의제’까지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규정한 유형을 우회할 만한 기발한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어차피 남자 아니면 여자일 수밖에 없는데 남자와 여자를 규정하고 나서 다시 상위개념으로 ‘인간’ 또는 ‘기타의 인간’이라는 별도규정(완전 포괄)을 둘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유가증권에 대한 자본이득 과세의 실효성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면 상속과 증여에 대한 더 이상의 어떤 규정이 필요한지 궁금하다. 실제로 자본이득 과세제가 정상화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 상속증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득 과세에 대한 논란 역시 개개인의 자본 스톡에 대한 정확한 자료파악의 문제일 뿐 다른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다.한때 문제가 되었던 모 재벌 3세의 기발한 증여(당시 수법은 BW였다)라고 해봤자 ‘전환사채 등’을 규정한 조항에 걸리게 되어 있다. 그 어떤 변칙도 모두 차단하고 잡아내겠다는 것이 ‘완전’ 포괄주의의 정신이지만 이를 통해 더 잡아낼 수 있는 다른 우회로가 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세계적으로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있는 것이 대세다.미국에서도 중소기업과 가업(家業)파산의 주된 원인이 상속세라는 점 때문에 아예 폐지수순을 밟고 있는 중이다. 실질보다 공론과 명분을 좋아하는 분들이 대한민국에는 너무 많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논쟁은 다만 ‘부자 때리기’ 캠페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