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조희숙 신라호텔 한식당 ‘서라벌’ 조리장(45)은 평범한 중학교 가정교사였다. 신출내기 였지만 하루하루 흥미만점이었다. ‘선생님’을 꿈꾸며 사범대에 진학한 그녀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런데 불과 3년이 지났을까.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문득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진 후 세종호텔 한식당 조리사 보조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거지와 음식 재료를 다듬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큰 광주리에 가득 담긴 우설의 껍데기를 벗기면서 곤혹스러워했던 기억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는 호텔 한식당 ‘최고의 요리사’로 이름을 떨친다.2000년 3월. 그녀는 돌연 경남 남해로 내려갔다. 한 전문대학의 조리학과 전임교수로 강단에 서기 위해서였다. 흰색 조리모를 벗고 강단에 섰지만 ‘1명의 인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며 인재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삼성에서 그녀를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2002년 3월. 강단과 현장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신라호텔 한식당 서라벌 조리장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현장 복귀 이후 ‘서라벌’은 전년 동기 대비 40% 정도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하며 천덕꾸러기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다시 태어났다. 특급호텔의 한식당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마당에 서라벌의 약진은 ‘의외’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그렇다면 조조리장이 무슨 요술방망이라도 휘두른 것일까.“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그녀는 “호텔 한식당이 괄시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한다.이어 그녀는 “한식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주지 못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고유의 맛과 색, 형태를 살리면서 내국인에게는 새로운 입맛을, 외국인에게는 접근하기 쉬울뿐더러 동양적 특이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요리개발에 몰두했다.가령 탕을 액기스로 만드는가 하면 고기와 상추에 색을 입혀 일식의 초밥처럼 싸서 내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식의 기본양념인 간장, 된장, 고추장을 잘 활용한다. 특히 된장을 이용한 소스나 드레싱을 개발, 서구화된 입맛을 공략했다.“치즈를 즐기는 사람이면 된장을 좋아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지난 1월에 있었던 생활도자기에 음식을 담아낸 ‘요리와 도자기의 만남’과 오는 4월에 열리는 ‘차 요리’ 축제 등이 이런 그녀의 의지를 담뿍 담아낸 행사다.1남1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10시30분에 퇴근할 때까지 주방에서, 출퇴근길에서, 화장실에서도 늘 고민중이라고 귀뜀한다. “어떻게 하면 한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