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가 맞아야…”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신호체계가 맞지 않으면 이래저래 불편해지게 된다. 눈짓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정도가 되면 금상첨화다.노무현 정권 두 달 동안 바로 이 코드가 달라 생기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정치분야는 언제나 소용돌이였다고 하더라도 경제문제에 이르면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속내를 주장하는, 다시 말해 코드가 달라 혼선이 생기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문제는 우리 내부가 아니라 국제사회와 코드를 맞추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적잖은 놀라움을 안겼지만 대통령의 코드는 곧 국가의 코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와의 코드 일치 문제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200V 전기로 100V 전자제품을 쓸 수는 없다.파병동의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표면화됐던 서로 다른 ‘국익의 코드’는 사실 우리의 코드를 국제질서의 볼티지에 얼마나 맞춰갈 것이냐는 논쟁에 다름아닌 그런 문제다.지난회에 ‘동북아 중심국가론’의 위험성에 대해 논의한 바 있지만 혹여 태평양 국가로부터 대륙국가로 회귀하는 것인지, 그리되면 전통적인 한ㆍ미ㆍ일 동맹체제를 깨버리는 것인지(코드를 달리하겠다는 것인지) 하는 질문들이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의 포인트다. 바로 여기에 파병문제의 경제적 함수관계도 있다.이라크전쟁이 초래할 위험성 중의 하나는 자칫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잃게 될 가능성이다. ‘잃어버리는’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만에 하나 ‘약화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면 국제경제는 적잖은 혼란과 무질서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전쟁뉴스가 세계를 흔드는 와중에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이 좌초되고 있다거나 서비스시장 개방 양허안을 기일에 맞춰 제출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작은 뉴스들이 겹쳐 지나가고 있다. 좋지 않은 징조들이 벌써 심심찮게 쌓여가는 중이다.이런 뉴스는 당장의 전쟁보도에 파묻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있지만 세계경제질서에 중대한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반전움직임은 분명 지난 90년대 10년간 전세계를 흔들었던 경제분야에서의 반세계화 투쟁과 일정부분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미국이 ‘세계화’의 역풍을 맞을 경우 세계 무역질서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세계화로부터, 그리고 그것의 부분집합인 태평양 국가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함으로써 그동안의 경제성장을 이뤄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중국이 거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화’의 무역질서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이 빠진, 그리고 세계화 코드가 없는 중국과의 교섭이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언제 파도에 휩쓸려갈지 모른다.중국과의 마늘분쟁 하나만으로도 나라가 휘청거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무역역량이며 교섭능력의 현수준이다. WTO와 세계화의 코드가 없다면 우리 경제는 존립기반을 잃게 된다.세계무역질서는 그동안 지역화(Regionalization)와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모순적인 힘을 동시에 강화하면서 형성돼 왔다. 지역화가 표현된 것이 자유무역협정(FTA)이며 세계화가 WTO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문제는 칠레와의 FTA 협상조차 그렇게도 엄청난 반발현상이 나타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지역화 코드’를 맞출 나라도 없고 미국을 축으로 놓고 있는 ‘세계화’에도 코드를 맞출 수 없다면 한국은 과연 어디에 국익의 기반을 둘 것인가. 우물 안 개구리요, 수레바퀴를 향해 달려드는 땡볕의 사마귀와 다를 바가 없는 신세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