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인기 있는 상품인데 은행상품이 아닌 것은?’수수께끼 같은 이런 말이 적용되는 게 요즘 은행권의 모습이다.최근 은행에서 잘 팔리는 상품의 면면을 보면 은행에서 직접 만들지 않고 다른 업계의 상품을 판매만 대행한 경우가 종종 있다. ELS(주가지수연동)펀드가 그렇고, 또 조만간 은행권의 보험판매(방카슈랑스)가 허용되면 보험도 은행의 인기상품 대열에 오를 가능성이 다분하다.저금리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예ㆍ적금 등의 기존 상품으로는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은행권에서는 판매대행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그중 한미은행의 해외채권펀드는 판매상품의 파괴를 넘어 아예 국적까지 파괴하고 나선 상품이다. 이 상품은 말 그대로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최근 해외채권펀드는 높은 수익률과 안정성을 앞세워 저금리시대 틈새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한미은행의 경우 올해 초 ‘프랭클린 미국 국공채펀드’와 ‘슈로더 미국달러채권펀드’ 등을 1, 2차에 걸쳐 870억원치 판매했다. 이 상품들은 미래의 일정 시점에서 사고팔 외환가격을 현시점에서 미리 정하는 ‘선물환거래’를 결합해 환율하락 위험을 없앴다는 특징을 앞세워 크게 인기를 끌었다.4월23일까지는 ‘슈로더 이머징마켓채권펀드’와 ‘슈로더 유럽채권펀드’, 그리고 ‘슈로더 미국달러채권펀드’ 등의 세 가지 펀드를 판매한다. 이중 슈로더 이머징마켓채권펀드의 경우 아시아ㆍ동유럽ㆍ남미 등 신흥시장 정부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에 분산투자하는 상품이다.이 상품을 담당하는 문상용 제휴상품팀장은 “97년에 설립된 이머징마켓채권펀드는 연평균 15%의 수익률을 실현한 바 있어 연 12% 수익률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확대되는 ‘수수료 사업’의 일환“‘남의 자식’ 키우는 게 저희 업무죠.”문팀장은 제휴상품팀의 부서성격을 묻는 말에 농섞인 대답을 내놓았다. 제휴상품팀에서는 해외채권펀드를 비롯해 국내외 금융기관이 개발한 수익증권이나 뮤추얼펀드, 그리고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게 된다.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금융상품이면 국적을 불문하고 적극 도입해 판매한다는 것이다.해외채권펀드는 지난 1997년 투자신탁증권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씨티은행에서 2001년에 2,000억원치의 원금보장 해외채권펀드를 판매하면서부터다.이때부터 투자자들이 ‘해외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해외펀드의 대중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한미은행 역시 이때부터 해외채권펀드 판매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제휴상품팀이 생긴 것도 같은해 7월이다.최근 이 상품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급증한 이유는 환율 위험을 없앴다는 점 때문이다. 이전에는 미국 달러로 상품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펀드의 수익률과 환율 위험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만 했다.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중은행들이 판매하는 상품들은 미리 환율을 약정해 놓기 때문에 펀드의 수익률에다 선물환계약에 따른 추가수익(선물환 프리미엄)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 상품은 기관투자가용 상품이 ‘개인용 투자상품화’되고 있는 최근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권문혁 제휴상품팀 대리는 “개인들의 부는 쌓이고 금리는 낮아지다 보니 법인영업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상품들이 개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특히 해외투자상품에 대한 관심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고 평가한다.현재 해외채권펀드는 한미은행 이외에도 조흥은행, 우리은행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문팀장은 “지금은 좋은 상품이 있다면 누구든 빨리 판매에 뛰어드는 게 은행의 사업성을 높이는 길”이라며 “이 상품이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법인 등의 자산운용에도 도움이 되는 상품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가입대상은 개인이나 법인 등 제한은 없으나 미국 투자법 때문에 미국 시민권과 영주권을 가진 고객은 가입할 수 없다. 가입금액은 1,000만원 이상 100만원 단위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