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정규직이란 무엇이며, 그들의 불리한 처우는 과연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 비정규직 급증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이며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소위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재앙인가.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노동계의 56% 주장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경총의 20%대에 그친다는 분석이 옳은 것인가. 한마디로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은 덜어질 수 있을 것인가.불행히도 “아니다”는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 비정규직이 급증한 원인을 추적해 들어가면 답은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다. 비정규직이 급증한 원인을 열거하라면 역시 다양한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들도 포함될 것이다.파견근로라든가 계약직 활성화 등이 비정규직종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대량해고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이 고용형태에 주는 충격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것이 전부인가.물론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업종은 두 번 강조할 필요도 없이 건설부동산이다. 농림어업도 그렇고, 도소매판매업종에서도 비정규직이 크게 불어났다. 음식숙박업종이 뒤를 잇고 있다. 이들 업종은 그 특성상 언제나 비정규직이었다.경기의 부침에 따라 업체의 사활이 결정되고 시설투자 자본투자가 적은 분야, 특히 서비스업종에서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이다. 금융과 제조분야에서도 비정규직이 늘어났지만 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노동연구원 등에서 분석한 자료나 정부가 내놓는 산업별 업종별 고용형태에 대한 그 어떤 자료를 보더라도 우리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할 때 범하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는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서 정규직인 근로자가 ‘앉은 자리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험난한 구조조정 과정을 겪은 은행원들이 대표적인 경우다.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받고, 앉은 자리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의 낮은 급여를 받게 됐으니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통계적으로는 지극히 일부분이다. 대세는 아니다. 주류와 대세는 처음부터 비정규직이었고 지금도 그럴 수밖에 없는 업종에서 취업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56%까지 급증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으로 생긴 수치는 결코 아니다. 비정규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가 모두 늘어났지만 비정규직이 더욱 급증했기 때문에 점유비가 높아졌을 뿐이다.통계의 착시현상은 이런 데서도 나타난다. 지난 3년여 동안 정규직에서도 20여만명의 근로자가 늘어났다. 물론 비정규직에서 60만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을 뿐이다.어떻게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긴 설명도 필요없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공급해 온 수원(水源)은 어디인가. 정규직 근로자인가. 아니다. 불행히도 실업자군이다. 실업자들이 대거 취업했으되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분야에서 창출됐다.8%를 넘던 실업률이 3%까지 떨어진 것이 비정규직 취업자의 급증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에 대(對)하는 말은 무엇인가. 정규직인가. 아니다. 불행히도 실업자다.이제 결론에 거의 다다랐다. 비정규직 처우를 정규직 수준 정도까지 끌어올리도록 제도를 개선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한숨은 사라질 것인가. 역시 답은 “아니다”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나타날 것인가. 역시 답은 간단하다. 정답은 “대량실업이 불가피하게 터질 것이다”이다. 그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