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 중림동 대왕빌딩 공사현장. 지상 32층, 지하 6층, 연면적 2만7,232평 규모로 설계된 이 빌딩은 지난 99년 2월부터 만 4년 동안 황량한 폐허로 버려져 있었다. 지하층 토목공사가 진행된 15% 공정률 상태에서 건축주인 대왕실업이 부도를 맞았기 때문이다.이후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유치권(타인의 물건을 점유한 자가 해당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물건을 잡아두는 권리)을 행사하는 한편 부지 일부를 경매로 인수해 독자개발 여부를 타진했다.하지만 IMF 위기 이후 그룹 해체 및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다시 달라졌다. 자금난으로 개발여력이 부족해지면서 난관에 부딪힌 것. 결국 대우건설 채권단은 올해 초 대왕빌딩 사업지를 매각하기로 하고 이수건설에 부지를 넘겼다.최근 이수건설은 중림동 현장에 지상 39층 459세대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브라운스톤 서울’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94년 대왕실업건물을 철거한 지 9년 만에 비로소 ‘땅의 운명’이 가닥을 잡은 셈이다.이해관계 얽혀 수년째 ‘방치’장기간 공사가 중단돼 ‘도심의 흉물’로 전락한 대형건물 공사장이 서울에는 꽤 많다. 상당수가 IMF 위기 이후 건축주가 부도를 낸 곳이다.중림동 대왕빌딩처럼 건설경기가 호전되면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 공사를 재개한 곳도 많지만,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골칫덩이 역시 적지 않다. 입지 면에서 손색없는 황금 사업지라도 수년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된 곳들이다.서울 양천구 신정동 목동중심축에 위치한 목동백화점(씨엘백화점)의 경우 어처구니없는 범죄에 휘말린 뒤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비운의 사업지’다. 지상 9층, 지하 8층, 연면적 1만2,421평 규모의 백화점으로 삼성건설이 짓던 이곳은 50% 공정에서 모든 과정이 멈췄다.완공을 1년여 앞둔 96년 7월 백화점 대표를 비롯한 임원 4명이 사기, 폭력 등으로 구속됐기 때문. 당시 이들은 자기자본 한푼 없이 신축 중인 백화점을 인수한 뒤 자기들끼리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조직폭력배까지 동원, ‘현대판 봉이 김선달’ ‘일본 야쿠자식 기업잠식’ 등으로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했었다.이 사건으로 목동백화점은 파산절차를 밟아 현재 모 중소 건설업체로 사업권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현재까지 파산관제인과 공사대금 처리를 놓고 협의 중이다.서초동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 위치한 남국제전자센터는 건축주와 시공사 모두 IMF 직격탄을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곳이다. 신원그룹 계열 서원유통이 국제전자센터 2단계 사업으로 진행하다 부도를 낸 후 공사재개와 중단이 거듭되고 있다.지상 20층, 지하 6층, 연면적 1만1,046평 규모인 이곳은 90년대 중반 성장 일로에 있던 신원그룹이 유통사업 확대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이었다. 용산전자상가를 대체하는 ‘전자제품 메카’를 만든다는 포부 아래 유통시설과 소형아파트가 어우러진 주상복합건물로 설계했다. 진로 아크리스백화점이 붙어 있고, 남부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앞이어서 대형 상권으로 발돋움이 예상되기도 했다. 당초 완공 목표는 98년 하반기.하지만 IMF 위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사업기간 탓에 공정 50%선에서 공사가 중단돼 수많은 분양계약자들의 피해를 낳았다. 지난 2000년 5월 신원종합개발이 시행권을 인수해 공사를 재개, 2001년 11월 완공한다고 발표했지만 2001년 1월부터 다시 중단된 상태다.신원종합개발 관계자는 “90년대 초중반 의류사업과 골프장 분양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서초동에 대형 부지를 매입해 개발사업을 폈지만, 결국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며 “자금난 때문에 공사재개 시기를 정확히 못박을 수 없다”고 밝혔다.중구 남대문로 옛 상업은행 빌딩도 오가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현장이다. 지난 99년 8월 SGS컨테크에 팔린 후 최고급 호텔식 아파트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등 화려하게 출발했으나 현재는 먼지만 가득한 흉물로 전락했다.당초 SGS컨테크는 이 건물 옆의 한일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리모델링할 계획이었으나 이후 자금난이 겹치면서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지 못한 상태가 됐다. 현대건설은 이미 지난해 상업은행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서 철수했으며 한일은행 본점은 롯데쇼핑이 인수해 쇼핑시설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특히 SGS컨테크는 지난해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옛 상업은행 인수 당시 한빛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결과적으로 한빛은행에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되기도 했다. 현대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옛 상업은행 건물은 제3자에게 매각이 추진되고 있으며 당초 계획했던 주거용 건물로의 변신도 확실치 않은 상태다.한편 서울 강남의 중심인 강남역 코너에 위치한 삼성그룹 보유 부지의 경우 설계변경 등의 이유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이 각각 사업권을 갖고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은 이 부지는 3개 빌딩, 총 연면적 12만6,560평의 매머드급 ‘삼성타운’으로 개발될 계획이다.당초 판매 및 업무시설로 계획된 빌딩들은 앞으로 호텔, 오피스텔, 아파트 등으로 개발 컨셉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호텔신라는 이곳 복합빌딩에 200~250실 규모의 특1급 호텔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장우종 호텔신라 과장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강남에 호텔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강남역 부지의 전반적인 개발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업무용 빌딩으로 설계된 패션센터빌딩 등도 오피스텔과 판매시설이 어우러진 복합빌딩으로 변경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 부지가 워낙 탁월한 입지인데다 대규모 사업이어서 향후 개발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이밖에 연면적이 2만㎡를 넘는 대형건물 건축공사장 중에 한국예총이 짓는 목동 예술인회관, 동대문구 장안동의 대보주상복합, 영등포구 양평동 해태사옥, 관악구 신림동의 청암인터그린타워와 삼모포커스타운, 강남구 대치4동 칠산빌딩, 도곡1동 도곡업무빌딩 등이 2003년 1월1일 현재까지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강남 동서증권ㆍ등촌동 그랜드 ‘새 주인’ 맞아반면 해묵은 이해관계가 정리돼 새로운 사업자를 맞아 활기를 띠는 곳도 늘고 있다. IMF 위기에서 벗어날 무렵인 지난 99년 10월 서울시내 장기 공사중단 사업장은 91개소에 달해 정점을 이뤘으나 차차 감소하기 시작해 현재는 30개소 정도다. 그동안 건설경기가 되살아나고 부동산 시장도 활기를 띠면서 투자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강남 테헤란로 지하철 2호선 선릉역 바로 옆에 위치한 동서증권 테헤란로 사옥 건축현장의 경우 ‘도심 흉물의 대명사’라는 오명에서 드디어 벗어나게 됐다. 업계 2위 증권사에서 파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환란의 중심에 있었던 동서증권은 당초 이곳에 테헤란로지점을 겸한 제2사옥을 지을 계획이었다.하지만 98년 6월 사업인가 취소 이후 공사가 전면 중단돼 최근까지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로 방치됐다. 파산절차를 밟던 동서증권이 보유 부동산 처분을 위해 수차례 자체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지난해 법원경매에 붙여져 금강주택에 낙찰됐다.금강주택은 지난 3월28일부터 업무용 빌딩 금강타워 건설 공사에 들어간 상태다. 지상 21층, 지하 6층, 연면적 7,506평 규모. 금강주택측은 “임대수요가 풍부한데다 대중교통 여건도 탁월해 완공 후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강서구 등촌동 그랜드백화점 강서점은 최근 미국계 부동산투자회사 라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LIM)에 매각됐다. 공사시작 7년 만에 찾은 돌파구다.그랜드백화점 강서점은 앞서 개점한 할인점 그랜드마트 강서점의 성공에 힘입어 강서지역 상권을 ‘그랜드왕국’으로 만든다는 구상 아래 추진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IMF 위기 이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98년 7월 공정률 60%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에도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건축비를 둘러싼 송사가 벌어지는 등 좀처럼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던 사업지였다.LIM과 그랜드백화점의 계약조건은 지분율 80대20으로 별도법인을 설립하고 경영은 LIM이 맡기로 한다는 것. LIM은 1년 6개월 내에 지상 9층, 지하 3층, 연면적 1만4,750평 규모의 초대형 매장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중견 건설사ㆍ외국계 투자회사 ‘눈독’이처럼 공사 중단 사업장은 한국경제 사상 최악의 시련기였던 IMF 위기를 계기로 양산됐다. 건축주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부도를 낸 경우가 가장 많다. 2003년 1월1일 현재 서울시내 장기 방치된 건축공사장 가운데 97~99년 사이 공사가 중단된 곳은 모두 18개소로 전체의 60%를 차지한다.그러나 ‘방치’된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부동산 가치까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건축 프로젝트는 착공 전 개발 타당성 검토를 마치고 사업성에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통과했고 교통환경이 탁월한 곳이 상당수라는 것도 장점이다. 건설업체와 투자회사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특히 대형 건설사와의 경쟁에서 뒤지는 중형 중견 건설업체들의 관심이 높다. 대왕빌딩 현장을 인수한 이수건설의 김상목 홍보부장은 “공사가 중단된 사업지는 분양권자 등의 민원이 많아 사업진행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입지여건과 향후 브랜드 가치 등을 감안하면 중견업체가 도전해볼 만하다”고 밝히고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는 대형 건설사가 독식하다시피 해 틈새를 찾는 방편으로 공사 중단 현장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부동산을 인수, 개발ㆍ운용 수익을 나눠 가지는 리츠방식도 공사 중단 사업장과 ‘궁합’이 잘 맞는다. 자산관리회사 JW에셋은 지난해 중동신도시의 동아건설 사업장을 매입, 설계변경을 통해 판매시설로 탈바꿈시켰다.부동산 시장이 개방된 후 한국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외국계 투자회사들 역시 이들 사업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LIM이 이미 그랜드백화점을 인수한 것처럼, 앞으로도 자금력을 동원한 투자회사의 입질이 계속될 전망이다.돋보기 / 기사회생 공사현장브라운스톤ㆍ아이원플러스 ‘전화위복’서울 중림동 대왕빌딩 공사현장과 경기도 분당신도시 서현동, 일산 백석동 청구오딧세이 공사현장은 공통점이 있다. 수년간 방치돼 잡풀만 자라던 곳이 최근 새 주인을 맞아 주상복합아파트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이 ‘랜드마크’로 만든다는 계획 아래 사업추진에 남다른 의욕을 보인다는 점도 같다.대왕빌딩에 지어지는 ‘브라운스톤 서울’은 뉴욕이나 도쿄에서 볼 수 있는 도심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지향한다. 지상 35층, 지하 6층의 오피스텔 동과 지상 39층, 지하 7층의 아파트 동을 합쳐 총 2개의 타워형으로 459세대가 건립될 예정이다.110세대가 분양되는 아파트는 41ㆍ45평형의 중형 아파트로, 349세대가 분양되는 오피스텔은 19~74평형대로 구성될 예정이다. 저층부에는 근린생활시설과 사우나 수영장 골프장 등이, 지상 8층에는 편안한 휴식을 위한 옥상정원이 들어선다. 5월 중 분양될 예정.청구가 사업을 시작했다 전면 중단된 분당, 일산신도시의 오피스텔 ‘오딧세이’도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풍림산업은 지난 2월 사업권 양수계약을 체결하고 3월24일부터 계약 해지분에 대한 분양에 들어갔다.새 이름은 ‘분당 아이원플러스’. 19~84평형 총 1,968실 가운데 275실이 일반공급 대상이다. 풍림산업은 재분양 가구에 최신 마감재를 적용해 최대한 완공시기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현재 공정은 46%선.일산 오딧세이는 이수건설이 맡아 ‘브라운스톤 일산’으로 새단장한다. 지난해 11월 분양을 마쳤으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