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경기부양을 목표로 금리를 다시 내린다. 4%의 사상 최저 수준이다. 물가상승률이 거의 4%에 육박해 있음을 고려하면 실질금리는 사실상 제로다. 실질금리 기준으로는 일본보다 금리가 오히려 낮다고도 말할 수 있다.일본은 금리가 제로 수준이지만 물가는 마이너스다. 한은과 더불어 정부 역시 약 5조원의 재정을 추가로 배정할 예정이라고 하니 시중에는 ‘돈 풍년’이라고 할 만하다. 이쯤 되면 “지금도 유통화폐가 모자라 경기가 침체된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성립됨직하다.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금리인하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 또한 적지 않다. 정부와 한은이 기어이 금리에 손대기로 했다면 필시 그럴듯한 합리적 이유가 있을진대 반론이라니?금리를 비용으로 인식하느냐, 소득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달라진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국에서는 금리인하가 백번 경기부양에 도움된다.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은 지난 10여년간의 금리인하를 통해 제로 수준까지 금리를 내렸지만 경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일본정부가 소비촉진을 위해 국민들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나눠주었더니 국민들이 이를 소비하기는커녕 상품권을 할인해 은행에 저금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되면 금리인하의 효과는 없다. 쓰라고 주는 것도 은행이 되들어가 버리면 이자를 내려본들 소용이 없다.‘소용이 없는’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정은 오히려 더 나쁘다. 일본에서는 금리를 내릴수록 경기는 더욱 위축된다. 높은 저축률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내려가게 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소득(예금 이자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은행에 예금해 봤자 장차 이자소득도 얼마 되지 않으니 차라리 소비를 늘리고자 할 것인가. 그리되면 소비촉진에 의한 경기부양 효과가 분명 ‘있다’고 할 만하다. 문제는 그 반대다.장래의 이자가 줄어드는 만큼 저축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고령화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은퇴자 고령자들은 바라볼 것이라고는 은행이자밖에 없기 때문에 이자가 내려갈수록 더욱 불안해하고 당장 소비활동을 줄이게 된다.미국은 이자를 내릴수록 소비가 촉진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국인들은 장래의 소득을 예상해 이를 당겨서(할인해서) 오늘의 지출을 결정한다. 이자가 내려가면 장래의 동일한 소득이 갖는 오늘의 구매력은 더욱 커지고 따라서 지출도 늘어난다.물론 우리가 ‘일본, 미국’ 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계급에 따라 소득수준에 따라 현격한 차이와 다양성을 갖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느 쪽일까.통상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투자와 소비가 촉진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제구조에서 투자가 촉진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는 불행히도 빈약하다. 그렇다면 소비는 과연 얼마나 촉진될 것인지가 문제다.이자소득 계층이 많을 것인가, 이자비용 계층이 많을 것인가. 그리고 연령대별로는 어떨 것인지에 대한 보다 정밀한 자료가 필요하다. 가계대출이 급증한 현실을 감안하면 확실히 비용감소 효과가 클 것이다.그러나 이미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자율 하락이 비록 생활고는 덜어줄망정 추가적인 소비로 연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인들에게 자금조달 능력의 확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문제다.소비촉진이 아닌 부동산투기로 간다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다. 은행돈을 빌려 집을 사고 세를 놓아 이자를 감당하는 구조라면 절망적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이 확실하다. 단기적으로는 서민의 생활고를 덜어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민을 더욱 죽인다. 경기부양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