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안 사시겠습니까.’ 명동에 점포를 갖고 있는 한 의류업체에서 세일을 알리기 위해 만든 현수막 내용이다. 매출부진으로 위기에 몰린데다 사정이 언제 다시 나아질지 모르기 때문에 절박한 상황을 담아냈다.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아직 성과를 말하기는 이르지만 이 업체는 일단 초특가 세일로 위기를 극복하기로 전략을 짰다.요즘 여행업계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 말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불황을 겪고 있던 터에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충격으로 해외여행객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급기야 40만원을 넘나들던 3박4일짜리 동남아여행 상품의 가격을 19만원선까지 끌어내렸다. 그나마 예약한 것을 취소해 손해를 보는 것보다 최소한의 돈이라도 건지자는 계산에서다. 항공업계도 노선마다 다르지만 일부 구간의 경우 40% 가량의 파격적인 세일가로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다.노량진수산시장도 얼마 전 세일행렬에 동참했다. 최근 들어 수산물 소비가 급격히 떨어지자 궁여지책으로 생선가격을 내려 파는 세일행사를 기획했던 것. 시장측은 “문을 연 지 76년 만에 처음으로 할인판매를 했다”며 “요즘 시장상인들의 수입은 지난 98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학원가와 음식점도 예외는 아니다. 한 운전학원의 경우 35만원짜리 수강권을 내놓았다. 정상가에 비해 10만원 이상 싼 가격이다. 학과와 기능시험을 모두 책임진다는 조건도 붙어 있다.분식체인점을 운영하는 신포우리만두는 쫄면과 김밥, 만두를 묶어 3,000원에 팔고 있다. 정상가의 50% 수준이다. 또 명동의 상당수 커피전문점들이 커피를 50% 할인해 2,000원에 팔고 있다.올해 초 햄버거 등을 10년 전 가격으로 파는 행사를 펼쳤던 패스트푸드업체들은 최근에는 1개를 사면 1개를 더 주는 행사를 통해 고객잡기에 나섰다. 햄버거 소비량이 크게 줄면서 신세대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이벤트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땡처리’ 시장도 다시 부활했다. 동네마다 ‘땡처리’ 전문점이 문을 열고 있고, 일부 특급호텔에도 등장했다. 특히 서울힐튼호텔에는 최근 상설 아울렛매장이 문을 열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기도 했다.그동안 노(NO)세일을 고수해 온 업체들도 할인판매 대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최근 아놀드파마, 로베르타, 이동수아쿠아스큐텀링스 등이 10~30%의 세일을 실시했고, 휠라(FILA) 역시 ‘감사세일’이라는 타이틀로 노세일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졌다.이렇듯 세일에 적극 나서는 회사들은 한결같이 불황을 거론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할인판매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특히 소비재산업의 경우 지금 못 팔면 고스란히 재고로 남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문제는 역효과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세일을 하면 당장은 매출이 늘어 좋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가격인하가 상황에 따라 좋은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보복적인 가격인하에 따른 가격전쟁으로의 확산은 상당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가급적 가격전쟁이라는 이미지를 주지 않으면서 할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그런 점에서 국내에서도 미국의 월마트가 구사하는 할인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월마트는 ‘Everyday Low Pricing’을 공공연히 말한다. 얼핏 보기에는 ‘가격으로 끝장을 보자’는 의미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속뜻은 크게 다르다. 자신들의 가격전략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할인폭 역시 모두에게 알린다.이를 감안할 때 월마트가 던지는 메시지에는 저가전략을 자제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이 정도를 내릴 테니까 다른 업체들도 이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결국 과당경쟁을 피하고 공존하자는 얘기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비록 원가에서 우위를 갖고 있는 기업이라 해도 가격인하를 쉽게 단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가격인하는 기업으로서는 최후의 수단이다. 할인판매 자체가 제품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고, 업계에 수익과는 무관하게 지루한 가격경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한국마케팅전략연구소 이인호 박사는 “결국 어떤 전략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할인판매를 하느냐에 따라 세일의 성패는 가름나는 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