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정숙희 씨(가명ㆍ40)가 1988년 결혼했을 때 가진 것이라곤 대출금 1,900만원이 전부였다. 정씨의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정씨는 친척을 도와 옷가게를 운영했다. 생활하기에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살림이었지만 정씨는 결혼생활 15년째인 현재 약 10억원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뭘까.무엇보다도 종자돈이 없었던 정씨는 대출을 적극 활용했다. 정씨는 결혼 초부터 아무리 작더라도 내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집마련’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대출은 최대한 이용하고 대신에 이자가 나가는 기간은 짧게 가져가려고 노력했다.“돈 한푼 없이 내집장만을 하려니, 정말 목마른 놈 샘 파듯 열심히 움직였어요”라고 지난날을 회상했다.결혼하면서 남편의 회사에서 전세자금 1,5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리고 은행에서 400만원을 빌려 청약예금에 가입했다. 이 청약예금통장으로 몇 차례 고배를 마신 뒤 89년 서울 홍제동 아파트 25평형에 당첨됐다.분양가는 8,400만원. 우선 주택자금으로 2,5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동시에 은행마다 6개월간 꾸준히 적금을 불입하면 만기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최대한 이용했다.정씨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대출금을 못 갚는 최악의 상황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의 수입으로는 대출을 유지하기 위해 적금을 계속 부어나갔다. 자신이 번 돈은 생활비로 썼다. 이렇게 빠듯하게 3년을 부어 92년 마침내 입주를 하게 됐다. 기존 전세자금 1,500만원, 그동안 모아둔 900만원과 친척에게서 3,000만원을 빌려 5,400만원을 맞췄다.정씨가 무리하게 돈을 빌려서까지 입주한 데는 남다른 전략이 있었다. 보통 입주시기에는 전세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시세가 형편없이 낮게 형성되기 마련. 그래서 정씨는 번거롭더라도 입주한 후 8개월 정도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전세물량이 소화되고 달리기 시작하자 전세금이 거의 분양가 수준까지 올랐다.이때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단기대출금은 다 갚아 버리고 장기주택자금 2,500만원만 남겼다. 전세대출자금은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해 주민등록증을 그대로 둠으로써 유지를 할 수 있었다. 홍제동을 나와 다시 하안동 24평 전세 2,500만원으로 이사를 갔다. 의도적으로 다시 전세자금이 싼 외곽으로 나간 것이다.2년 후 정씨는 새로 옮긴 직장이 홍제동 아파트와 가까워 추가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빼주고 다시 들어갔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월급도 올라 남편월급으로는 생활을 하고, 본인소득은 재테크에 적극 활용했다.그러던 가운데 정씨에게 새로운 투자기회가 찾아왔다. 95년 시댁어른들이 주택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같이 합치게 됐다. 이때 홍제동 아파트 전세 9,500만원과 갖고 있는 돈 1,500만원을 합쳐 서울 강남구 도곡동 주공 13평 아파트를 전세 4,000만원을 끼고 1억1,000만원에 구입했다. “집에 관심을 갖다 보니 여윳돈이 생기면 아무래도 잘 알고 있는 부동산 쪽으로 투자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정씨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교통여건이 좋은 곳이 상승기에 많이 오르고 하락기에 덜 빠진다는 판단기준에 따라 강남 쪽을 알아본 것. 당시에도 이미 강남집값은 다른 곳에 비해 턱없이 비쌌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재건축 아파트에 눈을 돌렸다.투자매력이 있는 재건축아파트는 20년이 넘고 대지 지분이 넓은 게 좋다는 잣대에 맞춰 발품을 팔았다. 당시 유력한 재건축아파트 가운데 꼼꼼히 각각의 투자매력을 따져 직접 현지답사까지 했다. 그런 끝에 도곡동에 투자하기로 결정을 한 것.정씨에게도 어려운 고비는 있었다. 하지만 이 위기도 신중한 판단과 발빠른 대응으로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1억원이 넘는 돈을 부동산에 묶어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우선 본인이 투자한 액수 이하로 빠질 가능성을 곰곰이 따져 봤다. 고민한 결과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판단이 서 묻어 두기로 하고 마음을 접었다.그리고 오히려 관심을 주식투자로 돌렸다. 주식투자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남편 회사 주식에만 투자를 했다. 외환위기 전후에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어려워 증자가 많았다. 남편의 몫은 물론 동료들의 실권주도 같이 샀다. 남편 회사의 주식은 안정성이나 수익성 면에서 괜찮다는 판단에서 과감하게 베팅한 것. 그렇게 사 묻어뒀다가 이듬해 주가상승 때 이익을 실현하고 처분했다.정씨는 늘 이렇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과감하게 행동에 옮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지금도 주말 가족나들이로 야외에 나가면 겸사겸사 주변의 부동산 상황을 눈여겨본다.투기지역에서 제외됐는지, 개발일정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현지 부동산업체에 들려 미리 정보를 얻는다. 여윳돈이 생기면 투자를 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것이다.“틈새상품에 관심, 분산투자는 기본”8년차 직장인 이윤성씨(가명ㆍ31)는 주부 3년차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96년에 3년 만기 적금통장 3개를 만드는 일로 재테크를 시작한 그녀는 억대연봉자는 아니지만 억대재산가다.10개의 통장에다 부동산 투자까지 두루 관심을 두고 있는 그녀의 재산은 약 3억원. 30대 초반에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오늘날 그녀를 있게 한 원동력은 과감한 투자다. 코스닥 열풍이 불던 99년 후반, 다니던 직장이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사주로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을 5,000원에 6,000주를 받았다. 자금은 모두 회사에서 대출을 받았다.5,500원으로 등록된 이 주식이 8만원까지 가리라고는 회사 내부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2만원이 적정가라는 평가였다. 그래서 그녀는 2만원일 때부터 조금씩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2만원에서 1,000주, 3만원에서 1,000주, 4만원에서 1,000주. 이런 식으로 팔다 보니 평균 4만원대에 주식을 판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2억원은 또 지인에게 빌려줘 1년간 이자만 3,000만원을 모았다.이렇게 종자돈을 마련한 그녀가 현재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종합금융회사의 어음관리계좌(CMA) 등의 금융상품과 부동산 투자다.부동산 투자는 지인들과 공동으로 하고 있다. 3명이 함께 경기도 용인에 250여평의 대지를 평당 120만원에 사두었다. 공동으로 하는 투자인 만큼 원칙이 확실하다는 설명이다.같은 지역이라도 개인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목표수익률을 정했다. 예를 들면 현재 사둔 용인지역은 평당 200만원이 되면 일단 팔 생각이다. 그러려면 시세를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은 그 지역을 찾는다.현재 땅에 묶인 돈이 1억원이 조금 넘는다. 나머지는 CMA계좌처럼 각종 금융권 상품에 분산해서 넣어뒀다. 청약통장과 근로자우대저축, 연말정산 혜택이 있는 주식형 투자신탁 등 10개의 통장은 아예 앨범처럼 차곡차곡 정리해 뒀다.역시 재테크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부자엄마’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죠. 저는 주로 부딪쳐 가며 시행착오를 거쳐 배우는 편입니다. 치러야 할 수험료가 좀 비싸긴 하지만요.”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과감한 투자로 노후설계 완료”회사원 아들과 대학생 딸을 둔 전업주부 김진영씨(가명ㆍ51)는 지난 2001년 봄, 아들과 잦은 말다툼을 벌였다. 당시 남편이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받은 1억3,000만원의 투자처를 찾던 그녀는 친언니가 제안한 오피스텔임대사업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퇴직금으로 너무 큰 모험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아들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갈등을 빚었던 것.당시 갖고 있던 재산은 1억5,000만원 상당의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몇 차례 주식 붐을 타고 주식투자를 잠깐 해 봤을 뿐 부동산 등 발품을 파는 재테크에는 단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던 그녀였다.먼저 친언니가 점찍어 둔 땅을 평당 500만원에 총 148평을 함께 샀다. 그리고 평당 210만원의 비용을 들여 오피스텔을 지었다. 8층 건물에 73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오피스텔이 완성된 것은 지난해 1월. 아예 살림집도 이곳에 새로 마련했다. 아파트는 처분해서 오피스텔 건축자금에 보탰다.비용을 3대7로 나눠 투자하다 보니 입주가구수도 같은 비율로 나눴다. 한 가구당 전세 4,000만원 상당의 22개 가구를 관리하다 보니 한 달에 수중에 들어오는 월세가 약 300만원 가량. 남편의 퇴직은 1년여 앞으로 코앞에 다가와 있지만 김씨는 별 걱정이 없다.다만 임대업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건물명의가 김씨의 것으로 돼 있어 절세형 상품 등 금융상품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보험상품도 연말정산 때 세액환급 등을 목적으로 몇 개 들어뒀다.재미있는 것은 임대사업 후 부부가 부동산정보나 금융상품 등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김씨는 남편의 퇴직금을 중간정산하기로 결정한 것도, 또 이를 부동산임대업에 투자한 것도 무척 시의적절했다고 자부한다. 그녀에게 퇴직을 앞둔 남편이 더 자랑스러워 보이는 것도 바로 지금의 투자 덕분이 아닐까.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