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독일 쾰른에서 ‘불안정하게 급변하는 환경과 기업’을 주제로 제9회 세계비즈니스포럼(WBD)이 열렸다. 특히 이 포럼에서는 가치혁신 이론 창시자인 김위찬 비즈니스 포럼의장(유럽 인시아드(INSEAD)대학원 교수)과 창사 100주년을 맞은 포드자동차의 닉 셀러 사장이 급변하는 환경에서의 기업전략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내용 전문을 싣는다.김위찬 교수 = 오늘날 우리는 변화와 불안정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S&P의 100대 기업 평균수명 인덱스를 보면 1920년대 65년이던 것이 1990년대 10년으로 단축됐습니다.또 1970년 경제전문지 <포천 designtimesp=23935>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에서 2000년까지 살아남은 업체는 30%에 불과합니다. 특히 글로벌시대의 정세불안정은 세계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예측이 어려운 급변은 기업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닉 셀러 사장 = 지난 2001년 미국 자동차업계는 세계정세 불안에 따른 악영향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9ㆍ11테러가 발생하자 포드를 비롯해 GM,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메이커는 심리적 불안으로 경기가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무이자 할부판매를 실시했습니다.이 같은 신속 위기대응책은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미국경제가 소비심리 불안으로 침체에 빠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오늘날 기업은 어느 때보다 세계정세와 경제변수로 인한 불안정을 대응하는 총체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파이조각을 두고 서로 자기 몫(시장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시장경쟁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김교수 = 기업들이 많은 전략을 세우지만 너무 경쟁에만 초점을 맞춰 안타깝습니다. 기존의 영토를 정복해도 한정된 공간으로 더 이상 확대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아무도 없는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게 현명하다고 봅니다.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피나는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아예 경쟁자가 없는 자신만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혁신이론입니다. 경쟁전략은 한정된 공간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는 전쟁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그러나 지난 150년간 산업사를 살펴보면 시장공간은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항상 누군가가 지속적인 창조를 거듭해 왔습니다.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세계 선도기업을 보면 경쟁이점에 의거한 한정된 공간에서 승리한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습니다.이 같은 맥락에서 가치혁신은 신사업 시장 공간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드자동차가 1908년에 발표한 T모델은 세계적인 가치혁신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셀러 사장 = 1903년 헨리 포드가 설립한 포드 자동차는 올해 창사 100주년이 됩니다. 오늘날 많은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포드 자동차는 창업주의 후손이 직접 그룹 경영을 책임지는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포드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존재하는 것은 창업자 때부터 실시한 혁신 경영이 계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드가 T모델을 개발하기 전만 하더라도 자동차는 일부 상류층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급 사치품이었습니다. 포드는 분업이란 생산 공정을 도입해 제품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춰 중산층도 차를 소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즉 T모델을 통해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창출해낸 것입니다. 1908년 850달러였던 자동차 판매가격은 1925년 25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T모델은 자동차를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닌 이동의 수단으로 변화시켰고, 그 파급효과는 산업은 물론 사회 전반으로 이어졌습니다.본격적인 자동차시대를 연 T모델은 지난 97년 ‘세기의 차’(Car of the Century)에 선정됐을 정도로 자동차산업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김교수 = 가치혁신은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서비스산업, 심지어 공공서비스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미국 크라이슬러의 미니밴사업이나 프랑스 호텔 포르뮬 원(Formule 1), 벨기에 영화관 키네폴리스는 가치혁신으로 시장판도를 바꾼 좋은 사례입니다. 뉴욕경찰청(NYPD)은 공공서비스 분야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비효율적 업무로 오랫동안 무능력한 경찰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뉴욕경찰청은 가치혁신을 통해 심각했던 도심 치안 문제를 해소하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찰로 거듭났습니다. 가치혁신에는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각과 창조적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종업원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능력을 끌어내는 경영이 필요합니다.셀러 사장 = 그게 바로 김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공동 창시한 ‘공정한 절차’(Fair process) 이론이 아닙니까. 포드자동차는 가치혁신의 대표적 기업입니다.포드는 T모델로 미지의 시장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가치혁신 추구 방법론인 ‘공정한 절차’ 이론을 오래전부터 실시하고 있습니다. 포드의 기업정신은 사람(People)과 제품(Product), 이익(Profit)이라는 3P로 설명됩니다.인력(People)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직원은 회사가 자신을 완전한 인간으로 정당한 대우를 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소속감이 생겨 자발적으로 목표달성에 참여합니다.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포드자동차그룹에 아직도 가족적 정서(Family feel)가 남아 있는 것은 인간존중 기업정신 덕분입니다.제품(Product)은 시장과 바로 직결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합니다. 포드는 직원들의 재능과 기술을 바탕으로 20세기 초반 T모델에서부터 V8엔진, 머스탱, 익스플로러, 토러스(Taurus) 등 진보적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익(Profit)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익이 우리를 존재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익창출은 생명에 필요한 피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이익은 기업의 안정성에 기여하며, 특히 불확실한 외부의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김교수 = 그렇습니다. 이익은 급변하는 세계시장과 싸우는 데 필요한 무기 저장고라고 볼 수도 있지요. 그러나 변화가 단지 불안과 위협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도전의 기회이기도 합니다.창조적인 사업아이디어는 새로운 산업분야와 기업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생활방식에도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급격한 컴퓨터 환경 변화 속에서 인터넷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접목한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 없이 혼자서 여유 있게 뛰어노는 시장을 창출했습니다.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기술의 선구자도 아니고 인터넷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접목한 기업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아이디어를 대중화,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기존 기술에 창조적 사업아이디어를 접목시켜 가치를 대중화한 것이지요. 최첨단 기술연구개발(R&D)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도 가능하니 중소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만한 전략입니다.셀러 사장 = 지난 몇 년간 급변하는 세상을 보며 무어의 법칙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인텔사 창립자의 한 사람인 고든 무어는 컴퓨터의 칩 성능이 몇 년마다 두 배씩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마이크로칩의 발전은 세상을 번개 같은 속도로 바꾸며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기대와 취향 변화주기를 단축시켰습니다. 내가 일하는 자동차산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인기제품을 내놓더라도 경쟁자들의 치열한 따라잡기 경쟁 때문에 시장수명이 짧아졌습니다. 그런 만큼 경쟁자 없는 새로운 시장공간 개척은 기업의 생존 여부와 직결될 정도로 중요합니다. 특히 경쟁이 없는 시장개척은 상품가치를 더욱 높여 고부가 이익창출로 이어집니다. 세상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의한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김교수 = 물고 뜯는 유혈의 붉은 바다를 떠나 싸움이 없는 푸른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싶은 것은 모든 기업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 정글법칙의 잔인한 생존싸움을 벌리고 있습니다.기존 시장 흐름에 끌려다니는 경쟁을 포기하고 반대로 소비자들이 깜짝 놀랄 혁신적인 사업을 펼쳐 시장으로 상품이 따라 오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넓게 보는 시야와 혜안이 필요합니다.일단 전략이 수립되면 ‘공정한 절차’를 실시해 전직원이 도전의식과 자발적 참여를 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것입니다. 이들 기업은 서바이벌게임에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가치혁신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INSEAD)대학원 교수‘전략과 국제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위찬 교수는 지난 97년 르네 마보안 인시아드대학원 동료교수와 가치혁신 이론을 공동 창시했다. 현재 가치혁신 전략은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비롯해 워튼 비즈니스스쿨, 프랑스 인시아드 등 세계 유명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되고 있다.올해 초에는 가치혁신의 공동 창시자인 르네 마보안 교수와 지난 97년에 공동 발표한 <공정한 절차 designtimesp=24011>(일명 지식경영)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의 20세기 베스트 파이버 경영 전문 논문으로 선정됐다. 5년 전부터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경영전략 분야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연합 경제자문회(EC) 위원으로 위촉됐다.닉 셀러 포드자동차 사장영국출생인 닉 셀러 사장은 1966년 포드자동차 영국 지사에 입사해 78년 미국 본사, 88년 멕시코 법인장 등을 거친 후 92년 영국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 회장에 임명됐다. 당시 그는 경영난에 빠진 재규어를 구조조정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 제고 정책을 펼쳐 자동차 판매량을 두 배로 늘렸다.영국의 자존심 재규어자동차를 회생시킨 공로로 지난 2001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다. 유럽에서 그를 부를 때 포드자동차 사장보다 경(Sir)이라는 호칭을 먼저 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2001년 1월 포드자동차그룹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아동보호문제에 관심이 많다.